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없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1. 사랑하고 싶은데 두렵습니다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두렵습니다. 상처받을까봐 두렵습니다. 거절당할까봐 두렵습니다. 먼저 손을 내밀었다가 외면당할까봐 두렵습니다. 그 두려움이 마음을 닫고, 손을 붙잡고, 한 발짝 물러서게 만듭니다.
요한일서의 공동체는 더 구체적인 두려움 앞에 있었습니다. 이단적 가르침이 공동체를 흔들었고, 떠났다가 돌아온 자들이 있었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바로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 앞에서 공동체는 알았습니다.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그런데 알면서도 두려웠습니다. 아는 것이 심장까지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바로 거기서 시작합니다.
2.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알았고 또 믿었나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16절)
알았고, 믿었나니.
요한일서 공동체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면서도 두려웠습니다. 상처를 준 형제가 돌아왔을 때, 그 앎이 심장까지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거기서 말합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르다고.
아는 것은 머리의 일입니다. 믿는 것은 심장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아는 것과, 그 사랑이 지금 나를 향해 있다는 것을 실제로 믿는 것은 다릅니다. 그 사랑이 심장까지 내려올 때, 비로소 두려움을 다루는 방식이 바뀝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앎이 심장까지 내려옵니까.
3. 반전: 그분이 먼저였습니다
"사랑에는 결코 두려움이 없고 완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이는 두려움에 고통이 있기 때문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완전하게 되지 못하였느니라." (18절)
두려움과 완전한 사랑은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두려움에 고통이 있기 때문"이라는 표현을 천천히 읽어야 합니다. 원어에서 이 고통은 형벌에 가깝습니다. "내가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면 벌받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입니다. "내가 자격 미달이라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이 두려움 자체가 이미 잘못된 출발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형벌을 이미 담당하셨습니다. 내가 치러야 할 벌을 그분이 이미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사랑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은, 십자가를 아직 심장으로 믿지 못한 것입니다.
요한은 19절에서 그 뿌리를 단번에 뽑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사랑함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 (19절)
그분이 먼저였습니다.
우리가 아직 등을 돌리고 있을 때,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독생자를 화목 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내가 준비되기 전에, 내가 충분해지기 전에, 내가 돌아서기 전에—그분이 먼저 오셨습니다. 그 형벌도 이미 그분이 담당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심장까지 내려올 때, 두려움의 뿌리가 뽑힙니다.
나는 이미 받아들여졌습니다. 내가 충분하지 않을 때도, 내가 등을 돌리고 있을 때도, 그분이 먼저 오셨습니다. 그 사실을 머리가 아니라 심장으로 믿는 순간, 두려움이 설 자리를 잃습니다.
4. 그 사랑이 형제를 향해 흘러갑니다
그렇다면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남습니까.
요한은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킵니다.
"어떤 사람이,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하는 자니 자기가 본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어찌 자기가 보지 못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으리요?" (20절)
형제입니다.
다시 요한일서 공동체로 돌아가 보십시오. 이단적 가르침을 따라 떠났다가 돌아온 그 사람. 공동체에 상처를 주었던 그 사람. 요한은 그 사람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그 형제가 있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만이 아닙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 나와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그 사람을 향해서도 이 사랑이 흘러갈 수 있습니까.
요한의 대답은 하나입니다. 우리도 등을 돌리고 있을 때 그분이 먼저 오셨습니다. 그 사랑을 심장으로 믿는 자라면, 이해할 수 없는 형제를 향해서도 손을 내밀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마지막을 이렇게 닫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자기 형제를 사랑하라는 이 명령을 우리가 그분께 받았느니라." (21절)
명령입니다. 그런데 이 명령은 짐이 아닙니다. 그분의 사랑이 심장까지 내려온 자에게, 형제 사랑은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명령이 필요할 만큼 우리가 약하다는 것을 아시기에, 그분이 그 명령조차 선물로 주셨습니다.
5. 두려움 없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사랑하고 싶은데 두렵습니다. 상처받을까봐, 거절당할까봐, 먼저 손을 내밀었다가 외면당할까봐. 혹은 내가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 벌받지 않을까봐.
그런데 두려움의 뿌리는 하나였습니다. 내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 내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뿌리를 뽑는 것도 하나입니다.
그분이 먼저였습니다. 우리가 아직 등을 돌리고 있을 때 먼저 오셨습니다. 그 형벌도 이미 그분이 담당하셨습니다. 그 사랑이 머리에서 심장으로 내려올 때, 두려움이 설 자리를 잃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형제를 향해 손을 내밀 수 있습니다.
나를 떠났던 사람,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향해.
그분의 사랑을 알고 또 믿는 자는, 두려움 없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