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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요한일서 2:7~17
성경본문내용 7. 형제들아, 내가 새 명령을 너희에게 쓰지 아니하고 너희가 처음부터 가졌던 옛 명령을 쓰노니 그 옛 명령은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그 말씀이니라.
8. 또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명령을 쓰노니 그것은 그분 안에서와 너희 안에서 참된 것이니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이제 참 빛이 비치기 때문이니라.
9. 자기가 빛 가운데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도 어둠 가운데 있느니라.
10.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그 속에 걸려 넘어지게 할 것이 전혀 없으나
11.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가운데 있고 어둠 가운데 걸으며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기 때문이라.
12. 어린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들이 그분의 이름으로 인해 용서되었기 때문이라.
13. 아버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처음부터 계신 그분을 알았기 때문이라. 젊은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저 사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이라. 어린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기 때문이라.
14. 아버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처음부터 계신 그분을 알았기 때문이라. 젊은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며 너희가 저 사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이라.
15.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어떤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은 [아버지]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나느니라.
17. 세상도 그것의 정욕도 사라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토록 거하느니라.
강설날짜 2026-04-14

하나님에게서 온 사랑만이 머문다

 

세상은 지나가고, 사랑은 머문다

우리는 지나가는 것을 붙들고 삽니다. 문제는 사랑의 방향입니다. 요한은 참 신자에게는 세 가지 표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 가운데 두 번째, 사랑입니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요한에게 사랑은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사랑을 설명하면서 뜻밖의 질문을 먼저 던집니다. 이 사랑은 어디서 왔는가. 오늘 본문이 그 답을 보여줍니다.

 

이 사랑은 어디서 왔는가

요한은 이 계명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처음은 아주 오래전이 아닙니다. 이 공동체가 복음을 처음 들었던 그 날입니다. 그 날부터 이 사랑은 이미 그들 안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착한 사람이라서 생겨난 것도 아닙니다. 복음이 왔을 때 하나님이 먼저 주신 것입니다. 이 사랑의 출처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이 사랑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런데 요한은 바로 다음 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동시에 이것은 새 계명이라고. 옛 것이면서 새 것이라니,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새롭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면 이 긴장이 풀립니다.

그리스어에서 "새롭다"를 뜻하는 단어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νέος(네오스)입니다. 시간적으로 새것, 방금 만들어진 것입니다. 새로 산 물건, 갓 태어난 것 — 그런 의미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여기서 쓴 단어는 이것이 아닙니다. καινός(카이노스)입니다. 이것은 질적으로 새것,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것을 말합니다. 시간이 지나서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종류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한이 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이 계명은 방금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다른 차원이 되었습니다.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 사랑이 이제 신자 안에서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이 사랑은 이미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살아내야 할 명령이기도 합니다. 요한이 계명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쓰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받았다고 해서 저절로 흘러나오지 않습니다. 받은 것을 매일 살아내는 것입니다. 은혜가 먼저이고, 순종이 그 뒤를 따릅니다.

 

 

이 사랑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하나님에게서 받은 사랑은 방향이 있습니다. 형제를 향해 흘러갑니다. 요한은 아주 단순하게 말합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안에 있고, 미워하는 자는 어둠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미워하는 자에 대해 요한이 쓴 단어가 흥미롭습니다. "눈이 멀었다" — 그것도 현재 눈이 먼 것이 아닙니다. 이미 눈이 멀었고, 그 상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미움은 한순간의 감정이 아닙니다. 오래 미워하다 보면 영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보는 눈 자체가 닫혀버립니다.

이것은 진단이기 이전에 초대입니다. 요한이 이 본문을 쓴 것은 정죄가 아닙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확인하고, 사랑 쪽으로 방향을 돌리라는 초대입니다. 요한이 이 본문을 쓴 것은 그 방향으로 우리를 부르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왜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가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왜 잘 되지 않습니까. 요한은 15절에서 그 뿌리를 드러냅니다. 내 사랑이 이미 다른 곳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없습니다. 사랑은 한 자리에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세상이 내 사랑을 차지하고 있으면, 형제를 향해 흘러갈 자리가 없습니다.

여기서 세상은 물질이나 자연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 돌아가는 가치 체계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그 세상이 우리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세 가지로 보여줍니다. 육신의 정욕은 하나님 없이 자신을 채우려는 충동입니다. 먹는 것, 안전, 편안함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 없이 그것들로만 자신을 채우려 할 때 문제가 됩니다. 안목의 정욕은 보이는 것으로 자신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하와가 선악과를 "보기에 좋고 탐스럽다"고 느낀 그 구조와 같습니다. 남이 가진 것을 보고 나도 가져야 한다는 욕구, 비교에서 오는 갈망입니다. 눈이 먼저 움직이고 마음이 따라갑니다. 이생의 자랑은 내가 가진 것으로 나를 정의하려는 태도입니다. 내 지위, 내 성취, 내 소유로 "나는 이런 사람이다"를 확인받으려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자신을 세우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달라 보이지만 뿌리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자기 자신을 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17절에서 선언합니다. 이것들은 지나갑니다. 현재형입니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과 그 욕망은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머뭅니다. 지나가는 것을 사랑하면 함께 지나가고, 머무는 것을 사랑하면 함께 머뭅니다.

 

결론

참 신자의 두 번째 표지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우리 안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처음 들었던 그 날, 하나님이 먼저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이 되었고, 지금 우리 안에서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자는 매일 그것을 살아내고, 형제를 향해 흘려보내며, 세상을 향해 굽어지지 않습니다. 세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금 내 사랑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 그 질문을 붙들고 오늘 하루를 사십시오. 사랑이 머무는 곳에, 당신도 머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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