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9:1~12
솔로몬은 이 땅에서 삶에 대해 깊이 묵상하였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른다면, 어떤 삶이 최선의 삶인가를 고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야 할 인생에 대해 설명하고자 시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솔로몬이 들려주는 우리의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어떤 삶이 하나님 앞에서 최선의 삶인 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의 일반 은혜와 특별 은혜
PART I 하나님의 일반적 은혜
이 모든 것으로 인하여 내가 내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며 이 모든 것 즉 의로운 자와 지혜로운 자와 그들이 행한 일들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밝히 보이려 하였노라.
앞 장에서 설교자는 하나님의 일들을 눈여겨보고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일을 살펴보아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알아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한 것이며 심지어 지혜자라 할지라도 이를 다 알 수 없음을 고백하였습니다.(전도서 8: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자는 9장에서 자신이 깨달아 알게 된 “인생”이라는 주제에 대해 설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깊이 생각하며’는 '설명하다'는 의미입니다. 전도자는 복잡한 인생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습니다. 특히 그는 인생문제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진지하게 연구를 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의로운 자와 지혜로운 자, 그리고 그 행위가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밝히 보여 알게 하려고 합니다.
“의로운 자” 여기서 의로운 자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자입니다. 복음적으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롭다 인정을 받은 자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아는 자입니다. 구원 받은 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사람의 마음이나 역사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잠 21:1)에서 지혜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왕의 마음이 물 있는 강들과 같이 {주}의 손 안에 있나니 그분께서 친히 원하시는 곳으로 그것을 돌리시느니라." 여기에서 하나님의 손은 왕의 마음을 주관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하나님의 섭리는 때로는 인생이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구약의 요셉은 이집트의 수상이 되었지만, 그가 수상이 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형제들에게 팔려가야 했고, 모함으로 인해 감옥에 가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의 마지막의 결과를 알고, 하나님의 의도를 알고 있습니다. 이제 솔로몬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7번을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섭리란 하나님의 전능하고 언제 어디나 미치는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마치 자신의 손으로 하듯이,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여전히 보존하고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잎새와 풀, 비와 가뭄, 풍년과 흉년, 먹을 것과 마실 것, 건강과 질병, 부와 가난, 참으로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그의 손길로 우리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하에서 역사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결코 우연은 없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허락하실 때에라야 일어날 수 있습니다. 창세기 50장 20절에 우리는 요셉의 고백을 통해서 이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직 당신들로 말하건대 당신들은 내게 악을 행하려고 생각하였으나 오히려 [하나님]은 그 일이 선이 되도록 계획하사 이 날과 같이 많은 사람을 살려 구원하게 하셨나니”
이 하나님의 섭리 하에서 일반적인 하나님의 섭리와 택하신 자들을 위한 특별한 섭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일반적인 하나님의 섭리 하에서는
1. 세상적인 축복에 차별이 없습니다.
아무도 자기 앞에 있는 모든 것을 통해 사랑이나 미움을 알 수 없느니라.
의인이나 지혜자라고 해서 무조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아닙니다. 의인이나 지혜자가 사랑받을 것인지 미움을 받을 것인지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때로는 악인, 지혜가 없는 자들이 이 땅에서 더 잘 살 수가 있습니다. 장수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믿고 의롭게 살고자 하는 자들은 삶은 물질적으로 가난할 수 있습니다.
2. 삶의 불행한 일들에 차별이 없습니다.
모든 일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임하나니 곧 의로운 자와 사악한 자, 선한 자와 정결한 자와 부정한 자, 희생물을 드리는 자와 희생물을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게 한 가지 일이 임하여 선한 자가 어떠함같이 죄인도 그러하며 맹세하는 자도 맹세하기를 두려워하는 자와 같으니라.
'임하는 것'으로 번역된 말은 '돌발적인 사고', '우연', 또는 '사고'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전도서에서는 이 말이 종종 '사람들에게 임하는 재난이나 사고', 또는 '인생의 마지막'(죽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전도자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는 일'이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 같이 돌발적인 사고나, 우연, 또는 사고 등을 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도자는 이러한 일들은 악인이나 죄인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의인과 지혜자도 동일하게 임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도자는 이 일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사람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는 '의로운 자와 사악한 자'에게 임하는 일이 동일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의로운 자는 종교적으로 하나님 앞에 바르게 행하는 사람을 의미하고, 또 사악한 자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선한 자와 정결한 자'입니다. 여기에서 '선한 자와 정결한 자'는 윤리적으로 바른 삶을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부정한 자'는 비도덕적인 사람을 말합니다.
셋째로 이러한 일들이 '희생물을 드리는 자'와 '희생물을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게도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희생물을 드리는 자는 예배드리는 사람, 즉 경건한 사람을 말하고, 희생물을 드리지 아니하는 자는 예배드리지 않는 사람, 즉 불신자나 불경건한 사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자는 “선한 자”입니다. 반대로 하나님 밖에 있는 자는 “악인”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지 않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영광을 돌이는 자입니다. 반대로 “맹세하기를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에 대해 고려해 보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자입니다.
여기에서 설교자는 의인이나 지혜자의 운명뿐만 아니라 악인의 운명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삶의 불행한 일들이 의롭고 지혜로운 자들에게도 일어납니다.
3. 죄의 유혹에 차별이 없습니다.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 가운데 악한 것이 이것이니 곧 모든 사람에게 한 가지 일이 임하는 것이라. 또 참으로 사람들의 아들들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며 그들은 사는 동안 마음속에 미친 것을 품고 있다가 그 뒤에 죽은 자들에게로 가느니라.
“모든 사람에게”에게 한 가지 일이 임하게 됩니다. 이는 모든 인생은 사는 동안 마음속에 미친 것을 품고 있다가 그 뒤에 죽게 됩니다. 의인과 악인이 세상에서 당하는 일이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평생 담대하게 죄를 지으면서 살아갑니다. 의인, 지혜로운 자도 악인과 지혜로운 자가 세상적인 성공에 이루는 것을 보고 불법과 타협하고 쉽게 사는 길을 선택합니다. “미친 것”은 “어리석은 행동”, “사람을 어리석게 하는 것”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죄의 유혹을 받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과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은 요한계시록 3장 17절에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이렇게 꾸짖었습니다. “이는 네가 이르기를, 나는 부자라. 내가 재산을 불렸으니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하면서 네 비참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세상적인 부와 안락에 그리스도인도 얼마든지 빠져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이런 유혹 가운데 시험을 받으며, 살다가 죽게 됩니다.
PART II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1. 구원의 소망이 있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게 연합된 자에게 소망이 있나니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으니라.
설교자는 의인도 악인처럼 죽고, 사람들은 악을 품고 미친 듯이 살다가 죽지만, 살아 있는 자가 죽은 자에 비해 다른 점이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소망'으로 번역된 말은 구약 성경에서 본문 외에 2곳에만 사용되고 있습니다(왕하 18:19, 사 36:4). 이 두 구절은 모두 다 히스기야 왕 때에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포위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앗수르의 군대장관은 예루살렘 성을 포위한 후에, "히스기야 왕이 '신뢰'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소리쳤습니다. 그는 히스기야 왕이 여호와를 '신뢰'하지만, "여호와가 앗수르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낼 수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신뢰'라는 말이 바로 본문에서 '소망'으로 번역된 말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은 경건한 사람이 여호와를 '신뢰'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설교자는 전도자는 모든 산 사람들에게 '신뢰할 것'이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자들은 자기가 죽을 것을 알거니와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자보다 낫은 첫 번째 이유는 "자기가 죽을 것을 알거니와"입니다. 죽은 사람은 모든 지각이 사라져 버리지만, 산 사람들은 최소한 자신이 죽을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산 사람은 죽을 줄 알기 때문에 회개하고 구원받을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지각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더 이상 회개할 기회가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소리를 지르며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내게 긍휼을 베푸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가 그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도록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나이다, 하거늘 아브라함이 이르되, 아들아, 너는 너의 평생에 너의 좋은 것들을 받았고 그와 같이 나사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라. 그러나 이제 그는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느니라. 이 모든 것 외에도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려 하는 자들이 갈 수 없고 거기서 오려 하는 자들도 우리에게 건너올 수 없느니라, 하니” (누가복음 16:24~26)
살아 있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구원의 소망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의 공로를 알게 됩니다. 교만한 마음이 낮아져서 회개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살아 있는 자들 중에서 부어 주시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2. 하나님의 상이 있습니다.
다시는 보상도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들을 기억하는 일이 잊혔기 때문이로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보다 나은 둘째 이유는 "다시는 보상도 받지 못하나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보상'으로 번역된 말은 원래 고용주가 일꾼에게 일한 대가로 주는 '품삯'(창 30:28, 신24:15)을 말합니다. 이 말은 문맥에 따라서 어떤 일에 대한 '보상'이나 '상급'을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10에 우리의 삶의 행위가 보상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
그러나 반대로 이 땅에서의 삶에만 열중한 사람은 결코 받을 보상이 없습니다.
또한 그들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이제 사라졌나니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어떤 일 중에서 그들이 차지할 몫은 영원히 없느니라.
여기에 나오는 사랑과 미움, 그리고 시기질투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하는 모든 일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에 열중한 사람들은 영원한 삶의 보상이 없습니다. 이 땅의 것들은 하나님 앞에 설 때 다 타버려 없어지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3:1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사람의 일이 불타면 그는 보상의 손실을 당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에 의해 받는 것 같이 받으리라.”
3.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유익에 대해 하이델베르크 문답 28번 이렇게 묻고 답하고 있습니다. “섭리로써 여전히 보존하심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는 어떠한 역경에서도 인내하고, 형통할 때에 감사하며, 또한 장래 일에 대해서도 우리의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굳게 신뢰하여 어떠한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모든 피조물이 완전히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므로 그의 뜻을 거슬러 일어나거나 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첫째로, 일한 수고를 누릴 때의 기쁨
네 길로 가서 기쁨으로 네 빵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즙을 마시라. [하나님]께서 이제 네가 행하는 일들을 받으시느니라.
"네 길로 가서 기쁨으로 네 빵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즙을 마시라."
여기에 나오는 빵과 포도주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고 마시는 음식과 음료수를 말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빵을 먹고 음료수를 마시는 것은 우리가 날마다 하는 일상적인 일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받으시느니라'고 번역된 말은 '기뻐하다, 받다, 열납되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산제사입니다(롬 12:1-3). 하나님은 우리가 정직하고 기쁘게 살 때에 우리 삶을 인정해 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때로 '라짜'는 '왕과 신하가 동역하는 것'을 의미할 때도 있습니다(삼상 29:4). (개역개정판에서는 이 말을 '화합'으로 번역하고 있음) 우리가 기쁨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이며,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 있는 삶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축복과 영광의 길이 될 수 있습니다.
네 옷을 항상 희게 하고 네 머리에 향유가 부족하지 아니하게 할지어다.
여기에서 '네 옷을 항상 희게 하고 네 머리에 향유가 부족하지 아니하게 할지어다'는 말은 밝고 단정한 외모로 기쁘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슬픈 일이 있을 때에 옷을 찢거나 몸에 기름을 바르지 않았습니다(삼하 14:2). 또 사람들은 연회를 베풀 때에 귀한 손님들에게 머리에 기름을 부어 온 몸을 향기롭게 해주었습니다(시 23:5). 이러한 여러 가지 성경의 기록들을 보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밝고 단정한 외모로 기쁘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둘째로, 가족으로 인한 기쁨
네 헛된 생명의 모든 날 곧 그분께서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네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현재의 삶 속에서, 네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수고 중에서 네가 받을 몫이니라.
하나님은 세상에서 수고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그 몫으로 가족과 함께 즐겁게 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우리 생명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처럼, 우리의 가족 역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에 혼자 사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시고,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서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가게 해주셨습니다. 가정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제정된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고하며 사는 동안에 가정이 제 기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힘든 세상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사는 특권을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로, 노동의 기쁨
무엇이든지 네 손이 해야 할 일을 얻는 대로 네 힘을 다해 그것을 하라. 네가 가게 될 무덤 속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느니라.
설교자는 "무엇이든지 네 손이 해야 할 일을 얻는 대로 네 힘을 다해 그것을 하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네 손이 해야 할 일“
어떤 사람은 소극적으로 앉아서 자기를 불러주는 곳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적극적으로 우리가 할 일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사명은 노는 것이 아닙니다. 땀을 흘리며 일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신 후, 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땅을 정복하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르시도록 사명을 주셨습니다.
"네 힘을 다해 그것을 하라"
또한 전도자는 네 손을 할 일을 찾아서 그 일을 "네 힘을 다해 그것을 하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일단 자기 재능으로 이웃을 섬길 일을 찾으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할 때,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2. 이해되지 않는 일들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이해되지 않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내가 돌이켜 해 아래에서 보니 경주가 빠른 자들에게 돌아가지 아니하고 전투가 강한 자들에게 돌아가지 아니하며 빵이 지혜로운 자들에게 돌아가지 아니하고 재물이 명철한 자들에게 돌아가지 아니하며 은총이 재능 있는 자들에게 돌아가지 아니하고 오직 때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생기느니라.
(1) 빠른 선수가 항상 경주에 이기지 않습니다.
(2) 강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가 항상 전쟁에 이기지 않습니다.
(3) 지혜로운 자도 궁핍한 생활을 합니다.
(4) 머리가 좋다고 다 부하지 않습니다.
(5) 재능 있는 자가 항상 인정을 받지는 못합니다.
사람도 자기 때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같이 사람들의 아들들도 재난의 때에 그것이 그들에게 갑자기 닥치면 올무에 걸리느니라.
(6)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불행한 일을 겪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 처할 때 낙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자는 결코 낙심하거나 주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자는 이 모든 일이 결코 우연히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선한 목적 때문에 이 일이 일어났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덣 번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삶을 연구하여 가르쳐 주는 솔로몬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솔로몬은 우리 삶에 하나님의 일반적 은혜와 구원 받은 자들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은혜에 대해 설교하였습니다. 이 솔로몬의 인생에 대한 깊은 관찰과 이해가 저와 여러분의 삶에 은혜가 되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