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
지난 시간에 우리는 바울이 나누어주기를 원하는 ‘어떤 영적 선물“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로마 교회는 자생적으로 설립된 교회입니다. 그들에게는 칭찬받을 만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신학적으로 영적으로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바른 복음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을 위해 먼저 서신을 통해 이 바른 복음을 가르치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나누어주기를 원했던 ’어떤 영적 선물”이라는 것을 지난 시간에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말씀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 전체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전체에 걸쳐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복음의 능력에 대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 복음의 능력에 대해 배우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복음의 능력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사도 바울에게는 복음을 부끄러워 할 수 있는 이유들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복음”이라는 단어는 “기쁜 소식”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복음”이라는 단어는 그리스 시절에 승전보를 의미했습니다. 전쟁에 이겼을 때의 “기쁜 소식”을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로마 시대에 이르러 이 복음은 황제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로마인들에게 신은 인간의 생사화복에 관여했습니다. 자신들의 삶에 관여하는 자는 황제입니다. 그러므로 황제의 탄생이 곧 복음이었습니다. 황제는 신과 같이 우상 숭배되었고, 그들의 치적이 “좋은 소식”, 곧 복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황제의 복음은 화려합니다. 세상에 자랑할 만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그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십자가형은 로마 시민권자들에게 가해지는 형벌이 아닙니다. 십자가 형벌은 인간이 고안해 낸 가장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형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형벌은 로마 제국 내의 종들과 반란자들에게 가해진 형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바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형벌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이 사실은 이성적으로 믿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전할 때, 미친 자로 오해 받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그 복음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복음은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는 구원의 도리가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이 큰 사실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또한 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칭의“의 구원
이 구원은 하늘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을 아무런 꼬투리가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전가해 주신 의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의롭다 인정해 주시는 의입니다. 이 의을 통해 우리는 구원을 얻습니다. 중생을 체험하게 됩니다.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2. “성화”의 구원
우리가 이 땅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거기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에서 죄책을 면하였지만, 여전히 우리는 죄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오염된 죄와 싸우며 거룩한 삶을 살도록 요구를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화의 구원입니다.
3. “영화”의 구원
우리의 구원은 종국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완전히 영혼과 몸이 결합하여 영화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에 이 루어 질 이 구원을 소망합니다.
우리가 영화의 구원은 미래적인 구원입니다. 그러나 칭의의 구원은 이미 우리에게 임한 구원입니다. 이 구원을 통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또한 우리가 성화의 구원에 생각해 볼 때, 여전히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는 죄를 이길 힘과 능력이 우리에게 없음을 발견케 됩니다. 우리에게 여전히 복음이 필요합니다. 복음의 내용 중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칭의의 구원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화의 구원에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필요합니다. 우리 또한 죄에 죽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죄로 이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 공로를 의지하고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며 나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위해 죽으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고 죄와 싸우며 거룩한 삶을 향햐 나가는 삶이, 바로 우리가 십자가에 죽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라
이 세상에서 죄인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를 영적으로 변화시킬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오직 복음만이 이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이 복음을 받은 자의 생각이 변화되고 삶이 변화되고, 죄에서 떠나 영적인 것을 사모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자로 변화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기계적으로 세뇌할 수는 있지만 이런 인간의 근본적인 변화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오직 복음만이 이를 가능케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하나님의 권능인 것입니다.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그리스인에게로다.
그리스인들은 이방인들의 대표입니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모든 인류에게 다 해당된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어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중간에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신약 교회 성도들은 이미 오신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믿고 구원함을 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중심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인류가 구원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계획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됩니다. “믿음에서“는 믿음의 출발점을 말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중생, 거듭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칭의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이 믿음으로부터 시작해서 ”믿음“에 이르게 됩니다. 이 믿음은 성화의 믿음입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완전한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성화의 구원을 이루어나갑니다. 그리고 영화의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로마서는 이를 우리에게 가르쳐 줄 것입니다. 죄인인 우리가 어떻게 칭의의 구원을 받았으며, 어떻게 이 땅에서 성화의 삶을 살 수 있는 지, 그리고 완전한 구원, 영원한 구원에 대해 가르쳐 줄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언서 하박국을 참고해야 합니다.
하바국 1:5-6
“너희는 이교도들 가운데서 보고 관심을 두며 놀랍도록 이상히 여기라. 내가 너희의 날들에 한 일을 행하리니 누가 너희에게 그것을 말하여도 너희가 그것을 믿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저 모질고 성급한 민족 곧 그 땅의 넓은 곳으로 진격하며 자기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소유할 갈대아 사람들을 일으키노라.”
이 말씀은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을 받고 있는 유대 민족은 하나님의 다가오는 심판, 즉 바벨론 제국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유대 민족의 우상숭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우상을 섬겼습니다. 바알을 섬겼고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은 유다가 하나님이 계획해 놓으신, 바벨론 제국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하박국이 여기서 질문하는 것이 있습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없는가? 유다가 그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이 위험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은 없는가? 하나님의 진노에서, 그분의 심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은 없는가? 하바국 1:13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바국 1:13
“주께서는 눈이 심히 정결하시므로 악을 보지 못하시며 또 불법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배신하는 자들을 바라만 보시고 사악한 자가 자기보다 더 의로운 자를 삼키는데도 주의 혀를 억제하시나이까?”
하나님은 유다가 이미 범한 우상숭배의 죄를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배신자들을, 이렇게 하나님을 등진 사람들을, 이런 악한 미족을 그냥 놔두시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이 유다를 용서하실 수 있는 한 가지 조건이 제시되는데,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갖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의를 가질 수 있습니까? 그 해답이 2:4절입니다.
하박국 2:4
“보라, 위로 높여진 자의 혼은 그 사람 속에서 곧바르지 아니하나 오직 의인은 자기 믿음으로 살리라.”(하바국 2:4)
여기서 하바국이 말하는 믿음은 신실한 삶, 정직한 삶입니다. 우상을 좇지 않고 하나님만 믿고 따라가는 삶을 말합니다. 하바국 1장과 2장은 어떤 삶을 살아야 유다가 다가올 하나님의 지노의 심판에서 구원받을 수 있을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살리라”의 의미는 “생활하다” 의미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의미입니다.
로마 성도들을 하나님이 사랑하셨습니다.(로마서 1:7)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이미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믿음이 생긴 자들입니다. 이렇게 믿음에서 출발한 자들은 이제 더욱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자신이 믿음이 결코 자신으로부터 온 것이 아님을 알고, 또한 앞으로의 믿음의 삶이 결코 자신의 능력으로 되지 않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더욱더 주님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은 이 시대 저와 여러분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출발을 시작하였습니다. 계속해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또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오직 복음의 능력이 이를 가능케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에 나타난 구원의 도리를 잘 이해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의 칭의 뿐만 아니라 성화의 삶에도 필요합니다. 매순간 우리 또한 십자가에서 예수님처럼 우리를 죽여야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죽는 삶은 우리가 더 이상 우리의 죄악 된 육신의 생각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생각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성화의 삶을 가능케 합니다. 우리가 로마서를 통해 이에 대한 바른 지식을 배워야겠습니다. 우리가 알면 알수록 의인은 믿음으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바국 선지자가 말한 대로,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말씀대로 살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