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
교제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흔히 따뜻한 감정이나 특별한 종교적 경험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대교리문답 69문이 말하는 교제는 다릅니다. 이것은 무형교회, 즉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그리스도 안에 속한 자들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교제는 관계입니다. 그리고 관계는 내용을 가집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에게는 그분의 공덕이 흘러옵니다. 공덕이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것, 그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획득하신 모든 것입니다. 칭의, 양자됨, 성화는 그 공덕에 참여하는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와의 교제의 실제 얼굴입니다.
칭의: 법정에서 내려진 선언
첫 번째 얼굴은 칭의입니다. 죄인이었던 내가 의인으로 선언됩니다. 이것은 내가 착해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셨다." — 로마서 8:30
법정에서 판결이 내려지듯,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의롭다 선언하십니다. 내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행위가 근거입니다. 내 노력이 아니라 그분의 완전함이 기준입니다. 새로운 존재의 첫 번째 문이 열립니다.
양자됨: 가정으로 받아들여짐
두 번째 얼굴은 양자됨입니다. 의인으로 선언된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종이었던 내가 자녀가 됩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 에베소서 1:5
칭의가 법정의 언어라면, 양자됨은 가정의 언어입니다. 죄값이 해결된 것을 넘어, 아버지의 집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무죄 방면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새로운 존재의 두 번째 문이 열립니다.
성화: 신분이 삶 안으로 스며드는 과정
세 번째 얼굴은 성화입니다. 자녀가 된 내가 실제로 변해갑니다. 칭의와 양자됨이 신분의 변화라면, 성화는 그 신분이 삶 안으로 스며드는 과정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다." — 고린도전서 1:30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로움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거룩함이십니다. 성화는 내가 스스로 거룩해지려는 노력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그분을 닮아가는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새로운 존재의 세 번째 문이 열립니다.
그 밖의 모든 것: 현세의 삶 전체를 덮는 교제
칭의, 양자됨, 성화로 끝나지 않습니다. 대교리문답은 "현세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나타내는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확신, 평안, 기쁨, 은혜의 견인, 죽음에서의 자유까지. 이것들은 현세를 사는 동안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삶 안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들입니다. 칭의, 양자됨, 성화는 먼 곳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지금 이 자리에서 누리고 있는 현실입니다. 일하는 자리에서, 관계가 흔들리는 자리에서, 몸이 쇠약해지는 자리에서도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존재로 서 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지금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칭의로 의인이 되었고, 양자됨으로 자녀가 되었고, 성화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이 지금 어떤 존재인지의 문제입니다.
오늘 하루, 어떤 자리에 있든지 — 일터에서, 가정에서, 홀로 있는 방에서 — 그 사실을 누리십시오.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특별한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교제란, 그분 안에서 내가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