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겨진 씨는 반드시 자란다
들어가며
요한의 공동체 안에 분열이 있었습니다.
어떤 자들이 떠났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2:19)
남아있는 자들은 흔들렸습니다. 저들이 떠났는데 우리가 맞는 것입니까?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요한이 이 편지를 쓴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5:13)
정죄가 아닙니다. 확신입니다. 3:4-10은 그 확신의 근거를 말합니다.
첫 번째: 그분께서 나타나셨다
요한은 먼저 죄의 본질을 선언합니다.
"누구든지 죄를 범하는 자는 율법도 범하나니 죄는 율법을 범하는 것이니라." (4절)
"율법을 범하는 것"—그리스어 ἀνομία(anomia)입니다. ἀ는 부정, νόμος는 법입니다. lawless—법 없음입니다. 단순히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닙니다. 법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죄는 실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왕 되심을 향한 반역입니다.
이 반역 앞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분께서 우리의 죄들을 제거하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알거니와 그분 안에는 죄가 없느니라." (5절)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이것이니 곧 그분께서 마귀의 일들을 멸하시려는 것이라." (8절)
그리스도가 나타나셨습니다.
5절은 개인을 향합니다. 우리의 죄들을 가져가시려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분 안에는 죄가 없으십니다. lawless하지 않으신 분—하나님의 통치 안에 완전히 거하시는 분만이 우리의 죄를 제거하실 수 있습니다.
8절은 우주를 향합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해왔습니다. 반역의 원천 자체를—멸하시려고 나타나셨습니다.
개인의 죄 용서와 우주적 반역의 해체. 이 두 사역이 하나의 성육신 안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선언합니다.
"누구든지 그분 안에 거하는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누구든지 죄를 짓는 자는 그분을 보지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6절)
이것은 완전주의가 아닙니다. 요한은 이미 말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1:8)
6절이 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그분 안에 거하는 자는 죄를 삶의 방식으로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 없는 완벽한 삶이 아닙니다. 죄 안에 머무르는 것이 불가능한 삶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본성을 바꾼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씨가 심겨졌다
"누구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분의 씨가 그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 그는 [하나님]에게서 났으므로 죄를 지을 수 없느니라." (9절)
그리스도가 나타나신 결과가 무엇입니까? 씨가 심겨졌습니다.
마귀의 자녀는 아비의 본성을 이어받습니다.
"죄를 범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죄를 짓느니라." (8절 전반)
처음부터 반역하는 본성—그것이 마귀의 자녀들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난 자 안에는 전혀 다른 씨가 심겨졌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닮은 본성입니다. 씨는 본성입니다. 사과 씨에서 포도나무가 나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심겨진 자에게서 죄의 삶이 열매로 나오는 것은 본성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씨는 지금도 머물러 있습니다.
요한은 "더 노력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씨가 이미 심겨졌다고 말합니다. 변화의 동력은 내 의지가 아닙니다. 심겨진 씨의 본성입니다.
이것이 요한이 흔들리는 신자들에게 주는 확신입니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2:20)
기름 부음을 받은 자—씨가 심겨진 자—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 생명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세 번째: 본성은 드러난다
"이로써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누구든지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느니라." (10절)
씨는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본성은 반드시 밖으로 나옵니다. 그리스도가 나타나셨고, 씨가 심겨졌습니다. 그 결과가 삶으로 드러납니다.
요한은 경고합니다.
"어린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분께서 의로우신 것 같이 의로우며" (7절)
속지 마십시오. 삶이 없는 신앙 고백은 신앙 고백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경고는 정죄가 아닙니다. 확인입니다.
씨가 심겨진 자의 삶에는 방향이 있습니다. 의를 행하려 하고, 형제를 사랑하려 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방향이 있습니다. 그 방향이 씨의 증거입니다.
나가며
요한이 이 편지를 쓴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5:13)
흔들리는 신자들에게 요한이 주는 것은 정죄가 아닙니다. 확신입니다.
그리스도가 나타나셨습니다. 당신의 죄를 제거하시려고. 마귀의 일들을 멸하시려고.
그리고 씨가 심겨졌습니다. 당신 안에. 지금도 머물러 있습니다.
그 씨는 반드시 자랍니다.
죄 안에서 찔림을 받습니까? 의를 행하고 싶고 형제를 사랑하고 싶습니까? 완벽하지 않아도 그 방향이 있습니까?
그것이 씨의 증거입니다.
"이는 그분의 씨가 그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 (9절)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한일서 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