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의란 무엇인가
칭의는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법정 용어입니다. "의롭다" 선언하는 것입니다. 비록 유죄일지라도 누군가가 그 사람의 모든 법정 형량을 치렀다면, 판사는 무죄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칭의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 법정에서 죄인을 향해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법정적 행위입니다. 그리고 이 선언은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 로마서 3:24
칭의의 두 얼굴: 용서와 간주
칭의는 두 가지를 동시에 가져옵니다.
첫째는 죄의 용서입니다. 내가 지은 모든 죄가 사해집니다.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 하나님께서 그 죄를 더 이상 내게 돌리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 에베소서 1:7
둘째는 의인으로 간주됨입니다. 단순히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내 것으로 간주됩니다. 빚이 탕감된 것을 넘어,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 고린도후서 5:21
용서만 있고 의가 없다면, 무죄 방면은 되었지만 하나님 앞에 설 근거가 없습니다. 의인으로 간주되기까지 해야 비로소 완전한 칭의입니다. 이것은 내 행위로 말미암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 디도서 3:5
전가: 어떻게 죄인이 의인이 되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죄인이 의인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여기서 전가 교리가 등장합니다.
전가란 한 사람의 것이 다른 사람의 것으로 법적으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세 가지 전가를 보여줍니다.
첫째는 아담의 죄의 전가입니다. 아담이 인류의 대표로 범죄했을 때, 그 죄책이 모든 후손에게 전가되었습니다. 우리가 직접 죄를 짓지 않았어도 죄인으로 태어나는 이유입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 로마서 5:17
둘째는 구약 제사에서의 전가입니다. 제사장이 짐승 머리에 안수할 때 죄가 짐승에게 전가되었습니다. 짐승이 그 죄를 지고 죽음으로써 일시적 속죄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림자였습니다. 매년 반복되어야 했고,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셋째는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입니다.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께 전가되고,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됩니다.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된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이 됩니다. "한 분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 로마서 5:19
완전한 순종과 충분한 속상
그렇다면 전가되는 그리스도의 의는 어디서 오는가.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과 충분한 속상에서 옵니다.
완전한 순종은 다시 두 가지입니다.
능동적 순종은 그리스도께서 평생 율법을 완전히 지키신 것입니다. 태어나서 죽으시기까지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어김없이 순종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이신 예수님만이 율법의 모든 의를 완전히 성취하실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전가되어 우리가 율법을 완전히 지킨 자로 간주됩니다.
수동적 순종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하여 고난받고 죽으신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신 것 자체가 고난이었고, 죄인들과 함께하심이 고난이었고, 십자가에서 온 세상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이 고난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고난을 기꺼이 순종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전가되어 우리의 죄가 형벌을 받은 것으로 간주됩니다.
수동적 순종만 있고 능동적 순종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죄의 형벌은 면제됩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켜야 할 의무는 여전히 남습니다. 무죄 방면은 되었지만 의인은 아닌 상태입니다. 지옥은 면했지만 하나님 앞에 설 적극적인 의가 없습니다. 능동적 순종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단순히 무죄한 자가 아니라 완전히 의로운 자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충분한 속상은 무엇입니까. 속상(贖償)이란 마땅히 치러야 할 값을 완전히 지불하는 것입니다. 속(贖)은 몸값을 치르고 되사는 것이고, 상(償)은 빚을 갚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죄는 반드시 형벌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를 그냥 넘기실 수 없습니다. 누군가 큰 빚을 졌는데 갚을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누군가가 그 빚 전체를 대신 갚았습니다. 채권자는 완전히 만족되었습니다. 더 이상 청구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그 형벌을 완전히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충분히 만족되었습니다. 이것이 충분한 속상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 로마서 3:25
오직 믿음으로
이 모든 것은 오직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조차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주신 것입니다. 은혜로 시작되어 은혜로 완성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일입니다.
믿음은 행위를 대체하는 또 다른 공로가 아닙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 갈라디아서 2:16
믿음은 대상이 있습니다. 내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 중요합니다.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 사도행전 10:43
믿음으로 받는 의는 내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납니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 빌립보서 3:9
칭의의 결과: 하나님 앞에 서다
칭의의 결과는 하나님과의 화평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 로마서 5:1
죄인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칭의를 받은 자는 다릅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입고 하나님 앞에 섭니다. 정죄가 없습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평으로 회복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당신은 지금 무엇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까.
내 노력으로, 내 신앙심으로, 내 도덕적 성취로 서려 한다면 반드시 흔들립니다. 그것들은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칭의를 받은 자는 다릅니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과 충분한 속상이 내 것으로 전가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 선언하셨습니다. 그 선언은 내 감정이나 상태에 따라 바뀌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어떤 자리에 있든지 — 실패한 자리에서, 부끄러운 자리에서, 연약한 자리에서도 — 그 선언을 누리십시오. 칭의는 내가 이룬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선언하신 것입니다.
죄인이 의인이 되는 것은 내가 변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의롭다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