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당시 교회 안에는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 이렇게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다. 은혜 안에 있다. 그러므로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다."
구원의 정체성이 삶의 해이함으로 둔갑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구원받은 것이 사실이라면, 반드시 이렇게 살게 되어 있다.
먼저 — 은혜가 먼저입니다
ἐπίγνωσις (epignōsis) — 그를 아는 것
베드로는 5절의 명령 앞에 3절에서 이것을 먼저 선언합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헬라어 epignōsis — 단순한 지식이 아닙니다. 깊고 친밀한 인격적 앎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게 된 그 자리에서 이미 모든 것이 주어졌습니다. 생명도, 경건도,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것도 — 이미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받은 것은 자라야 합니다. 씨앗이 땅에 심겨졌다면 반드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삶 안에서 자라나는 것 — 그것이 바로 이 사슬입니다.
그러므로 5절의 명령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스스로 덕목을 쌓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주신 것 위에서 자라가라는 것입니다.
아낌없이 더하라
ἐπιχορηγήσατε (epichorēgēsate)
번역은 "더하라"이지만 헬라어 원문의 뉘앙스는 훨씬 강합니다.
어근 chorēgeō 는 고대 그리스에서 합창단 공연의 전체 비용을 혼자 감당하는 후원자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명령은 "조금 더해 보라"가 아닙니다. 아낌없이, 풍성하게, 전력을 다해 공급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이제 그 은혜 위에서 아낌없이 자라가십시오.
사슬을 따라가십시오
본문의 구조는 헬라 수사학의 소리테스(Sorites) 입니다.
앞 단어가 끝나는 곳에서 다음 단어가 시작됩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믿음 때문에 덕스럽게 살려 합니다. 덕스럽게 살려 하는 사람은 덕 때문에 무엇이 옳은지 알려 합니다. 무엇이 옳은지 아는 사람은 지식 때문에 자신을 절제합니다. 자신을 절제하는 사람은 절제 때문에 어려움 속에서도 버팁니다.
각 단계는 앞 단계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다음 단계의 원인입니다. 각 덕목은 독립된 항목이 아닙니다. 앞의 것이 뿌리가 되어 다음 것이 자랍니다.
신앙 성장이 막힌 것 같다면 이 사슬 어느 지점에서 끊겨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 πίστις (pistis) — 믿음
사슬의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받아들이는 인격적 신뢰와 헌신입니다.
믿음 없이 더해지는 덕목은 도덕적 자기계발에 불과합니다. 믿음이 흔들리면 사슬 전체가 흔들립니다.
- ἀρετή (aretē) — 덕
고대 그리스가 인간의 최고 이상으로 추구하던 단어입니다. 철학자들은 aretē를 인간이 스스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탁월함으로 정의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올바르게 행동하는 사람, 내면의 질서가 잡힌 사람, 삶 전체가 탁월하게 정렬된 사람.
베드로는 이 단어를 그대로 가져옵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자리에 놓습니다.
헬라 철학에서 aretē는 출발점이었습니다. 인간이 노력으로 쌓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에게 aretē는 믿음의 열매입니다. 스스로 만들어내는 탁월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믿음에서 자라나는 탁월함입니다.
덕은 더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이 아닙니다. 믿음이 삶의 방식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깊어질수록 삶이 그 믿음의 색깔을 띠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aretē입니다.
- γνῶσις (gnōsis) — 지식
하나님의 뜻을 식별하고 적용하는 실천적 분별력입니다. 당시 영지주의는 gnōsis를 구원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베드로는 그것을 믿음과 덕 다음에 배치합니다. 지식은 뿌리가 아니라 믿음과 덕 위에서 자라나는 열매입니다. 열정적인 삶의 방식(덕)만 있고 분별력(지식)이 없으면 맹목적인 열심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ἐγκράτεια (enkrateia) — 절제
어근 kratos 는 힘, 지배, 통제입니다. 외부의 강제가 아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기 통제입니다.
이 힘은 의지력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분별력이 삶 안에서 절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 ὑπομονή (hypomonē) — 인내
"아래에서(hypo) 머물다(menō)"는 뜻입니다. 수동적 기다림이 아닙니다. 압박 아래서도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는 능동적 인내입니다.
그 자리에 머무는 것 자체가 이미 성장입니다.
- εὐσέβεια (eusebeia) — 경건
"잘(eu) 경외하다(sebomai)"는 뜻입니다. 종교적 행위가 아닙니다. 삶 전체가 하나님을 향해 정렬된 상태입니다.
인내가 압박 아래서 버티는 힘이라면 경건은 그 버팀의 방향을 하나님께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 φιλαδελφία (philadelphia) — 형제 친절
경건이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 관계라면 philadelphia는 그것이 수평적 관계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삶은 반드시 형제를 향한 따뜻함으로 이어집니다. 수직이 수평으로 흐르지 않는다면 경건은 자기만족에 머문 것입니다.
- ἀγάπη (agapē) — 사랑
사슬의 마지막이자 완성입니다. philadelphia가 형제를 향한 따뜻한 애정이라면 agapē는 원수까지 포함한 모든 사람을 향한 희생적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삶 전체로 완성되는 자리입니다. 은혜는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agapē는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을 향해 의지와 헌신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슬의 완성이고 신앙 성장의 최종 목적지입니다.
결론
하나님이 먼저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믿음에서 시작하여 사랑으로 완성되는 그 길 위에서 지금 당신이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하십시오.
그리고 열심을 다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가십시오.
그것이 구원받은 사람이 자라가는 방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