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빛 가운데로
서론 — 빛 밖에 있는 자들에게
요한은 1장에서 세 부류를 보여줬습니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어둠에 행하는 자. 죄가 없다 하는 자. 죄를 짓지 않았다 하는 자. 세 부류 모두 빛 밖에 있습니다. 그리고 공통점이 있습니다. 죄의 현실 앞에서 도망칩니다. 부정하거나, 은폐하거나, 외면합니다.
그런데 2장 1절이 방향을 바꿉니다.
요한은 죄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그러면서 동시에 빛으로 돌아오는 길을 가리킵니다. 어떻게입니까. 어떻게 죄를 지은 자가 다시 빛 가운데로 돌아올 수 있습니까.
이 두 절이 그 답을 세 가지로 말합니다.
본론 1 — 대언자가 옆에 계십니다
빛으로 돌아가는 첫 번째 — 혼자 가지 않습니다.
παράκλητος(파라클레토스)는 παρά(곁에) + κλητός(부름받은 자)의 합성어입니다. 직역하면 "내 곁에 부름받은 자"입니다. 어원 안에 이미 따뜻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내가 필요한 자리에 부름받아 곁에 있어주는 자. 돕는 자, 보혜사입니다. 법정 언어로는 변호인이지만, 그보다 먼저 곁에 있어주는 분입니다.
당신이 넘어졌을 때, 당신보다 먼저 아버지 앞에 서 계신 분이 있습니다.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δίκαιον — 의로우신. 의롭지 않은 변호인은 의로우신 재판장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의로우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 옆에서 아버지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의가 근거가 아닙니다. 그분의 의가 우리의 근거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4-16장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이 떠나시면서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다른"이라는 말 안에 예수님 자신이 이미 보혜사이셨음이 담겨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보혜사로 일하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앞에서 대언자로 일하십니다. 위로는 그리스도가, 안으로는 성령이 — 두 분이 동시에 우리 곁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빛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자가 아닙니다. 곁에 부름받은 분이 계십니다.
본론 2 — 길이 이미 열렸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죄인이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공의가 충족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변호인이 있다고 해서 재판장의 요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구약의 장막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속죄일, 대제사장은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그의 손에 피가 있습니다. 그 앞에 언약궤가 있습니다. 궤 안에는 율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요구입니다.
대제사장은 멈춥니다. 그리고 그 궤의 뚜껑, 속죄소 위에 피를 뿌립니다.
이 피 뿌림이 전부입니다. 설명이 아닙니다. 변명이 아닙니다. 다짐이 아닙니다. 피입니다. 죽음의 증거입니다. 값을 치렀다는 표시입니다. 율법의 요구와 하나님의 임재 사이에, 말이 아니라 피가 놓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의 요구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피를 통해 자기 백성을 보십니다.
그런데 이 피 뿌림은 매년 반복되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그 피가 완전하지 않다는 증거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새로운 속죄소이십니다. ἱλασμός — 화목 제물. 히브리어 כַּפֹּרֶת(카포레트), 속죄소의 그 단어입니다. 그분은 율법의 요구와 하나님 사이에 서신 분입니다. 그리고 자기 피를 뿌리셨습니다. 단번에. 영원히. 구약 대제사장의 피는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는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뿌려졌습니다.
αὐτὸς — 바로 그분 자신이. 대언자이시면서 동시에 화목 제물이십니다. 변호인이 자기 피로 재판장의 요구를 충족시킨 것입니다. 다시 반복될 필요가 없는 피 뿌림입니다.
그분이 길을 여셨습니다. 자기 피로, 단번에, 온 인류를 위해.
본론 3 — 그 길은 모두를 향해 열려 있습니다
그 길이 우리에게만 열린 것이 아닙니다.
요한은 범위를 의도적으로 확장합니다. 우리에서 온 세상으로. ὅλου τοῦ κόσμου — 온 세상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뿌려졌기 때문에, 그 길은 막혀 있지 않습니다. 누구든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합니다. 돌아오십시오. 이 길은 당신을 위해서도 열려 있습니다. 그 피는 충분합니다. 어떤 죄도, 어떤 과거도 이 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선교의 근거입니다. 빛으로 돌아오는 그 길이 온 세상을 향해 열려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담대하게 온 세상에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빛 가운데로 오십시오. 그분이 길을 여셨습니다.
빛으로 돌아오는 길은 모두를 향해 열려 있습니다.
적용 — 죄를 지었을 때 어디로 가야 합니까
죄를 지었을 때 우리는 어디로 갑니까.
1장의 세 부류처럼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정합니다. 은폐합니다. 외면합니다. 죄가 없는 척, 아무 일도 없었던 척. 그것이 더 쉬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빛 밖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죄를 지었습니까. 도망가지 마십시오. 숨지 마십시오. 대언자에게로 가십시오.
빛으로 돌아오는 길은 하나입니다. 내 의로움을 회복해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화목 제물의 피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분이 이미 길을 여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넘어진 그 자리에, 이미 대언자가 아버지 앞에 서 계십니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이 목표입니다. 요한이 먼저 말했습니다.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를 지었을 때, 그 죄가 우리를 빛 밖에 가두지 않습니다. 곁에 부름받은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화목 제물이 드려졌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었습니까. 도망가지 마십시오. 숨지 마십시오. 대언자에게로 가십시오. 그분의 피가 이미 공의를 충족시켰습니다. 온 인류를 위해, 단번에, 영원히.
다시 빛 가운데로 오십시오. 그분이 길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