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신자의 표지: 진리 안에 거하는 자
서론
우리는 지금까지 참된 신자의 표지를 살펴왔습니다. 참된 신자는 순종하는 자입니다. 참된 신자는 사랑하는 자입니다. 오늘 우리는 마지막 표지 앞에 섰습니다. 참된 신자는 진리 안에 있는 자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습니까?
요한은 이 편지를 쓰면서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지금은 마지막 때라." 그리고 그 증거로 제시하는 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출현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적그리스도가 세상 밖에서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요한은 말합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생각해 보십시오. 함께 예배드리던 자들이 떠났습니다. 함께 교제하던 자들이 떠났습니다. 함께 말씀을 들었던 자들이 이제는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신자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충격이었겠습니까. 낯선 이방인이 떠난 것이 아닙니다. 함께 앉아 떡을 떼던 자들이 떠난 것입니다.
남아있는 신자들의 마음속에 이 질문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바로 이 흔들리는 신자들을 향해 요한은 정죄가 아닌 확신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 확신 위에서 책임을 촉구합니다.
I. 참된 신자는 진리 안에서 이미 아는 자입니다 (2:18–21)
적그리스도들은 진리를 떠났습니다.
요한은 19절에서 말합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으니."
떠남 자체가 그들의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그들이 공동체를 떠난 것은 진리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그들이 처음부터 진리에 속하지 않았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나 남아있는 신자들은 흔들렸습니다. 여러분도 흔들릴 때가 있지 않습니까? 가까운 사람이 믿음을 떠날 때, 익숙하던 가르침이 거짓으로 드러날 때, "나는 과연 바로 서 있는가?" 하는 질문이 밀려옵니다.
바로 그때 요한은 선언합니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v.20)
기름 부음 —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진리를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것은 명령이 아닙니다. 선언입니다. "알도록 힘쓰라"가 아닙니다. "너희는 이미 알고 있다"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음은 참된 신자 안에 지금 이 순간도 살아있습니다. 그 기름 부음이 진리와 거짓을 분별하게 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지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군가 떠났다고 해서 진리가 흔들린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이미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너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참된 신자에게 주어진 첫 번째 확신입니다.
II. 참된 신자는 진리가 그 안에 거하는 자입니다 (2:22–25)
적그리스도들은 진리를 부인했습니다.
요한은 22절에서 묻습니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그리고 스스로 대답합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핵심입니다. 단순한 도덕적 타락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진리를 부인한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 — 성육신의 진리를 부정했습니다.
요한은 23절에서 그 결과를 선명하게 말합니다. 아들을 부인하는 자는 아버지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고백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 자체가 무너집니다.
그렇다면 참된 신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요한은 24절에서 다시 선언합니다.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요한은 "너희가 복음을 붙들라"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들은 것", 곧 복음 자체가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내가 복음을 붙드는 것이기 이전에 복음이 이미 내 안에 살아 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 참된 신자는 복음을 붙드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이 그 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이 내 안에 거할 때 25절의 약속이 함께 옵니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흔들리는 감정이 아닙니다. 유행하는 신학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의 확실한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안에 무엇이 거하고 있습니까? 적그리스도가 진리를 부인할 때 참된 신자 안에는 이미 부인할 수 없는 복음이 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진리는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참된 신자에게 주어진 두 번째 확신입니다.
III. 참된 신자는 진리 안에서 견고한 자입니다 (2:26–27)
적그리스도들은 진리로 유혹했습니다.
요한은 26절에서 말합니다. "너희를 미혹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미혹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지속적이고 의도적입니다. 완전한 거짓이 아니라 진리처럼 보이는 거짓이기에 더 위험합니다.
그렇다면 참된 신자는 어떻게 견고합니까?
요한은 27절에서 다시 선언합니다.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성령은 지금 이 순간도 우리 안에 거하시며 가르치고 계십니다. 이것은 미래의 약속이 아닙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이 선언 위에서 비로소 명령을 내립니다. "그 안에 거하라."
순서를 놓치지 마십시오. 선언이 먼저입니다. 성령이 이미 거하신다 — 선언입니다. 성령이 이미 가르치신다 —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거하라 — 명령입니다.
명령에는 우리의 책임이 따릅니다. 성령께서 가르치시되, 거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한 번의 결단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날마다, 지금도, 계속해서 그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거해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말씀 안입니까? 기도 안입니까? 공동체 안입니까?
성령은 이미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복음은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하십시오. 다른 무엇보다, 다른 어디보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십시오. 이것이 모든 미혹을 이기는 참된 신자의 삶입니다.
결론
요한은 오늘 본문에서 세 종류의 사람을 보여줍니다.
진리를 떠난 자, 진리를 부인한 자, 진리로 유혹한 자 —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세 얼굴입니다.
그러나 참된 신자는 다릅니다.
기름 부음으로 이미 알고 있으며, 복음이 그 안에 이미 거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진리 안에서 견고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이 이 편지를 쓴 것은 흔들리는 신자들을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확신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함께하던 자들이 떠나도, 진리를 부인하는 자들이 일어나도, 미혹하는 자들이 우리를 흔들려 해도 —
너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진리는 이미 너희 안에 있습니다. 성령은 이미 너희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흔들리지 마십시오. 부인하지 마십시오. 그 안에 거하십시오.
이것이 오늘 이 시대, 이 자리에 서 있는 참된 신자의 표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