지난 시간에는 레위기 23장을 배웠습니다. 유대인의 일곱 명절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 일곱 명절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이 일곱 명절은 단순히 먹고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일곱 명절에는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위해 계획하시고 목적하신 구원의 프로그램임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레위기 24-25장을 배울 것입니다. 레위기 24장에는 성소에 있는 등장대와 떡상의 떡에 대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는 자를 죽이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보복에 대한 규정이 있습니다. 25장에는 안식년과 희년 그리고 구속에 대한 규정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속에 대한 규정들은 땅과 사람들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잘 연결되지 않는 하나님의 명령들과 사건들을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요구하시고 목적하신 삶이라는 주제로 공부해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삶 IV : 하나님의 나라와 그 백성의 자태
1. 언약에 기초한 하나님의 나라
1) 계속해서 등잔들이 타게 할 것이며
레위기 24:2-3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이 등불을 위해 올리브를 찧어 만든 순수한 기름을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이로써 계속해서 등잔들이 타게 할 것이며 아론은 회중의 성막 안 곧 증언의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주} 앞에서 계속해서 그것을 정비할지니 그것은 너희 대대로 영원한 법규가 될지니라.
성막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짐을 배웠습니다. 첫째는 등잔대와 떡상과 분향단이 있는 성소와 거룩한 곳 중에서 거룩한 곳 지성소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이 성소와 지성소가 커튼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등장대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고 하십니다.
2) 영존하는 언약에 따라 방을 주 앞에 진열할지니
레위기 24:8-9
그는 계속해서 안식일마다 그 빵을 {주} 앞에 진열할지니 그것은 영존하는 언약에 따라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취한 것이니라. 그 빵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것이 될지니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라. 그것은 영속하는 법규에 따라 불로 예비하는 {주}의 헌물 중에서 그에게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또한 떡은 일주일에 한번씩 교체가 됩니다. 그리고 교체된 빵은 거룩한 빵이므로 제사장이 먹어야 합니다. 이는 언약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헌물을 받아 만들어집니다. 이 또한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드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막을 배울 때에 각각의 기구의 상징하는 바를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하누카’ 그리스인들의 압제로부터 성전을 정화한 것을 기념하는 명절에 자신을 ‘빛’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또한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명하셨습니다. 성막은 오실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성막 자체가 예수님의 모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레위기 24-25장에서의 강조점은 영원한 언약입니다.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을 맺은 백성은 등잔대의 불을 계속해서 밝혀야 합니다.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을 맺은 백성은 헌물을 드려 떡이 하나님께 드려지게 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은 늘 하나님과의 언약을 상기할 수 있습니다.
3) 주의 이름을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이어서 하나님을 저주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이집트인 아버지와 단 지파의 디브리의 딸 슬로밋이었습니다. 직접적인 이름을 거명하는 것은 어머니가 아들에 대한 신앙 교육에 책임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도 살펴보았듯이 아버지가 이방인이고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그 아들은 유대인입니다. 반대로 어머니가 이방인이면 아버지가 유대인이라 하더라도 그는 이방인입니다. 이 사람은 어머니가 유대인이므로 유대인입니다. 결코 이방인이 아닙니다. 그는 언약 백성입니다.
레위기 24:11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주}의 이름을 모독하여 저주하므로 그들이 그를 끌고 모세에게 가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단 지파에 속한 디브리의 딸 슬로밋이더라.)
여기서 “모독”은 신성모독을 말합니다. “저주”라는 단어는 창세기 8장 8절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창세기 8:8
그가 또 비둘기를 내보내어 물들이 지면에서 줄어들었는지 알아보려 하였으나“줄어들다”라는 표현이 바로 레위기에서는 ‘저주’라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이를 'abate'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의미는 강했던 것이 점점 약해지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볼 때 청년의 저주는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한 것이 아닙니다. 이 저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신 ‘야훼’하나님임을 부정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언약의 강조를 줄어들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훼의 하나님, 그 백성과 언약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를 돌로 쳐서 죽이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언약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언약에 기초한 나라입니다.
2. 하나님의 법의 통치를 받는 나라
레위기 24:22
너희는 타국인에게든지 너희 나라 사람에게든지 한 법을 취할지니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니라.
"법을 취하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이나 그 백성과 함께 사는 외국인들이나 동일한 기준이 적용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한 마디로 받은 대로 되갚아 주는 것입니다.
- 사람을 죽이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
- 짐승을 죽이는 자는 배상하되 짐승으로 짐승을 갚을 것
- 상해를 입힌 대로 갚을 것
- 짐승을 죽이는 자는 그것을 물어낼 것
하나님에게 이러한 법을 주신 목적
첫째, 사회를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법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엄하게 벌이 지켜지고 공정하게 법이 지켜지는 사회는 안전합니다. 저는 싱가폴의 법은 영국법을, 영국법은 로마법을, 로마법은 구약의 법에 기초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싱가폴의 법은 참으로 엄합니다. 법이 엄한 만큼 그 사회는 참으로 안전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엄한 법과 처벌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엄한 법은 사람들을 스스로 조심하게 만듭니다. 엄한 법은 범죄율을 낮춥니다.
둘째, 과도한 보복을 막으시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은 받은 만큼 보복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받은 상처와 피해 이상을 보복하려는 것이 인간의 죄성입니다. 열배, 백백로 갚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받은 만큼만 보복하라고 하십니다. 더 이상을 상대방에게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됩니다.
세째, 손해를 끼친 것에 대해 책임지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손해나 악을 행한 것에 아무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그 사회의 정의는 무너집니다. 반드시 손해에 대해서는 배상의 책임을져야 한다는 것을 늘 인식하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 사회의 기강은 무너져내릴 것입니다.
폭력과 악이 난무한 사회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결코 실현될 수 없음
창세기 6:5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땅에서 커지고 또 그의 마음에서 생각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하나님은 인내하고 참으시지만 더 이상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실현될 수 없는 사회는 하나님도 버리십니다. 하나님은 노아 홍수를 통해 사회가 폭력적이고, 강한 자가 폭력으로 약한 자를 억압하는 사회를 심판하셨습니다. 동일한 이유로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하셨습니다. 이 사회는 법의 바른 집행으로 사회의 기능이 온전히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렇지않고 폭력이 만연하며 무법천지의 사회가 되면 그런 사회에서 하나님는 더 이상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십니다.
3.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나라
레위기 25장에서는 7년마다 안식년을 지키라고 합니다. 또한 7년의 7년 49년 뒤 돌아오는 50년의 희년을 지키라고 합니다. 안식년에는 땅을 쉬게 합니다. 사람들도 쉽니다. 또한 희년에는 동족 중에서 가난하여 종이 되었던 자들을 다 풀어주는 해입니다.
1) 안식년과 희년을 지킬 때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레위기 25:20
혹시 너희가 말하기를, 보라, 우리가 뿌리지도 아니하고 우리의 소출을 거두지도 아니하면 우리가 일곱째 해에 무엇을 먹으리요? 하면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이렇습니다.
레위기 25:21
내가 명령하여 여섯째 해에 내 복을 너희에게 내려 그 해에 세 해 동안의 열매가 나게 하리라.
하나님은 여섯째에 3년 동안 먹을 것을 주십니다. 여섯째 해에 먹을 것, 일곱째 해에 먹을 것, 그리고 여덟째 추수 때까지 먹을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구약 백성들이 안식년을 지킬 때에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서 하나님의 공급함을 체험해야 합니다.
2) 희년으로 인해 재산상 손해
신명기 15:9
너는 조심하여 네 악한 마음속에서 이런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하는 해가 가까이 왔다, 하며 네 가난한 형제를 향해 눈을 악하게 뜨고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대적하여 {주}께 부르짖으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이렇습니다.
레위기 15:10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그에게 줄 때에 네 마음에 근심하지 말지니 이 일로 인하여 {주} 네 [하나님]께서 네 모든 일과 네 손으로 행하는 모든 것에서 네게 복을 주시리라.
우리에게 먹고 사는 문제는 너무도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자신의 힘과 경험으로 이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고 사는 사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황을 아시고 보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심을 믿을 때에 여유가 생깁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돌아보며 살 수 있습니다. 설령 내가 직접적으로 돌려받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아시고 축복해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가난한 자와 약한 자들이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가 되시는 나라
1) 땅은 주님의 것
레위기 25:23
땅을 영원히 팔 수 없나니 땅은 내 것이니라. 너희는 나그네요, 나와 함께 머무는 자니라.
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를 알 때, 혹 형제가 땅을 도로 찾으려고 할 때에 돌려주어야 합니다. 땅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능력이 있는 친척이 돌려 달라고 요구하면 돌려주어야 합니다. 아니면 희년에 돌려주어야 합니다. 땅을 영원히 가질 수 었습니다.
2) 사람도 주님의 것
레위기 25:40-41
다만 품꾼이나 머무는 자같이 너와 함께 있게 하며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할지니라. 그때에 그와 그의 자녀들이 너를 떠나 자기의 본 가족에게 돌아가되 곧 그가 자기 조상들의 소유로 돌아가리라
가난한 동족들이 어쩔 수 없이 노예가 되어도 그들을 노예로 대우하지 말고 품꾼으로 대우해야 합니다. 또한 그들이 경제적 능력이 있으면 그들을 돌려보내야 합니다. 또한 희년이 도래하며 그들을 돌려보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25:55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내게 종이기 때문이니라. 그들은 내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온 내 종이요,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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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지기의 자세로 사는 같은 정직한 삶
레위기 25:14
네가 네 이웃에게 조금이라도 팔거나 네 이웃의 손에서 조금이라도 살 때에 너희는 서로를 학대하지 말라.
레위기 25:37-38
너는 이자를 받으려고 그에게 돈을 주지 말고 이득을 얻으려고 네 양식을 빌려 주지 말라. 나는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고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이집트 땅에서 너희를 데리고 나온 {주} 너희 [하나님]이니라.
“학대”라는 의미는 이용하다는 의미입니다. 상대방의 처지를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엄히 경계하셨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붙여 상대방의 재산을 빼앗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살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옵니까? 하나님 앞에 살기 때문에 나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심을 믿고 고백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25:43
너는 그를 엄하게 다스리지 말고 오직 네 [하나님]을 두려워할지니라.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그 백성은 구약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배웠습니다. 이는 언약입니다. 또한 그 백성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 지를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오셔서 하나님 나라와 그 백성의 삶의 성격이 어떠한지를 마태복음 5장 산상 설교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신약에서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언약으로 그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차이는 신약에서는 구원 받은 성도들의 마음에 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21절
또 그들이 이르기를, 여기를 보라! 혹은, 저기를 보라! 하지도 못하리니, 보라, [하나님]의 왕국은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백성으로 우리 또한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삶은 언약 백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을 모든 것의 주님으로 인정하고 사는 것입니다. 나의 힘과 경험을 의지해서 이 땅을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그 분의 뜻을 구하고 찾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청지기와 같은 자세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삶의 자태가 충만하기를 늘 기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