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하나님이 지키신다"
들어가며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작습니다. 사람도 많지 않고, 가진 것도 넉넉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보기에 별것 아닌 곳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스스로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 교회, 괜찮은 것입니까?
대교리문답 63문은 이 질문에 답합니다.
"유형교회가 누리는 특권은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과 다스리심을 받는 것, 모든 원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대에 보호를 받고 보전되는 것, 성도의 교제와 구원의 통상적인 방편들을 누리는 것, 복음의 사역을 통하여 그리스도에 의해 제공되는 은혜를 누리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자기에게 오는 자는 아무도 배척하지 않으십니다."
다섯 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다섯 가지를 관통하는 하나의 진리가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지키신다.
그렇다면 왜 지키십니까? 교회가 강해서입니까? 교회가 잘해서입니까?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는 근거는 교회의 능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이것이 위로가 아니라 복음적 확신입니다.
작은 교회 위에도, 연약한 교회 위에도, 이 확신은 동일하게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덮개가 되신다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과 다스리심을 받는 것"
"여호와께서 시온 산과 그 모든 집회 위에 낮에는 구름과 연기, 밤에는 타오르는 불꽃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 (사 4:5,6)
구름과 불기둥—출애굽 때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던 바로 그 임재입니다. 이사야는 그 임재가 교회의 모든 집회 위에 여전히 있다고 선언합니다. 모든 집회입니다. 작은 집회도 포함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딤전 4:10)
하나님은 멀리서 바라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친히 수고하시고 힘쓰시는 분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교회를 위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고전 12:28)
하나님은 교회를 돌보시되 질서 있게 돌보십니다. 직분을 세우시고 그 직분들을 통해 친히 교회를 이끌어 가십니다. 교회의 질서는 인간이 고안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직접 설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돌보심은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멈추지 않습니다.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 49:14,15)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교회가 버림받은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고, 하나님조차 침묵하시는 것 같은 날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머니가 젖 먹는 자식을 잊을 수 없듯,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고.
지금 이 순간도 당신이 속한 교회 위에—그 작은 교회 위에—하나님의 덮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수들로부터 보호하신다
"모든 원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대에 보호를 받고 보전되는 것"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8)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이것은 조심스러운 희망이 아닙니다. 단호한 선언입니다. 죽음의 세력도, 사탄의 공격도, 세상의 핍박도—교회를 끝낼 수 없습니다. 로마 제국이 교회를 없애려 했습니다. 실패했습니다. 수많은 권력이 교회를 눌렀습니다. 교회는 살아남았습니다. 역사 전체가 이 약속의 증인입니다.
왜입니까? 교회가 강해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로 세워진 것을 음부의 권세가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그 날에 내가 예루살렘을 모든 민족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니 그것을 드는 모든 자는 크게 상할 것이라" (슥 12:2,3)
교회를 대적하는 자들은 결국 스스로 상합니다. 교회를 누르려는 모든 세력은 도리어 그 무게에 짓눌립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출 3:2,3)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않는 떨기나무—이것이 교회의 이미지입니다. 핍박의 불길 속에서도 교회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새들이 날아다님 같이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하리니 그것을 보호하여 구하며 넘어가서 구원하리로다" (사 31:4,5)
하나님의 보호는 수동적이지 않습니다. 몸소 날아오십니다. 넘어가서 구원하십니다.
교회가 연약해 보일 때, 이 선언을 붙드십시오. 작은 교회 아래에도 동일한 반석이 놓여 있습니다. 그 반석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은혜의 방편들을 공급하신다
"성도의 교제와 구원의 통상적인 방편들을 누리는 것"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행 2:39)
하나님은 교회를 보호하시는 것으로 그치지 않으십니다. 교회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채워 주십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 2:42)
말씀, 교제, 성례, 기도—이 방편들은 큰 교회에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몇 사람이 모여도 말씀이 선포되고, 떡을 떼고, 함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모임 안에도 동일한 은혜를 두셨습니다.
화려한 예배당이 없어도 됩니다. 많은 사람이 없어도 됩니다. 하나님이 두신 방편들이 그 안에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통해 교회를 붙드신다
"복음의 사역을 통하여 그리스도에 의해 제공되는 은혜를 누리는 것"
"그가 그의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의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그는 어떤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셨나니" (시 147:19,20)
하나님이 말씀을 주신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모든 나라가 이 말씀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게 복음이 맡겨졌다는 것—이것이 하나님의 선택적 은혜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롬 9:4)
교회는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습니다. 양자됨, 영광, 언약, 예배, 약속—이 모든 것이 교회에게 주어졌습니다. 작은 교회도 이 언약 안에 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행 16:31)
복음은 단순합니다. 그러나 그 단순함 안에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작은 교회의 강단에서 선포되는 이 복음도 동일한 능력을 가집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계 22:17)
하나님은 작은 교회를 통해서도 지금 이 복음으로 교회를 붙들고 계십니다. 복음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지키심이 있습니다.
당신의 교회에 복음이 선포됩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그 교회를 붙들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오는 자를 결코 내쫓지 않으신다
"그리스도께서 자기에게 오는 자는 아무도 배척하지 않으십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 6:37)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이 약속 앞에 잠시 멈추십시오.
결코. 어떤 상태로 와도. 얼마나 자주 넘어졌어도. 얼마나 오래 떠나 있었어도. 작은 교회에 속해 있어도. 이름 없는 교회에 속해 있어도.
그리스도께 오는 자—그 누구도 배척받지 않습니다.
왜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이 약속을 보증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이 약속의 근거입니다. 그 약속은 취소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지키신다는 것은 추상적인 진리가 아닙니다. 나를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작은 교회에 속한 나를,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나를, 결코 내쫓지 않으십니다.
나가며
우리 교회는 작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시 보십시오.
작은 교회 위에도 하나님이 친히 덮개가 되어 주십니다. 작은 교회도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고 불이 붙어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작은 교회 안에도 은혜의 방편들이 동일하게 있습니다. 작은 교회의 강단에서도 동일한 복음이 선포되고 하나님이 붙드십니다. 작은 교회에 속한 나도 결코 내쫓기지 않습니다.
교회가 서 있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졌고, 하나님이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위로가 아닙니다. 복음적 확신입니다.
그 확신이 오늘 당신이 속한 교회 위에, 그리고 당신 위에 놓여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