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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베드로후서1:12~21
성경본문내용 12. 그러므로 비록 너희가 이것들을 알고 현재의 진리에 굳게 서 있을지라도 너희가 항상 그것들을 기억하게 하는 일에 내가 게으르지 아니하리라.
13. 참으로 내가 이 장막에 있는 동안에 너희가 기억하게 하여 너희를 일깨우는 것이 합당한 줄로 생각하노니
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보여 주신 것 같이 내가 머지않아 반드시 이 장막을 벗어야 할 줄 알기 때문이라.
15. 또한 내가 떠나간 뒤에도 너희가 항상 이것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내가 애쓰리라.
16. 우리가 너희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오심을 알려 줄 때에 교묘히 꾸며 낸 이야기들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며 17. 우리는 그분의 위엄을 눈으로 본 자들이니라.
뛰어난 영광으로부터 이러한 음성이 그분께 나서 이르기를,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실 때에 그분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하늘로부터 나온 이 음성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들은 것이니라.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도 있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속에 떠오를 때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비치는 빛을 대하듯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 기록의 대언 중 어떤 것도 사적인 해석에서 나지 아니하였나니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느니라.
강설날짜 2026-04-06

재림의 확실성이 성화의 동력이다

벧후 1:12–21


들어가며

왜 지금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믿음 위에 덕을 쌓고, 절제하고, 인내하고, 경건하게 사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이 질문에 확신이 없을 때, 베드로는 죽음을 앞두고 이 편지를 썼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곧 세상을 떠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13–14절). 예수님이 직접 그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는 유언입니다. 유언의 목적은 15절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도 너희가 언제든지 이것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무엇을 기억하라는 것입니까. 1:5–11에서 말한 성화의 삶입니다.

그런데 그 권면은 반드시 이 질문과 함께 서야 합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베드로의 대답은 하나입니다. 재림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12–21절은 그 재림이 왜 확실한지를 두 가지 근거로 증명하는 단락입니다. 그리고 그 확실성이 성화의 삶을 살게 하는 동력입니다.


포인트 1. 재림은 사도가 직접 목격한 사실이다 (16–18절)

베드로는 16절에서 먼저 반론을 정면으로 차단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당시 누군가 실제로 이렇게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재림이요? 그건 베드로 같은 사람들이 꾸며낸 종교적 신화 아닙니까?" 이 공격에 베드로는 논리나 철학으로 맞서지 않습니다. 목격자로서 증언합니다.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16절).

어디서 보았습니까. 변화산입니다(17–18절). 그곳에서 예수님은 영광스럽게 변형되셨고,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그리고 18절에서 베드로는 못을 박듯 말합니다. "우리는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 하늘에서 나는 이 소리를 들었노라." 이것은 법정에서 하는 선서 증언입니다. 나는 보았다. 나는 들었다. 나는 거기 있었다.

변화산이 왜 재림의 증거입니까. 예수님은 변화산 사건 바로 직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인자가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이 있다"(마 16:28). 그 직후 변화산 사건이 이어집니다. 변화산은 재림의 영광을 미리 맛본 사건입니다. 재림은 아직 오지 않은 막연한 미래가 아닙니다. 이미 한 번 목격된 현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솔직한 질문 하나를 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변화산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없었습니다. 2000년 전 한 사람의 목격 증언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이 질문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9절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포인트 2. 재림은 성령이 감동한 말씀이 지금도 증언한다 (19–21절)

베드로는 자신의 목격 증언을 제시한 직후 19절에서 놀라운 말을 합니다.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어."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보다 더 확실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성경, 구약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왜 목격 증언보다 말씀이 더 확실합니까. 20–21절이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아 말한 것임이라."

베드로는 두 가지를 부정합니다. 사사로운 개인의 통찰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사람의 의지가 주도한 것도 아닙니다. 핵심은 "감동하심을 받은(φερόμενοι)"이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바람을 받은 배가 앞으로 나아가듯 이끌려 가는 것을 뜻합니다. 강제로 밀리는 것이 아닙니다.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님이 주도하시되, 인간 저자가 자신의 언어와 개성과 경험으로 동역하며 기록한 것입니다. 자의적도 아니고 기계적도 아닌, 유기적 영감입니다.

디모데후서 3:16은 이 말씀의 성격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θεόπνευστος)." 하나님의 숨결이 담긴 것입니다. 인간 저자는 죽었습니다. 베드로도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숨결은 지금도 말씀 안에 살아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19절의 후반부가 빛납니다.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속에 떠오를 때까지 이 말씀을 등불로 여기라."

샛별(φωσφόρος)은 새벽을 알리는 별입니다. 요한계시록 22:16에서 예수님은 스스로를 "빛나는 새벽별"이라고 하십니다. 샛별이 떠오른다는 것은 재림하시는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 샛별이 "너희 마음속에" 떠오른다고 합니다.

이것이 포인트입니다. 성령이 감동하여 기록된 말씀을 읽을 때, 그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성령님이 다시 역사하십니다. 외부의 텍스트가 내면의 확신이 됩니다. 재림이 막연한 교리가 아니라 내 마음을 움직이는 살아 있는 현실이 됩니다. 변화산에 없었던 우리가 재림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나가며

베드로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유언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재림은 사도의 눈이 목격했고, 성령의 말씀이 지금도 증언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읽는 우리에게 성령님은 지금도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이 감동하여 기록된 말씀은, 성령님이 감동하여 읽힙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손에서 놓지 마십시오. 읽을 때마다 성령님이 마음 안에 샛별을 띄우실 것입니다. 재림이 확실하다는 그 확신이, 오늘 우리가 성화의 삶을 부지런히 살아가는 동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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