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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기독교인은 항상 말을 할 때 주의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4장 29절에 다른 사람을 타락하게 만드는 말들을 삼가고, 덕을 세우는 말을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또한 에베소서 5장 4절에서는 음란한 말들을 삼가고 대신에 감사의 말들을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3장에서는 혀는 축복과 파멸의 말을 동시에 쏟아낼 수 있는 영향력이 있음을 강조하며, 혀를 제어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잠언 11장 9절 11절에 말은 이웃과 사회를 흥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하는 힘이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말에 대한 성경적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에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잠언의 가르침을 따라, 기독교인으로서 성경이 가르쳐 주는 바른 언어생활을 배우고 은혜 받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기독교인의 언어생활

I. 파괴적인 언어생활

파괴적인 언어생활의 첫 번째는 거짓말입니다. 그러면 잠언이 말하는 거짓말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께 하는 거짓말입니다. 잠언 12장 22절에 거짓말하는 입술은 하나님께서 미움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이 거짓말은 하나님에 대한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진리의 내용을 왜곡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들은 우상숭배와 관련이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오늘날로 말하면 이단 교리들을 퍼뜨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혐오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둘째로, 이웃을 향해 말하는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잠언 6장 17~19절에서 이웃을 향해 거짓 증언하지 말도록 우리에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웃을 향해 거짓으로 증언하는 것은 그 이웃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곤란을 주는 것입니다. 이는 결코 그리스도인들이 해서는 안 되는 언어생활입니다.

또한 이웃에게 복수할 목적이나 이웃의 것을 빼앗을 목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속이는 것을 거짓말 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잠언 10장 18절에서 사람이 자신의 증오를 숨기려는 노력을 합니다. 자신의 실제적인 감정을 감추려는 노력을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변장합니다.

이상에서 볼 때,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하며 이웃을 향해 악한 의도를 가지고 속이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잠언은 이런 거짓말하는 자들의 결말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12장 19절에서 거짓말하는 자들은 잠시 동안 속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0장 17절에 속이는 자의 결말을 알 수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속이고 빼앗은 음식을 먹는 것은 달콤합니다. 그러나 그의 결국은 마치 자갈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결국은 그들이 한 거짓말에 그들이 걸려들게 됩니다.

 

두 번째 그리스도인들이 삼가야 할 말은 아첨하는 말입니다. 이런 말은 진정한 칭찬의 말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호의를 얻거나 사람을 조정하기 위한 거짓된 칭찬입니다. 잠어서 26장 28절에 아첨하는 말은 파멸을 가지고 온다고 하였습니다. 잠언 29장 5절에는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아첨은 잠언 6장24절과 7장 21절에서 음녀의 대표적인 무기로 사용되었습니다. 음녀는 아첨의 말로 사람을 속여 파멸의 길로 인도합니다.

 

반대로 성경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직히 말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잠언 16장 13절에 정직한 말하는 자를 왕들이 기뻐하고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왕 앞에서 왕이 싫어할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자는 많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배포가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정직한 자는 그런 용기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왕 앞에서 정직하게 자신의 꿈의 해몽을 하였습니다. 왕의 명령에 따라 그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아첨하는 말로 왕을 기쁘게 하려하지 않았습니다. 왕이 듣기에 불편한 말이지만 정직하게 말할 때, 왕은 다니엘의 왕을 듣고 기뻐하였고 그를 높이었습니다.

성도는 상황을 뻔히 알속된 말로 뒷 담화를 하는 것입니다. 잠언 11장 11장 이런 자는 다른 사람의 비밀을 누설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신실한자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 앞에 신실한 자입니까? 주 안에서 거룩하게 씻음을 받는 성도입니다. 성도는 결코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험담을 통해 진실한 친구가 누군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잠언 17:9절에 “범법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거니와 무넺를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친구들을 갈라놓느니라.” 우리 주변에서 우리의 허물과 약점을 말없이 감당하고 섬길 수 있는 언어 습관을 가진 자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또한 그런 친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험담을 좋아하는 자에 의해 다툼이 일어납니다. 험담을 하는 자의 말은 마치 불에 던져지는 장작과 같습니다. 잠언 25:9절에 “네 사정에 대하여 네 이웃과 직접 변론하고 은밀한 일을 나에게 드러내지 말라.” 사람은 자신을 변론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다툰 내용을 결로 다른 사람에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이 해서는 안 될 파괴적인 언어 습관은 저주하는 말입니다. 특별히 부모님에 대해서는 결코 해서는 안 됩니다. 잠언 20장 20절에 그의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그 사람의 등불이 깜깜한 어둠 속에서 꺼진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레위기 20:9절에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잠언 30장 10절에 “종을 그의 주인에게 고소하지 말라. 그가 너를 저주하면 네가 죄 있는 자로 드러날까 염려하노라.” 종이라고 할지라도 그 모욕적인 말로 그 주인에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잘못입니다. 비록 악한 종일지라도 모욕하고 저주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종의 악함을 돌아보실 것입니다.

 

II. 덕을 세우는 언어생활

덕을 세우는 언어생활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는 것입니다. 잠언 16:24 “즐거운 말들은 벌집 같아서 혼에게 달고 뼈에 건강을 주느니라.” 즐거운 말들은 위로하는 말이며, 격려하는 말이며, 달래는 말입니다. 이런 말들은 듣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힘과 용기와 기쁨을 줍니다. 혼과 뼈에 건강을 준다는 말은 이익과 기쁨을 동시에 가져다준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혼과 뼈에 참 된 유익함과 기쁨을 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스스로가 위로와 격려를 받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참으로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린도후서를 배웠습니다. 고린도후서는 참으로 위로의 서신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절망적인 상황,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완악해서 대적하던 고린도 성도들이 어찌 되었는지, 그들의 죄를 깊이 뉘우치고 다시 사도 바울을 목자로 인정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위로한 하나님의 위로가 고린도후서를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로 채웁니다. 그리고 다시 어려움과 낙심 가운데 있는 분들을 이 말씀으로 돕게 됩니다.

 

둘째, 때에 맞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적절한 잠언 15:23 “사람은 자기 입의 대답으로 기쁨을 누리나니 때에 맞게 한 말이 얼마나 좋은가!” 여기에서 “자기 입의 대답“은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는 적절한 대답"을 의미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정중한 태도로 그 말에 적절한 대답을 합니다. 이러한 대답은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 호의를 갖게 만들며, 또 듣는 사람에게 유익을 줍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아름답고 귀중합니다. 그러나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는 교만하여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오만한 태도로 부적절하게 대답합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자의 대답은 듣는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며, 그들을 멸망으로 인도합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예들이 많이 나옵니다.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은 지혜로운 말로 다윗을 설득하여 자기 남편이 죽임을 당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삼상 25:23-33). 또한 장군 나아만이 엘리사의 말을 듣고 분노하여 돌아가려고 할 때에, 그의 종은 적절한 말로 분노한 나아만의 마음을 돌려서 요단강에서 몸을 씻고 문둥병을 고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왕하 5:13-14). 또한 신약 성경을 보면 율법사 가말리엘도 적절한 말을 했습니다. 그는 유대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사도들을 죽이려고 할 대에 적절한 말로 그들을 설득하여, 그들이 무리하게 사도들을 해치지 못하도록 권면을 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산헤드린 공회가 죄 없는 사람들이 피를 흘리는 일을 막았습니다. 이와 같이 때에 맞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는 호감을 주고, 그 말을 듣는 사람이나 공동체에게는 유익함을 끼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교만하여 남의 말을 잘 듣지도 않고 부적절한 말로 상대방을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해를 주는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겸손한 태도로 남의 말을 경청하고, 예의를 갖추어서 적절한 대답을 함으로 듣는 사람에게 호감을 주고,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때에 맞는 말은 매우 귀하고 또 아름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이러한 말을 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 간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상황에 맞는 적절한 충고를 하는 것입니다. 잠언 26:11~12 “적절히 말한 말은 그림들에 잇는 금 사과들 같으니라. 순종하는 귀에 대고 지혜롭게 책망하는 자는 금귀고리 같으며 정금 장식 같으니라.” 여기에서 "적절한“의 바른 번역은 ”적절한 상황"으로 번역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상황”이라는 단어가 번역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상황을 의미하는 말은 원래 '바퀴'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바퀴'는 '형편과 상황에 맞게 잘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경우에 합당한 말'은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말'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12절에서 '지혜롭게 책망'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우에 적절한 말은 여러 가지 환경과 상황을 잘 고려해서 상대방에게 꼭 필요한 적절한 제안이나 책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제안은 듣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익하며, 그 말을 듣기만 하면 실수를 피하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은 그림들에 있는 금 사과들” 이라는 표현은 이것은 은색의 접시에 새겨진 황금색 과일 모양을 연상케 해줍니다. 당시에 이러한 물건은 매우 귀하고 값비싼 물건에 속했습니다. 지혜로운 적절한 충고와 조언은 은쟁반에 놓인 금 사과처럼 귀중하고 아름답습니다. 금귀고리는 우리의 귀와 얼굴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이와 같이 지혜자의 충고나 조언도 그 말을 듣는 사람을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해줍니다.

 

우리가 어떻게 파괴적인 언어생활을 버리고 덕을 세우는 말을 할 수가 있습니까? 먼저 우리의 마음을 경영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2:35~36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보고에서 선한 것들을 내고 악한 사람은 악한 보고에서 악한 거들을 내느니라. 오직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들이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그것에 대하여 회계 보고를 하리라.” 우리가 무심코 하는 모든 말들이 기록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심판 날에 그 말들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회계 보고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말들이 들어날 것이며, 그 말들에 대한 보상과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구원 받은 자들에게는 처벌은 없지만, 부끄러움은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언어생활을 돌아보고 늘 주의하며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느헤미야 2장에서 느헤미야의 슬픈 기색에 왕이 말하였습니다. “네가 병들지 아니하였거늘 어찌하여 네 얼굴에 슬픈 기색이 있는냐?” 왕의 이 말은 굉장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포도주를 미리 맛보고 왕께 드리는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슬픈 기색을 보인 것은 왕에게는 크나큰 위험의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때, 느헤미야는 느헤미야 2장 4절에서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신의 소원을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기 전에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여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지혜를 주시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긴급한 상황 속에서도 시의적절한 상황에 맞는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평소의 말에 크나큰 힘이 있음을 배웠습니다. 이 말이 파괴적으로 쓰일 수 있고, 사람과 공동체를 세우는 데도 쓰일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우리의 말들이 다 하늘에서 기록되고 있음을 알고, 늘 우리의 말에 조심해야겠습니다. 늘 기도하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하루하루를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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