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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전도서 5:8~9

본문: 전도서 5:8~9

 

전도서는 하나님 앞에 바르게 시작했지만, 배교와 타락으로 인생을 산 한 인간의 참회록입니다. 솔로몬은 이방 나라들에게 영적인 이스라엘을 밝히 드러내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강함을 드러내는 것은 이방 나라들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영적인 빛을 발하는 나라는 오직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만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런 이스라엘의 나라로서의 책임을 망각하였습니다. 영적인 것보다 세상적인 것에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영적 침체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이를 지난 시간에 자세히 배웠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마음으로 드리고 들은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당시의 예배 상황은 그 반대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발을 삼가고 희생물을 드리는 것보다 더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예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기도입니다. 솔로몬은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의 기로를 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세상적인 꿈과 야망으로 마음이 채워져 있을 때, 그 기도는 하나님 앞에 준비된 기도가 아닌 세상적인 것들을 구하는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헌신에 있어서도 성급하게 헌신의 맹세를 한 후에, 그 맹세를 곧 잊어버리게 됩니다. 또는 실수였다고 변명하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참 된 헌신의 동기로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욕심에 기초한 서원을 드렸고, 이를 지키지 않는 죄를 범했습니다.

 

영적인 타락은 곧 사회적인 부패로 이어졌습니다. 백성들을 다스리는 자들이 백성들을 속여 그들의 배를 불렸습니다. 폭력으로 백성들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았습니다. 오늘은 사회적인 부패를 바라보며 책임을 통감하고 있는 늙은 왕 솔로몬에 대해 배워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청지기의 자세를 가져라

 

설교자는 전도서 3:16절에서 정의를 시행하는 사법 기관에도 불의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때에 전도자는 사법 기관의 불의를 하나님께서 바로 잡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전 3:17). 오늘 우리가 읽은 8절에서 설교자는 지방 관리의 부패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만일 네가 어느 지방에서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것과 폭력으로 공의와 정의를 굽게 하는 것을 보거든 그 일에 놀라지 말라. 가장 높은 자보다 더 높으신 분께서 그것을 주목하시나니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이 있느니라.”

 

“어느 지방”이라함은 중앙 정부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을 말합니다.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정부 관료의 부정부패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학대하다”라는 의미는 “갈취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속여서 빼앗다”라는 의미입니다. 백성들을 보호해야 할 관료들이 오히려 백성의 재산을 갈취하며 약탈하였습니다.

 

“놀라지 말라”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할 때, 일어나는 당연한 결과라는 의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부정과 부패, 범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이는 놀랄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학대”를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구약의 여러 곳에서 하나님은 “학대”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 몇 구절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출애굽기 23:9 “너는 또한 나그네를 학대하지 말라.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였은즉 나그네의 심정을 아느니라.”

레위기 25:14 “네가 네 이웃에게 조금이라도 팔거나 네 이웃의 손에서 조금이라도 살 때에 너희는 서로를 학대하지 말라.”

레위기 25:17 “그런즉 너희는 서로를 학대하지 말고 오직 너희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니라.”

 

또한 하나님이 없을 때 일어나는 또 다른 현상은 폭력입니다. 폭력이 정의와 공의를 굽게 한다는 의미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강제로 탈취하다, 강도짓을 하다는 의미입니다. 물리적인 힘을 동원해서 백성들을 것을 빼앗아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법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법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가진 힘으로 백성들을 압박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학대 받는 백성들의 유일한 희망과 위로는 무엇입니까? 이런 지방 관리들의 위에는 더 큰 권위와 힘을 가진 중앙 정부의 관료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들조차 타락하여 이런 사회적 부조리를 바로잡지 못한다면, 그들 위에 더 큰 권위와 힘을 가진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지구상에 폭력이 난무하던 사회가 있었습니다. 바로 노아 홍수 직전입니다. 이때는 무법적인 사회였고 힘을 가진 자가 정의요 공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회를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창세기 6:7절에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멸하되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날짐승까지 다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만든 것으로 인해 슬퍼하기 때문이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이런 폭력적인 사회를 싫어하십니다. 그런 사회를 심판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땅을 다스리는 자들을 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9절을 보십시오. “또한 땅이 내는 이익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니 왕도 친히 밭에서 나는 것으로 섬김을 받느니라.” 이 땅이 내는 모든 이익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결코 한 사람이, 혹은 소수가 이 땅의 이익을 독점할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밭에서 나는 것을 이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왕을 세웠습니다. 백성들을 다스리는 왕이 공평하게 그 백성들에게 이익을 분배해 줄 책임이 있습니다. 왕이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도 하나님 앞에서는 사람일 뿐입니다. “왕도 친히 밭에서 나는 것으로 섬김을 받느니라” 의미는 비록 그가 권력을 가져서 백성들보다는 높은 위치에 있지만 그도 하나님 앞에서는 사람일 뿐이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생산된 이익을 공평하게 나눠주시기 위해 세운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왕은 이런 정신과 태도를 가지고 백성을 섬겨야 합니다.

 

열왕기상 3:8~9절에 솔로몬이 그 백성을 어떻게 생각하고 다스리려고 했는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의 종이 주께서 택하신 주의 백성 한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므로 너무 많아 셀 수도 없고 계산할 수도 없사오니 그러므로 주의 백성을 재판하도록 주의 종에게 깨닫는 마음을 주사 내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이같이 큰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하니라.” 여기에 “주의 백성”이라는 단어가 세 번 나오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처음 왕에 올랐을 때는 그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결코 자기 백성이 아닙니다. 자기의 소유물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학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열왕기상 12:11절에서 솔로몬이 이후에 어떻게 그 백성을 다스렸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이제 내 아버지가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지워 주었으나 나는 너희 멍에에 더하리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벌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벌하리라, 하소서, 하니라.” 솔로몬은 그 백성을 학대했습니다. 중앙 정부의 부패는 곧 지방 관료들에게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그들은 왕이 하는대로 그대로 백성들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솔로몬이 왜 이처럼 백성을 학대했을까요? 그는 백성들의 자신의 소유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백성을 학대하는 의미는 그 백성들이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생각이 그 생각의 근저에 깔려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런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청지기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비록 내가 어떤 위치에 있지만, 내가 잘나서 그런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목적하심을 따라 그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똑같은 죄인일 수밖에 없는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무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성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이런 삶이 바로 청지기의 삶입니다. 오늘 본문의 9절 “또한 땅이 내는 이익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니 왕도 친히 밭에서 나는 것으로 섬김을 받느니라.”은 청지기로서의 왕의 의무와 책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부함과 강함을 뽐내는 나라가 아니라, 이런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을 세상에 드러내야 했습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만이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실패했습니다. 그는 백성을 주의 백성으로 섬기며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나의 백성으로 학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로 그 나라를 다스리지 않을 때 사법기관이 부패하고 정부 관료들도 부패하였습니다. 이미 나라의 기강은 썩을 대로 썩어서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를 바라보는 솔로몬의 심정은 어떠하겠습니까? 아마도 하나님 앞에서 가슴을 치고 후회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직분을 감당하지 못함을 뼈저리게 회개했을 것입니다. 이 부분이 솔로몬의 하나님 앞에 두 번째 회개 제목이었습니다. 첫째는 그 나라를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는 종교 혼합주의에 대한 회개였다면, 두 번째 회개는 하나님의 백성을 자기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학대한 것에 대한 회개였습니다. 이로 인해 사회는 부패해졌고 영적인 빛을 발해야 할 이스라엘은 이방의 나라들과 별반 다름이 없었습니다. 솔로몬은 왕으로서 그 나라를 바르게 인도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하나님 앞에 회개의 심정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 솔로몬의 회개의 심정을 통해 우리 삶에 배워야 할 것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목적대로 청지기 자세로 섬겨야 합니다. 그리할 때, 그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과 사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런 청지기의 자세를 가질 때 가정과 사회는 어떻게 변하게 됩니까?

에베소서 5:28 “이와 같이 남자들도 마땅히 자기 아내를 자기 몸같이 사랑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느니라.

베드로전서 4:10 “각 사람이 선물을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서로 그 선물을 써서 섬기라.”

베드로전서 5:3 [하나님]의 상속 백성 위에 군림하지 말고 오직 양 떼에게 본이 되라.

 

이런 하나님 앞에서 청지기의 삶을 사는 가정과 사회는 결코 갈취와 폭력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결코 그런 일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만물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아는 까닭에 소중히 모든 것을 소중이 여깁니다. 자신에게 있는 직분이 은혜로 주어졌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 가운에 일을 감당할 뿐입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가정과 교회와 우리 사회에 나타나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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