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아는 것을 통해 은혜와 평강이 — 더욱 많아지리라
베드로는 인사말을 이렇게 마칩니다.
"하나님과 예수 우리 주를 아는 것을 통해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을지어다."
단순한 인사가 아닙니다. 신학적 구조입니다. 은혜와 평강이 많아지는 것과 아는 것 사이에 베드로는 직접적인 연결을 놓습니다. 아는 것을 통해서입니다.
두 가지 지식
거짓 교사들도 지식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지식은 언제나 이렇게 작동했습니다. "당신은 아직 모른다. 더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 와야 한다." 특별한 계시, 더 높은 단계, 선택된 자들만 접근할 수 있는 진리. 들을수록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하게 느껴지고, 그 채움의 자리에 거짓 교사 자신을 놓습니다. 지식을 말하지만 그 끝은 결핍입니다. 그리고 그 결핍은 사람을 향합니다.
베드로의 앎은 방향이 완전히 다릅니다. 더 높은 사람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거짓 지식은 결핍으로 향하고, 참된 앎은 충만으로 향합니다. 거짓 지식은 사람에게 묶이게 하고, 참된 앎은 하나님께 뿌리내리게 합니다.
아는 것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베드로가 말하는 앎은 무엇인가. 여기서 "아는 것"으로 번역된 헬라어 에피그노시스(epignosis)는 정보의 축적이 아닙니다. 관계적 앎입니다. 오래 함께한 사람을 알듯이, 고난을 함께 통과한 사람을 알듯이 — 경험을 통해 깊어지는 앎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의 성품을 알고, 그분이 내 삶에서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경험하고, 그분이 나를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몸으로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책상 위에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고난 안에서, 기다림 속에서 깊어집니다. 그리고 그 앎이 깊어질수록 은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은혜가 보이면 평강이 따라옵니다.
평강은 상황 밖에서 온다
베드로의 수신자들이 처한 고난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상황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아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평강은 상황이 해결될 때 오지 않습니다. 상황을 넘어서는 분을 알 때 옵니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알수록, 그분이 나를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경험할수록 — 상황이 바뀌지 않아도 평강은 깊어집니다. 아는 것이 평강의 뿌리입니다.
나에게 묻는 질문
나는 지금 은혜와 평강이 부족하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나의 앎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나의 앎은 머리에서 멈추고 있는가, 아니면 삶 안에서 그분과 함께 깊어지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