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님께서 로마서 공부를 통해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해 생각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제 6장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6장을 공부하기에 앞서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을 잠시 복습해 보고자 합니다.
1장에서 사도는 로마 성도들에게 가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서신을 통해 구원의 바른 도리를 가르치기를 원하였습니다. 사도는 신령한 은사를 그들과 함께 나누기를 원하였습니다. 이는 복음이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도는 이를 위해 먼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사람들의 현실을 직시하게 도와 주었습니다. 사도는 세 부류의 사람들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첫째는 육체의 죄 악된 본능을 따라 죄를 짓는 자들이었습니다. 사도는 그들의 죄들을 상세하게 언급하였습니다. 그들의 죄악의 끝판왕은 동성간의 성관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몰랐다고 핑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지식을 그들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창조되고 운행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둘째 부류는 아주 도덕적인 이방인들입니다. 이들은 앞의 부류와는 도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의 도덕률은 아주 높습니다.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토스테스 같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동양의 공자나 맹자와 같은 스승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아주 도덕적인 관념이 투철하여 본능을 따라 살지 않는 사람들도 이 부류에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하나님 앞에 죄입니다. 그들이 죄인이라는 증거는 그들의 양심이 그들을 고소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이 양심의 고발 앞에 자유로운 자는 없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선한 일을 하더라도 우리 속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내면의 죄를 날마다 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양심은 계속해서 우리가 죄인임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부류는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가졌음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율법을 가졌다는 사실이 그들이 구원 받았음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율법을 받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가르치는 유대인들이 율법에 반해서 사는 모습이 바로 유대인들도 죄인임음을 말해 주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사도는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죄인임을 증명한 후에 로마서 3:21절에서 결정적인 단어 "그러나 이제는" 사용하여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 구원의 길은 우리의 행위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오직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사도는 이를 "화목 제물" 개념으로 설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에서 죄를 처리하는 방법은 나를 대신하여 죽을 헌물에게 안수하여 나의 죄를 전가시키고, 하나님은 그 헌물에게 당신의 죄에 대한 분노를 쏟아 부으십니다. 그리고 헌물을 드린 자의 죄를 눈 감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죄를 물으시고 온 인류의 죄에 분노하여 십자가에 죽이셨습니다. 대신에 우리들을 의롭다 칭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를 죄 없다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칭의의 구원에 대해 설명한 사도는 유대인들이 제기할 여러 문제들에 미리 답하였습니다. 첫째는, 믿음으로 구원 받을 수 있는 가?에 대한 의문 제기였습니다. 사도는 이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예를 들어 설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이 그 어떤 선한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의롭다 칭하여 주었습니다. 율법이 오기 430전에 의롭다 칭하여 주셨습니다. 둘째는, 할례의 문제였습니다. 사도는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먼저 구원을 받고 그 후에 구원에 대한 징표로 할례를 준 것으로 설명하였습니다. 할례 그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니며 단지 징표임을 강조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는가? 질문하는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은 마치 거울과 같아 우리가 죄인 됨을 깨닫게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도는 5장에서 구원의 확신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까? 사도는 네 가지를 들어 설명하였는데 첫째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이요, 둘째는 우리가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째는, 환란 가운데 즐거워하는 소망을 가진 것이요, 마지막은 우리에게 성령님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 네 가지 사실은 우리가 구원 받은 자라는 확신을 가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로마서 8:1)로 넘어갑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5장에서 8장으로 넘어가는 것이 자연스런 연결입니다.
그러면 6과 7장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이는 사도가 혹시 모를 오해를 사전에 불식시키기 위해 쓰여진 장들입니다. 사도는 로마서 5:20-21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또한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가 넘치게 하려 함이거니와 죄가 넘친 곳에 은혜가 더욱더 넘쳤나니"(v20)
"이것은 죄가 군림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것 같이 은혜도 의를 통해 군림하여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v21)
20절에서는 혹시 어떤 이들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한다는 이 20절의 말씀을 이용하여 죄를 더 지으려고 하는 자들, 신학적으로 무율법주의자 혹은 반율법주의에 대한 경계의 말씀으로 주신 것입니다. 사도는 6장에서 1-14절에서 이를 교리적으로 설명하고, 15-23절에서는 경험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7장은 21절에 대한 오해의 염려에서 쓰여졌습니다. 그렇다면 율법은 왜 필요한가? 율법의 기능과 목적은 무엇인가? 혼란에 빠질 사람들을 위해 율법의 기능과 목적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전체적인 로마서의 구조 속에서 로마서 6장이 은혜롭게 이해될 수 있기를 주 안에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