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믿음
1. 공동체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요한일서는 평화로운 시절에 쓰인 편지가 아닙니다.
공동체 안에 다른 가르침이 들어왔습니다. 그 가르침은 이것이었습니다. 인간 예수와 신적인 그리스도는 별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받을 때 신적인 그리스도가 임했지만, 십자가의 고난 직전에 그 그리스도는 떠났다는 것입니다. 신은 고통을 겪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단순한 인간 예수일 뿐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피를 흘려 우리를 구원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가공의 위협이 아니었습니다. 요한일서 2장 19절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실제로 사람들이 떠났습니다. 공동체가 쪼개졌습니다.
그 가르침은 남아있는 공동체를 흔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진짜 그리스도이신지, 십자가가 진짜 구원인지, 내가 믿는 것이 맞는 것인지—흔들렸습니다.
요한은 이 흔들리는 공동체를 향해 선언합니다.
"무엇이든 하나님에게서 난 것은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4절)
믿음이 세상을 이긴다고. 그런데 어떤 믿음입니까.
2.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하나님에게서 태어났으며 낳으신 그분을 사랑하는 자마다 그분에게서 난 자도 사랑하느니라." (1절)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종교적 동의가 아닙니다. 당시 공동체를 흔들던 가르침에 맞서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세례받을 때만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도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 고난과 죽음이 구원의 핵심입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하나님께로 난 자의 표식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삶을 바꿉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명령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줄 아나니 우리가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 이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니라. 그분의 명령들은 무겁지 아니하니라." (2-3절)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합니다. 그분의 명령들은 무겁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에게 그 명령은 짐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누가 세상을 이기는 자냐?" (5절)
3. 그런데 그 믿음의 토대가 흔들립니다
공동체는 두려웠습니다.
그 가르침이 그럴듯하게 들렸기 때문입니다. 고난 없는 그리스도, 십자가 없는 구원—그것은 듣기에 더 편했습니다. 요한은 이 흔들리는 공동체에게 말합니다. 이 믿음의 토대는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고. 하나님이 직접 증언하셨다고.
"이분은 물과 피로 오신 분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오지 아니하시고 물과 피로 오셨느니라. 증언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 이는 성령께서 진리이시기 때문이라." (6절)
물은 예수님의 세례입니다. 피는 십자가입니다. 요한은 강조합니다. 물로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 오셨다고. 세례받을 때 그리스도가 임했다가 십자가 전에 떠났다는 그 가르침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예수님은 세례부터 십자가까지, 고난과 죽음까지 포함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고난을 제거한 그리스도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성령이 그것을 증언하십니다.
4. 하늘과 땅이 함께 증언합니다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땅에 증언하는 셋이 있으니 영과 물과 피라. 또 이 셋이 하나로 일치하느니라." (7-8절)
하늘에서는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 증언합니다. 하나님 자신이 직접 보증하십니다. 땅에서는 성령의 역사, 예수님의 세례, 십자가—역사 안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이 증언합니다. 이 둘이 하나로 일치합니다.
유대 법에서 두세 증인의 증언이 있으면 사실로 인정됩니다. 그런데 하늘과 땅에서 각각 셋씩, 모두 여섯 증인이 하나로 일치하여 증언합니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언은 더 크도다." (9절)
사람의 증언도 받아들이는데, 하나님의 증언은 얼마나 더 크겠습니까. 이 믿음의 토대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5. 그 증언을 받아들이는 자와 거부하는 자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이 증언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그분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들었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에 관하여 주신 증언을 그가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10절)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자는 자기 안에 그 증언을 가집니다. 믿음이 내 안에 살아있습니다. 그런데 그 증언을 거부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증언의 내용은 하나입니다.
"또 그 증거는 이것이니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분의 아들 안에 있는 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11-12절)
아들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아들을 가진 자는 생명을 가집니다. 고난을 피하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 안에서도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이 있습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6. 오늘 우리 앞의 두 개의 전선
요한이 말하는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앞에는 그 믿음을 흔드는 두 개의 전선이 있습니다.
첫 번째 전선은 밖에서 옵니다.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흔드는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을 훌륭한 도덕 선생으로 만들고, 십자가를 희생 정신의 모델로 축소하고, 부활을 영적 각성의 상징으로 만듭니다. 1세기 이단이 세례와 십자가를 분리했던 것처럼, 오늘도 예수님의 정체를 조금씩, 아주 그럴듯하게 흔듭니다.
두 번째 전선은 안에서 옵니다.
예수님의 신성은 인정하지만 그분이 흘리신 피와 고난은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고난 없는 그리스도, 번영만 주는 예수님을 원합니다. 축복은 원하지만 십자가는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같은 방향입니다. 물로만 오신 예수님을 원하는 것입니다.
물로만 오신 예수를 원하는 것—이것이 1세기 이단의 언어였고, 오늘 우리 안의 언어이기도 합니다.
요한은 이 두 전선 앞에서 말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증언하셨다고. 하늘과 땅에서 증언하셨다고. 예수님은 물과 피로 오셨다고. 고난과 죽음까지 포함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이셨다고.
7. 이기는 믿음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고난을 극복하는 강한 의지가 아닙니다.
밖에서 흔드는 거짓 가르침 앞에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붙드는 것입니다. 안에서 흔드는 성공주의 앞에서 물과 피로 오신 그분을 붙드는 것입니다. 분별의 승리이면서 동시에 인내의 승리입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에서 직접 증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례부터 십자가까지, 영광과 고난을 포함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 아들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증언하신 예수님, 물과 피로 오신 그분을 믿는 자는 이미 세상을 이긴 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