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죄인을 하나님 목전에서 어떻게 의롭게 합니까
자연스러운 오해
Q72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면, 믿음 자체가 공로 아닌가. 믿음이라는 행위 때문에 의롭게 되는 것 아닌가. 또는 믿음에서 나오는 선한 삶 때문에 의롭게 되는 것 아닌가.
대교리문답 73문은 이 오해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믿음이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붙잡은 그리스도가 의롭게 합니다.
하나님 목전에서
칭의는 사람 앞에서의 평판이 아닙니다. 내 양심 앞에서의 안도감도 아닙니다. 하나님 목전에서 내려지는 판결입니다. 판결을 내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판결은 최종적입니다. 취소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나를 정죄해도, 내 양심이 나를 고발해도, 하나님 목전에서 의롭다 선언된 자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첫 번째 오해: 선행 때문이 아니다
믿음에는 열매가 따릅니다. 참된 믿음이 있는 곳에 소망이 있고, 사랑이 있고, 선행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열매들이 칭의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 로마서 3:28
선행은 칭의의 근거가 아닙니다. 칭의의 열매입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은 열매 때문에 나무가 된 것이 아닙니다. 나무이기 때문에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선행도 그렇습니다. 의롭다 선언받았기 때문에 선행이 따라오는 것이지, 선행 때문에 의롭다 선언받는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 오해: 믿음 자체가 공로가 아니다
그렇다면 믿음이라는 행위 자체가 공로로 전가되는 것입니까. 내가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을 행위로 보는 순간, 칭의는 은혜가 아니라 거래가 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받아." — 디도서 3:5-7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내 행위로 말미암지 않습니다. 그의 은혜를 힘입어서입니다. 믿음조차 그 은혜 안에 있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덜 의롭고 믿음이 강한 사람은 더 의롭게 된다면, 칭의는 믿음의 크기에 달린 것이 되고 은혜는 사라집니다. 그러나 칭의의 근거는 내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믿음의 실제 역할: 통로
그렇다면 믿음은 칭의에서 어떤 역할을 합니까.
믿음은 통로입니다. 튜브와 같습니다. 튜브 자체가 물을 만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튜브가 없으면 물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칭의의 근거는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믿음은 그 의가 내게 흘러오는 통로입니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 빌립보서 3:9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요한복음 1:12
칭의의 근거는 그리스도다
믿음이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붙잡은 그리스도가 의롭게 합니다. 칭의의 근거는 믿음의 크기도, 믿음의 질도, 믿음에서 나온 선행도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 갈라디아서 2:16
그리스도의 의는 완전합니다. 믿음의 크기와 상관없이 그분의 의는 온전합니다. 믿음이 약해도 그리스도는 변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칭의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근거가 나에게 있지 않고 그리스도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믿음은 통로입니다. 통로가 아무리 넓어도 물의 근원이 아닙니다. 칭의의 근원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하루, 내 믿음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믿음이 향하는 곳,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분 안에 칭의의 근거가 있습니다.
믿음이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붙잡은 그리스도가 의롭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