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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요한일서3:11~18
성경본문내용 11. 이는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이 소식이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기 때문이라.
12. 가인과 같이 되지 말라. 그는 저 사악한 자에게 속하여 자기 형제를 죽였는데 그가 무슨 이유로 그를 죽였느냐? 자기 행위는 악하되 자기 형제의 행위는 의로웠기 때문이라.
13. 내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14.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하므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줄을 알거니와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 안에 거하느니라.
15. 누구든지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 속에는 영원한 생명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16.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으므로 우리가 이로써 그분의 사랑을 깨닫나니 우리가 형제들을 위해 우리의 생명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 그러나 누가 이 세상의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동정하는 마음을 닫아 그를 피하면 어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나의 어린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강설날짜 2026-04-22

사랑의 기준은 그리스도입니다

 

서론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지금까지 요한이 무엇을 말해왔는지를 먼저 보아야 합니다.

요한이 이 편지를 쓴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공동체 안에 영지주의자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영적인 지식만 있으면 된다. 실제 삶이 어떠한가는 중요하지 않다. 

요한은 이 가르침에 정면으로 맞섭니다.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면서 그분처럼 살지 않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참된 신앙은 반드시 삶으로 드러납니다. 요한이 2장 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예수님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삶입니다. 이것이 요한이 이 편지 전체에서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지금까지 예수님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삶을 여러 각도에서 말해왔습니다. 진리 안에 거하는 삶을 말했습니다. 순종하는 삶을 말했습니다. 의롭게 사는 삶을 말했습니다. 요한은 같은 진리를 계속 다른 각도에서 조명하면서 점점 깊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삶의 또 다른 면을 봅니다.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삶입니다.

오늘 요한은 세 가지를 통해 그 사랑을 보여줍니다. 먼저 우리 안에 있는 가인과 같은 모습을 직면하게 합니다. 그 다음 주님의 희생을 묵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제적 도움으로 사랑하게 합니다.

오늘 함께 그 여정을 걸어가겠습니다.

 

1부 — 우리 안에 가인과 같은 모습이 있습니다 (11-15절)

요한이 서론에서 사랑하라고 선언하자마자 곧바로 가인을 꺼냅니다.

"가인과 같이 되지 말라."

왜 갑자기 가인입니까? 요한이 우리에게 거울을 들이미는 것입니다. 사랑을 말하기 전에 먼저 내 안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그 거울 속에 두 가지가 보입니다.

첫째, 시기와 깊이 뿌리박힌 원한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미워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아벨이 잘못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본문이 명확하게 말합니다.

"자기 행위는 악하되 자기 형제의 행위는 의로웠기 때문이라."

아벨이 잘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벨의 제사가 열납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벨이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순간 가인 안에 무엇이 올라왔습니까?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가 시간이 지나면서 깊이 뿌리박힌 원한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장 교회적인 미움입니다.

저 형제가 나보다 더 인정받는 것이 불편합니다. 저 성도의 헌신이 눈에 거슬립니다. 저 사람이 잘 되는 것이 마냥 기쁘지 않습니다. 그 마음이 시간이 지나면서 설명하기 어려운 깊은 원한이 됩니다.

칼을 들지 않았을 뿐입니다.

둘째, 그 미움의 뿌리가 어디인가입니다

요한이 가인에 대해 결정적인 한 마디를 합니다.

"그는 저 사악한 자에게 속하여."

가인의 시기와 원한은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마귀에게 속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영적 뿌리가 미움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13절에서 시선을 현재로 돌립니다.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가인이 아벨을 미워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아벨이 의로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이유도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입니다. 가인의 이야기가 단순한 역사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14절에서 요한이 이것을 신학적으로 선언합니다.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하므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줄을 알거니와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 안에 거하느니라."

여기서 "옮겨간"이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헬라어로 완료형입니다. 과거에 이미 일어난 사건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옮겨졌습니다. 지금도 그 상태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생명 안에 있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자입니다. 미움은 사망입니다. 사랑은 생명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에서 사랑이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15절에서 요한이 결론을 내립니다.

"누구든지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 속에는 영원한 생명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미움이 끝까지 가면 살인입니다. 빛의 자녀 안에 그 미움이 거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 이 순간 솔직하게 자신을 들여다보십시오.

내 안에 가인이 느꼈던 그 감정이 없습니까? 형제를 향한 시기가 없습니까? 오래전 상처에서 비롯된 원한이 마음속에 여전히 뿌리내리고 있지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 안에 가인과 같은 시기와 원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는 이것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여기서 우리의 시선을 전혀 다른 곳으로 돌립니다. 가인에게서 눈을 들어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2부 — 주님의 희생을 묵상하십시오 (16절)

16절입니다. 오늘 본문의 심장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첫째, 희생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버리셨으니"는 헬라어로 현재 직설법입니다.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취소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다는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요한이 말합니다.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어디서입니까? 감정에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경험에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에서입니다.

그분이 목숨을 버리시기 전까지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사랑을 감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건이 맞으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받으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달랐습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자를 위해 버리신 사랑이었습니다. 감정이 끌려서가 아니라 의지로 선택하신 사랑이었습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잃으면서 상대방을 살리는 사랑이었습니다.

희생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미 생명 안에 있다는 것을 1부에서 보았습니다. 그 생명이 어디서 왔습니까? 바로 이 희생에서 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에 우리가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생명에서 흘러나오는 사랑도 이 희생을 닮아야 합니다.

둘째, 그 사랑에는 방향이 있습니다

요한이 바로 이어서 말합니다.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왔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에게서 멈추지 않습니다. 형제에게로 흘러가야 합니다. 이것이 방향입니다.

그런데 이 방향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가인과 같은 모습은 어느 방향을 향합니까?

그런데 그리스도의 사랑은 반대 방향입니다. 

주님의 희생을 묵상할 때 이 방향이 바뀝니다. 나를 향하던 시선이 형제를 향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지를 알게 될 때 시기와 원한이 설 자리를 잃습니다.

그러므로 묵상하십시오

지금 이 순간 잠깐 멈추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내가 받을 자격이 없을 때 버리셨습니다. 내가 배신했을 때도 버리셨습니다. 내가 시기하고 원한을 품고 있을 때도 그분은 나를 위해 마음을 닫지 않으셨습니다.

그 사랑이 지금 당신 안에 있습니다.

주님의 희생을 깊이 묵상하는 자는 형제를 향한 시기와 원한을 오래 붙들고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받은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이제 형제에게로 흘러가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목숨을 버리는 사랑이라고요? 저는 그렇게까지는 도저히 못합니다."

요한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내려옵니다.

 

3부 — 실제적 도움으로 사랑하십시오 (17-18절)

17절입니다.

"누가 이 세상의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동정하는 마음을 닫아 그를 피하면 어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하겠느냐?"

첫째, 최대치에서 최소치로 내려옵니다

요한이 16절에서 최대치를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최대치)

그리고 17절에서 최소치로 내려옵니다.

우리: 재물로 형제를 돕는 것 (최소치)

목숨까지는 지금 당장 버리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 당장 할 수 있습니다. 형제의 궁핍을 알면서 마음을 닫지 않는 것입니다. 가진 것으로 형제를 외면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이 이렇게 최대치에서 최소치로 내려오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랑을 너무 높은 곳에만 두면 아무도 시작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이 기준이지만 그 기준이 지금 내가 있는 자리까지 내려와야 합니다. 요한은 그 기준을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까지 끌어내립니다.

둘째, 형제의 필요를 향해 마음을 여십시오

여기서 결정적인 표현이 있습니다.

"동정하는 마음을 닫아."

요한이 쓴 단어가 매우 강렬합니다. 원래 내장, 창자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우리가 극도로 슬프거나 기쁠 때 배 속이 뒤틀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요한은 바로 그 감각으로 사랑을 표현합니다. 머리로 계산하는 동정이 아닙니다. 형제의 아픔이 내 배 속 깊은 곳을 뒤흔드는 긍휼입니다. 가장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감정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말합니다. 그 마음을 닫는다고 합니다.

닫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움직였는데 의도적으로 그 마음을 눌러버리는 것입니다.형제가 어렵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배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도 어렵다"
"저 사람은 저럴 만하다"
"내가 왜 도와야 하는가"
"나중에 하지"

그리고 그 마음을 닫아버립니다.

요한이 말합니다. 그렇게 그 깊은 긍휼의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정죄가 아닙니다. 이렇게 묻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 그 마음을 닫으셨습니까? 당신이 받을 자격이 없을 때도 닫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이 배신했을 때도 닫지 않으셨습니다. 그 사랑이 지금 당신 안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형제를 향해 그 마음을 닫을 수 있겠습니까?

셋째, 말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입니다

18절입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한이 마지막으로 못을 박습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입니까?

마음이 움직였는데 행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형제가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 "기도할게요"라고만 하는 것입니다. "힘내세요"라고 말하면서 실제로 손을 내밀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형제의 궁핍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요한이 말합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요한이 말하는 행함은 도덕적 노력이 아닙니다.

내가 만들어내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통해 형제에게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행함입니다. 그것이 진실함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만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셨습니다.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 사랑이 지금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말로만 사랑하지 않습니다. 행함으로 사랑합니다.

 

적용

오늘 이 자리에서 주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형제에게 마음을 닫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상처를 받아 마음을 닫은 분이 있습니까?

그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십시오. 시기가 있습니까? 오래된 원한이 뿌리내리고 있습니까? 그것이 가인과 같은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 마음을 닫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이 받을 자격이 없을 때도 닫지 않으셨습니다. 그 사랑이 지금 당신 안에 있습니다. 오늘 그 마음을 여십시오.

형제의 잘됨이 불편한 분이 있습니까?

그것이 가인이 아벨을 향해 품었던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셨습니다. 당신은 이미 가장 큰 것을 받은 자입니다. 오늘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십시오. 그 묵상이 깊어질수록 형제의 잘됨이 기쁨이 됩니다.

형제의 궁핍을 알면서 마음을 닫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이 당신 안에 있다면 그 사랑이 형제에게로 흘러가야 합니다. 오늘 그 형제에게 손을 내미십시오. 전화 한 통이어도 됩니다. 문자 하나여도 됩니다. 필요를 채워주는 작은 도움이어도 됩니다. 그것이 말이 아닌 행함입니다. 그것이 긍휼의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요한이 우리에게 세 가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안에 가인과 같은 모습이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기가 있고 원한이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분이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 사랑으로 생명 안에 있습니다.

그 사랑이 방향을 가지고 형제에게로 흘러갑니다. 목숨까지는 아니어도 지금 당장 형제의 필요를 향해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말이 아닌 행함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감정으로 사랑하면 감정이 식을 때 끝납니다. 의무로 사랑하면 지칠 때 멈춥니다. 그러나 주님의 희생을 묵상하는 자의 사랑은 다릅니다.

그 사랑은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버리셨고 우리는 이미 그 생명 안에 있습니다. 그 생명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이 오늘 형제에게로 향합니다.

오늘 한 가지만 기억하고 가십시오.

주님께서 당신을 위해 마음을 닫지 않으셨습니다. 그 사랑이 지금 당신 안에 있습니다. 오늘 그 사랑으로 형제에게 마음을 여십시오.

그것이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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