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
베드로는 편지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두 가지가 한 문장 안에 들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누구인가. 그리고 수신자가 누구인가.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서로를 향해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이기 이전에 종
베드로는 자신을 소개할 때 사도의 권위를 앞세우지 않습니다. 그는 먼저 "종"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 "사도"라고 말합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사도이기 이전에 종입니다. 권위를 가진 자이기 이전에 섬기는 자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입니다. 베드로는 수신자들을 향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와 함께"입니다. 사도와 성도가 같은 자리에 놓입니다.
이것은 겸손의 수사가 아닙니다. 신학적 선언입니다.
의가 자리를 결정한다
왜 우리는 사도들과 같은 자리에 있는가.
그 근거가 바로 뒤에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믿음의 자리를 결정하는 것은 믿는 자의 자격이 아닙니다. 의의 근거입니다. 베드로도 우리도 같은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었습니다. 그 의 앞에서 사도와 성도 사이의 간격은 사라집니다.
바울은 로마서 3장에서 같은 말을 합니다. "차별이 없느니라." 유대인도 이방인도, 사도도 평신도도, 오래 믿은 자도 방금 믿은 자도 — 의의 근거가 같으면 하나님 앞에서의 자리도 같습니다. 믿음은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받음은 모두에게 동일합니다.
정체성이 먼저다
베드로가 인사말에 이것을 넣은 이유가 있습니다.
수신자들은 고난 중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 안으로 거짓 교사들이 파고들었습니다. 그들의 무기는 단순했습니다. 결핍감입니다. "당신들은 아직 부족하다. 더 높은 지식이 있다. 더 깊은 진리가 있다. 우리를 따라야 그 자리에 이를 수 있다." 흔들린 공동체에게 결핍을 심는 것, 그것이 거짓 교사들의 방식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언어를 편지의 첫 줄에서 뒤집습니다. 논쟁으로 뒤집지 않습니다. 선언으로 뒤집습니다.
당신들은 이미 받은 자들입니다. 나와 동일하게.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 안에 이미 참된 지식이 있습니다. 더 높은 곳에서 찾아야 할 진리가 아닙니다. 당신들이 받은 것 안에 이미 있습니다.
"더 받아야 할 자들"이 아닙니다. "이미 받은 것 위에 서야 할 자들"입니다. 결핍이 아니라 충만입니다. 흔들림이 아니라 정체성입니다. 베드로가 공동체에게 먼저 건네는 것은 새로운 교훈이 아닙니다. 당신이 누구인지를 다시 말해주는 것입니다.
고난 앞에서, 거짓 교사 앞에서, 흔들리는 공동체 앞에서 — 베드로의 첫 마디는 언제나 정체성입니다. 명령이 아니라 선언. 요구가 아니라 확인. 당신은 이미 그 자리에 있습니다.
나에게 묻는 질문
나의 믿음은 은혜인가, 아니면 나의 공로인가?
나는 공동체 안에서 다른 이들을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로 보고 있는가, 아니면 내 기준으로 그들의 자리를 나누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