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솔로몬이 납달리 과부의 아들 히람으로 하여금 성전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게 한 내용입니다. 히람은 놋을 다루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습니다. 그는 솔로몬의 명을 받아 성전 앞에 두 기둥을 만들었습니다. 두 기둥의 이름은 야긴과 보아스였습니다. 또한 물두멍(대야) 역시 10개를 만들었습니다. 물두멍 하나가 40바스(1바스 22.7L), 약 908리터의 물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물두멍이 바침 수레에 한 개씩 놓여 다섯 개는 오른쪽에 그리고 다섯 개는 왼쪽에 있었습니다. 이 물두멍의 기능은 번제와 관련 된 물건을 씻는 역할을 하였습니다.(역대하 4:6) 히람은 이천 바스(45.000L)의 물을 담을 큰 놋그릇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성전 동남쪽에 두었으며, 바다라고 불리었습니다. 이 물로 제사장들이 번제단에 바쳐질 제물로 오염된 몸을 씻었습니다. 또한 여러 그릇들을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히람이 만든 성전 기물 중에 두 기둥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두 기둥의 이름은 ‘야긴’과 ‘보아스’입니다. 솔로몬은 이 두 기둥을 통해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권을 축복해 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권을 축복해 주실 수 있는 단 하나의 조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에 있음을 이미 여러 번 솔로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솔로몬은 이를 생각해야 했습니다. 단지 자신이 성전을 건축해서 하나님께 봉헌했다고 다윗 왕권을 지켜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일종의 기복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기대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기복신앙을 경계하라
야긴과 보아스에 대한 여러 해석들
(1) 두 기둥을 “사람”으로 해석하는 견해
솔로몬 성전의 전면 좌우편에는 두 기둥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오른편에 있는 기둥은 ‘야긴’이라 불렀고, 왼편에 있는 기둥은 ‘보아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야긴은 그가 세운다는 뜻이고 보아스는 그에게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교회의 기둥 같은 믿음의 일꾼들을 능력으로 세운다는 해석입니다.
(2) 두 기둥을 “말씀과 성령”으로 해석하는 견해
이 두 기둥을 말씀과 성령으로 해석합니다. 이렇게 해석하는 이유는 기둥에 석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석류는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에게 ‘토라’로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백합화의 꽃이 마치 왕관처럼 장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백합화’는 ‘순결’을 상징하는데 ‘성령’으로 해석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 견해에 의하면 말씀과 성령의 기둥을 통과하여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께 나갈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해석하는 견해
어떤 이들은 ‘석류 알갱이“을 이스라엘의 백성으로 봅니다. 또한 두 기둥이 아무 것도 지탱하고 있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지탱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택하신 하나님께서 또한 이스라엘을 놀라운 능력으로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4) 구속사적 해석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세우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로 나갈 수 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어느 해석을 취하던 틀린 것이 아닙니다. 상징적 해석은 정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다르므로, 상징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상징적 의미를 해석할 때, ‘이게 정답이다’ 우기는 것이 더 이상합니다. 저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른 양심을 가지고 성도들의 덕을 위해 최선을 다한 해석이라면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입니다.
(5) 기복적 신앙의 표현으로 보는 해석
두 기둥의 구조
이 두 기둥은 18큐빗(1큐빗 대략 30cm, dir 5.4m) 높이에 둘레는 5큐빗(1.5m) 이상이 되는 커다란 공 같은 기둥머리를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두 기둥의 머리 부분에는 그물모양을 만들어서 거기에 많은 석류모양을 매달게 했습니다. 성전기둥 꼭대기는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상징적 의미들
(1) 견고함
기둥은 건물을 바치는 기능을 합니다. 그러나 이 두 기능은 전혀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뻥 뚫린 하늘을 향해 두 기둥이 서 있을 뿐입니다. 또 두 기둥은 대단히 견고하게 지어졌습니다. 기둥의 기초가 12큐빗이었습니다. 또한 놋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건장한 성인 남자들이 아무리 밀어도 끄떡도 하지 않을 구조물입니다.
(2) 백합은 왕관 모양; 왕권을 상징
마태복음 6:28-30
이스라엘 백합은 지천에 널려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너희가 어찌 옷을 위해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깊이 생각해 보라. 그것들은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자기의 모든 영광 중에 있던 솔로몬도 이것들 중 하나와 같이 차려입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입히시거든, 오 너희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물며 너희는 더 잘 입히지 아니하시겠느냐” 지천에 널려 있다는 것은 다산과 번영을 상징합니다. 백합의 꽃들이 마치 둥근 머리 위에 왕관처럼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왕의 머리에 있는 왕관입니다. 왕의 왕권을 상징합니다.
(3) 야긴; 하나님께서 확립하셨다.
역대기상 17:1절에서 다윗은 성전을 짓고 싶은 소원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아들이 성전을 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을 통해 다윗 왕조와 왕국이 “굳게 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우다”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쿤~“로 발음되며 ’확고하게’ 세우다란 의미를 가집니다. 역대기상 17:9-14에서 이 ‘쿤~’이라는 단어가 5번 나옵니다. ‘야긴‘ 이라는 단어는 두 단어의 합성어인데 ’야훼‘ 언약의 하나님과 앞서 공부한 ”쿤~’ ‘세우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누구를 굳게 세우셨습니까?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야긴’은 누구입니까? 솔로몬 자신입니다.
(4) 보아스; 힘, 능력
역대기상 18:8
“또 이와 같이 하달에셀의 도시 디브핫과 군에서 심히 많은 놋을 가져왔더니 솔로몬이 그 놋으로 놋 바다와 기둥들과 놋그릇들을 만들었더라.” ‘디브핫‘란 의미는 ’도살하다‘,’가축을 죽이다‘,’칼로 베다‘,’동물을 요리하다‘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됩니다.’군‘은 앞에서 언급한 “쿤~’으로 ‘확립하다’입니다. 피를 흘리게 한 자는 다윗입니다. 다윗은 너무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 이유로 너무 많은 피를 흘렸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솔로몬이 그의 성전을 위해 능력으로 준비했습니다. 그러므로 ‘보아스’는 다윗 왕이 됩니다.
(5) 무화과 열매: 하나님의 말씀과 번영
무화과 열매란 의미는 히브리어로 “곡식 알갱이 모양의 사과‘란 의미가 있습니다. 이 무화과 열매는 유대인의 새해인 ’로쉬 하사나‘를 상징합니다. 새해 첫 열매인 무화과 열매를 먹으면서 서로에게 덕담을 하는데 그 덕담의 내용이 “ken yehi ratzon-may” “창조주 하나님의 뜻입니다. 올해도 부유하고 복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마치 무화과나무가 많은 씨들로 풍성하게 채워져 있는 것과 같이” 솔로몬은 각 기둥에 200개의 석류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석류를 뒤집어보면 마치 왕이 왕관을 쓴 모양입니다. 다윗으로 시작된 왕조와 왕국이 솔로몬에 의해 확립되고 그 이후로 수많은 왕들이 든든히 설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성전(스룹바벨 성전)에서 사라진 두 기둥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스룹바벨은 두 번째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두 번째 성전에는 ‘야긴’과 ‘보아스’ 이 두 기둥이 사라졌습니다. 스룹바벨 성전을 증축한 헤롯대왕의 성전에는 당연히 없었습니다. 왜 이 두 기둥이 사라졌을까요? 성전의 가장 핵심적인 기능을 하는 것은 사라질 수 없습니다. 이는 이 두 기둥이 성전의 핵심적인 기능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왜 솔로몬은 두 기둥을 세웠을까요? 우리는 성경이 침묵하고 있어 이 점에 대해 섣불리 짐작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성전에서 있었던 것이 스룹바벨 성전에 없었다는 사실은 솔로몬의 의지가 반영된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기둥의 구조를 잘 분석해보면 다윗과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함을 두 기둥으로 나타내었고, 이를 통해 다윗의 왕권과 왕들이 굳건히 설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솔로몬의 생각일 뿐입니다. 솔로몬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이해는 되지만, 이는 단지 인간적인 생각일 뿐,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생각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지 않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대가를 바라는 것은 기복 신앙입니다.
어떻게 다윗 왕권은 든든히 설 수 있습니까?
열왕기상 2:3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주} 네 [하나님]의 책무를 지켜 그분의 길들로 걸으며 그분의 법규와 명령과 법도와 증언을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또 네가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리라.”
열왕기상 6:11-13
“{주}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건축하고 있는 이 집으로 말하건대 만일 네가 내 법규 안에서 걷고 내 법도를 집행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 그것들 안에서 걸으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내 말을 네게 행할 것이요, 또 내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솔로몬에게 말씀을 따라 행하면, 율법을 지키면 다윗에게 한 말을 행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결코 그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고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는가?
“솔로몬의 마음이 돌아서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떠났으므로 {주}께서 그에게 분노하시니라. 그분께서 전에 두 번 그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관하여 그에게 명령하사 그가 다른 신들을 따라가지 말라고 하셨으나 그가 {주}께서 명령하신 것을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러한 일을 행하였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내 법규를 지키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반드시 이 왕국을 네게서 빼앗아 찢어서 네 신하에게 주리라.”(열왕기상 11:9-11) 남 유다의 마지막 왕은 시드기야입니다. 시드기야 왕을 끝으로 남유다의 역사는 끝이납니다. 이와 함께 다윗의 육신적 후손들의 왕국은 여기서 끝납니다.
오늘 이 시대에 많은 기복적 생각들이 성도들에게 있습니다. 새벽 기도를 안 해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십일조를 안 해서 하나님께서 경제적 어려움을 주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 어려움들을 만날 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우리의 행위와 관계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구약에서 하나님의 축복은 물질적 축복을 동반하였습니다. 물질적 축복이 하나님의 축복의 표시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하나님의 경륜은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오직 영적인 축복입니다. 우리가 환란과 핍박을 당해도 우리에게 영적인 축복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축복은 영적인 축복이었습니다. 그는 결코 부유하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말씀에 기초한 바른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이런 샤머니즘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성경 말씀에 기초해 생각할 줄 아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