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여 — 진리 안에서 사랑하라
부녀의 현실 (1–2절)
"장로인 나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도다. 이는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로 말미암음이로다." (1–2절)
가까운 사람이 진리를 떠난 적이 있는가. 사랑하는데 — 함께 갈 수 없는 자리. 요한이 편지를 쓴 부녀가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요한은 자신을 장로로 소개한다. 권위로 누르는 것이 아니다. 관계 안에서 말하는 사람이다. 그가 편지를 쓰는 수신자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다. 순회 교사들을 받아들이고 섬기는 가정 교회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4절 원문을 보면 자녀들 중 일부만 진리 안에서 행하고 있다.
ἐχάρην λίαν ὅτι εὕρηκα ἐκ τῶν τέκνων σου περιπατοῦντας ἐν ἀληθείᾳ
여기서 ἐκ 가 중요하다. ἐκ는 부분을 나타내는 전치사다. ἐκ τῶν τέκνων — 자녀들 중에서. 전부가 아니라 일부임을 전치사 하나가 명시한다.
일부만이다. 전부가 아니다. 어쩌면 친족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진리 밖에 있다. 이것이 부녀의 현실이다.
요한은 이 현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편지를 쓴다.
1절에서 진리가 처음 등장한다.
ἐν ἀληθείᾳ — 진리 안에서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다. 사랑이 일어나는 영역이자 토대다. 요한은 첫 문장에서 이미 선언한다. 진리 없이는 사랑도 없다.
2절에서 요한은 진리가 어디 있는지 보여준다.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
진리가 두 곳에 있다. 헬라어 원문은 이 둘을 다른 전치사로 구별한다.
ἐν ἡμῖν — 우리 안에 μεθ' ἡμῶν — 우리와 함께
ἐν — 안에 — 개인 안에 거한다. μεθ' — 함께 — 공동체와 함께한다. 진리는 개인의 고백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토대다.
그리고 μένουσαν — 현재분사다. 지금도 계속 거하고 있다.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 영원히 — 흔들리지 않는다.
부녀의 현실은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진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진리 없이는 사랑도 없다. 그러나 진리가 있는 한 — 사랑도 있다.
생각해 볼 질문: 나에게 가까운 사람이 진리를 떠난 경험이 있는가. 그때 나는 어떻게 반응했는가.
요한의 간구 — 하나님이 먼저 오신다 (3절 전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로다." (3절)
부녀가 처한 현실을 안 요한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있다.
간구다.
그런데 이 간구가 특별하다. 다른 서신의 인사말을 보면 보통 있기를 원하노라 — 기원이다. 요한은 다르다.
원문에서 ἔσται — 미래형 직설법이다. 기원이 아니라 선언이다.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순서가 있다.
은혜 — 이 상황을 감당할 힘
↓
긍휼 — 고통 중에 하나님이 함께하심
↓
평강 —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다. 부녀가 처한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응답이다.
그런데 주목하라. 이 선언이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온다고 했다.
진리가 없다면 이 선언도 없다. 진리 안에 있는 자에게만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반드시 온다.
가까운 사람이 진리를 떠난 자리에 하나님이 먼저 오신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부녀가 진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볼 질문: 지금 내가 처한 현실에서 은혜, 긍휼, 평강이 각각 어떻게 필요한가. 그리고 그것이 어디서 오는가.
부녀가 붙든 진리 (3절 후반)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3절)
그렇다면 그 진리는 무엇인가.
요한이 명시한다. 예수 그리스도 — 하나님의 아들이 실제로 육체를 입고 오셨다는 것. 성육신이다.
원문은 이 진리를 두 가지 문법으로 못 박는다.
첫째 — παρὰ의 반복 — 동등성
παρὰ θεοῦ πατρός —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παρὰ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헬라어에서 같은 전치사를 반복하면 두 대상이 동등한 근원임을 나타낸다. 다른 서신들은 보통 παρὰ를 한 번 쓰고 아버지와 아들을 함께 묶는다. 요한은 따로 따로 쓴다. 의도적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동등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교사나 선지자가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한 분이다.
둘째 — 관사의 반복 — 유일성
τοῦ υἱοῦ τοῦ πατρός — 그 아버지의 그 아들
관사가 두 번 붙는다. 막연한 아들이 아니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 — 유일한 아들임을 강조한다.
παρὰ의 반복 — 동등성 관사의 반복 — 유일성
이 두 가지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사말 안에 못 박는다.
7절을 보면 거짓 교사들이 부인하는 것이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
부녀는 이것을 붙들고 있다. 떠난 자들은 이것을 버렸다.
여기서 명제가 선명해진다. 진리 — 성육신을 고백하는 것 — 그것이 없다면 은혜와 긍휼과 평강도 없다. 사랑도 없다.
진리 없이는 사랑도 없다.
생각해 볼 질문: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나의 삶에서 실제로 붙들고 있는 진리인가. 아니면 머리로만 아는 교리인가.
진리 안에서 굳게 서는 부녀 (4–6절)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또 사랑은 이것이니 그의 계명들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4–6절)
요한이 기쁨을 표현한다.
그런데 원문에서 ἐκ — 일부 — 가 다시 보인다. 일부만 진리 안에서 행하고 있다. 기쁨 안에 염려가 있다. 칭찬 안에 이미 경고가 숨어 있다.
그래서 요한이 간청한다.
원문에서 ἐρωτῶ — 간청하다. 명령이 아니다. 요한이 권위로 강요하지 않는다. 사랑으로 요청한다.
그리고 직접 부른다.
κυρία — 부녀여
4절까지는 3인칭으로 말했다. 여기서 처음으로 직접 부른다. 긴장이 높아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것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ἀπ' ἀρχῆς — 처음부터
거짓 교사들은 새로운 것을 가져온다. 요한은 정반대로 말한다. 처음부터 있던 것을 붙들어라.
그리고 5–6절에서 ἵνα 가 세 번 반복되면서 부녀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그 질을 규정한다.
ἵνα 첫 번째 — 누구를 사랑하는가
ἵνα ἀγαπῶμεν ἀλλήλους — 서로 사랑하자
진리 안에 함께 있는 자들끼리 서로를 붙드는 것이다. 진리 없이는 이 사랑도 없다.
ἵνα 두 번째 — 어떻게 사랑하는가
ἵνα περιπατῶμεν κατὰ τὰς ἐντολὰς — 계명을 따라 행하자
사랑은 감정이 아니다. 진리의 계명을 따라 걸어가는 것이다. 진리 없이는 이 걸음도 없다.
ἵνα 세 번째 — 어디서 사랑하는가
ἵνα ἐν αὐτῇ περιπατῆτε — 그 안에서 행하라
ἐν αὐτῇ — 진리 안에서. 진리 밖으로 나가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ἵνα 세 번이 말하는 것은 하나다.
사랑의 대상도 — 진리 안에서 사랑의 방식도 — 진리 안에서 사랑의 자리도 — 진리 안에서
진리 없이는 사랑도 없다.
생각해 볼 질문: 나의 사랑은 감정인가 — 아니면 진리 안에서 걸어가는 것인가. 진리를 떠난 사람을 향한 나의 사랑은 어떤 모습인가.
결론 — 부녀여, 진리 안에서 사랑하라
요한은 부녀에게 사랑하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진리 안에서 사랑하라고 한다.
그것이 어렵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어렵다.
그러나 요한이 처음부터 말해온 것이 있다.
진리는 우리 안에 거한다.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다. 그 진리가 성육신이다. 예수 그리스도 — 그 아버지의 그 아들. 그분으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온다. 그 진리 위에서 사랑이 걸어간다.
진리 없는 사랑은 상대를 진리 밖에 머물게 한다.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것이 상대를 진리 안으로 이끄는 것이다.
부녀에게 주어진 이 말이 오늘 당신에게 주어진 말이다.
가까운 사람이 진리를 떠났는가. 그래도 진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 진리 위에 서라. 그리고 사랑하라.
부녀여 — 진리 없이는 사랑도 없다. 진리 안에서 사랑하라.
마지막 질문: 지금 내 삶에서 진리 안에서 사랑해야 할 사람이 있는가. 그 사람을 향해 어떻게 걸어가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