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의 가르침을 받기 위한 조건들
첫째는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고 일생을 오직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할 때, 주님의 뜻을 나에게 가르쳐 주셔서 점점 더 거룩한 사상으로 축적시켜 주십니다. 자기의 인생 철학이나 자기의 살고 있는 스타일을 앞에 내놓고 그 안에서 성신님이 뭘 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은 성신님의 가르침과 인도를 받는 자세가 아닙니다. 성신께서 가르쳐 주시면 나는 그대로 살겠다, 나는 아무것도 내 것이라고 내놓을 것이 없다. 이렇게 자기의 죄 있는 것과 부족한 것과 또한 우둔한 것을 알고 성신께서 가르쳐 주시기만 바라고 맡기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둘째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신께 대한 기도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간절히 마음을 집중하고 꼭 그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기도가 마음 가운데서 우러나는 것입니다. 주님, 이 문제에 대해서 알지 못하겠사오니 주님의 뜻을 보이시면 보이시는 대로 순종하겠습니다. 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혜가 없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알기 원하거든 구하라고 하셔서 가만히 앉아서도 저절로 알 수 있다고 생각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약4:2)라고 하여 구하지 않는 까닭에 얻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해서 진실하게 배우고 그 안에서 가르침을 찾는 것입니다.
문제에 임해서 어디를 봐야 내가 이것을 알까 하고 갑자기 성경을 사전 찾듯이 찿는 그런 것이 아니라, 평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거룩한 도리를 언제든지 근실하게 배워서 문제가 있을 때에 그 문제를 판단할 수 있는 더 높고 풍부한 크라이테리어(기준)를 가질 수 있도록 공부하고 있으라는 말입니다. 스스로 경건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고 할 때, 예를 들어 가야 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 하는 문제가 있을 때에 자기가 늘 읽어가는 데를 읽어서 가라고 하는 말이 자꾸 나오면, 아! 그러면 가야겠다하고 결정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성경을 그처럼 이상하게 기계적으로 쓰는 것은 정당하게 쓰는 법이 아닙니다. 성경이 원래 주고자 하는 거룩한 사상과 도리, 무엇봐도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 좋아하시는 것, 경영하시는 것, 나한테 하고자 하시는 것들을 자꾸자구 터득해서 깨닫고 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넷째로 거룩한 교회가 역사적으로 검증해서 우리에게 물려준 신령하고 훌륭한 유산들을 아주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성경을 보고서 무엇을 깨닫겠다 할 때에 아무런 규범이 없고 힌트도 없다면 단번에 그 도리를 잘 깨달을 사람이 많지 않은 것입니다. 그럴 때에 어떤 사람이 그럴듯하게 얘기하면 아, 그렇겠다 하고 그냥 오도될 사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 잘못된 가르침이 전세계적으로 확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건실한 역사적인 테스트를 껵어서 우리에게 물려준 금과 같은 유산들인가 그렇지 않으면 어떤 사람이 한때 일어나서 떠드는 이야기인가를 주의해서 잘 살펴야 합니다.
거룩한 교회가 규제하는 것과 유산으로 물려준 것을 잘 받으려고 하면 책을 가지고 배우기도 하고 훌륭한 스승에게 배우기도 해서 사상을 쌓아 가는 것입니다. 훌륭한 스승에게 배운다는 것은 교회가 마련한 참 귀중한 방법입니다. 프로테스탄트의 예배식에서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강설하는 시간입니다. 강설은 하나님의 말씀이 은폐되었던 것을 가급적 해명해 주는 것입니다.지금까지 자기 스스로 터득하지 못하던 것을 훌륭한 스승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해명해 가는 것을 통하여 기이하게도 자꾸 터득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른 교리와 또 거룩한 유산 위에서 발전해서 깊이 파 들어간 것이야지 사람들이 제멋대로 그럴듯하게 얘기하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강설도 거룩한 이대한 유사노가 금과 같이 빛나는 거룩한 도리를 발판으로 해서 전진해 나가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