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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마태복음 6:12
성경본문내용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용서하는 것 같이 우리의 빚을 용서하옵시며
강설날짜 2019-04-14

우리는 지난 시간에 우리에게 필요한 물질을 구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 물질이 필요함을 아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가장 기초적이고 필요한 것은 우리의 생존입니다. 그 다음에 죄가 있고, 그 다음에 악한 자의 시험으로 벗어나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 나라의 백성, 국민이라는 바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생존의 필요를 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구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주기도문의 다섯 번째 간구, 우리를 위한 간구 중에서 두 번째 간구인 죄를 사함 받는 것에 대한 간구를 배우겠습니다. 죄를 사함 받는 것의 중요성과 긴박함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고, 죄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들을 배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죄를 구해야 할 것들에 대해 적용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우리의 빚을 사하여 주옵소서

 

죄 사함의 중요성과 긴박성

이 다섯 번째 사죄의 간구와 그 앞에 양식을 간구하는 이 간구 사이에 그리스어 원문을 보면 카이(Καὶ), 그리고라는 말로 접속이 되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필요로 하는 만큼 우리의 사죄도 늘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생각하게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죄의 필요라는 것이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필요로 하는 만큼 항상 긴급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만일 물질의 어떤 것이 결핍되어 있을 때에는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간절히 기도합니다. 생계의 문제가 달려 있을 때에는 그 간절함은 배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 죄에 대해서는 물질의 문제만큼이나 긴용하고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 죄를 고하고, 하나님께서 사죄해 주실 것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생각을 하는 편입니다. 왜 우리가 우리 생존에 필요한 물질을 구하는 만큼이나 긴급하고 중요하게 우리의 사죄를 구해야 할까요?

 

(1) 하나님의 관계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 앞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사죄를 간구하여야만 또한 주께서도 진정으로 사죄를 해 주십니다. 시편 18:25-26을 보면 긍휼을 베푸는 자에게는 주께서 친히 주의 긍휼을 보이시고 곧바른 자에게는 주께서 친히 주의 곧바르심을 보이시며 순수한 자에게는 주께서 친히 주의 순수하심을 보이시고 거역하는 자에게는 주께서 친히 주의 적대하심을 보이시리니이렇게 말씀하셔서 우리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진정으로 사죄를 구해야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거기에 대한 대답을 해 주신다는 것을 큰 원칙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지 못한다면 주님과의 교제에 문제가 생깁니다. 더 심해지면 주님과의 교제의 일시적 단절이 올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주님을 거역하는 자에게 주의 적대하심을 보이시기 때문입니다.

 

(2) 심판을 받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18:23을 보면 그러므로 하늘의 왕국은 마치 자기 종들로부터 회계 보고를 받으려 하는 어떤 왕과 같으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했느냐 하고서 일일이 회계를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회계는 통장의 “account”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행한 선행뿐만 아니라 죄도 통장에 차곡차곡 쌓이듯이 쌓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우리 각 사람이 자신에 관하여 하나님께 회계 보고를 하리라.”(14:12) “우리가 반드시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해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드을 받으리라.”(고후 5:10)

 

(3)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4:4에서 마귀의 첫째 시험에 대해서 주께서는 신명기 8:3의 말씀을 인용하셔서 분명히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떡으로만 살지 않는 까닭에 사람이 사람 된 본의에 이르려고 하면 동물적인 요구인 육신의 생명의 지탱을 위한 양식을 간구할 뿐 아니라, 참으로 도덕적인 존재로서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 사죄를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의 간구하는 것은 우리의 생리적인 혹은 육체적인 요구에 부응해서 그것을 지탱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하는 간구이지만 사죄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당연히 서 있어야 할 고귀한 피조물로서, 곧 짐승 이상의 도덕적인 존재로서 필요에 의해서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죄의 간구라는 것은 짐승이 간구할 수 없는, 사실상 짐승에게는 필요 없는 인간에게 특유한, 인간이기에 필요한 간구입니다. 육신의 주림에 더하여 사죄와 이 사죄에 반드시 뒤따르는 평화를 갈구하는 그 영혼의 주림이라는 것이 사람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육신의 주림이 있으면 동시에 영혼의 주림이 필연적으로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떡 없이 살 수 없듯이 하나님의 사유하심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는 것이 죄

성경은 죄라는 사실을 표시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말을 썼습니다. 가령 인간의 생명의 참된 목표가 뭐냐, 왜 인간은 피조되었고, 왜 인간은 생활하느냐 하는 관점에서 죄라는 것을 볼 때에는 하마르티아스; μαρτίας라는 그리스 말의 본의대로 과녁을 제대로 맞히지 못하는 것이 죄입니다. 즉 인간에게 주신 바 거룩한 목적을 향해서 제대로 바로 나가지 못하는 것을 보고 죄라고 합니다. 사람의 제일 높고 제일가는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과 대요리문답의 제1문에 다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소요리 문답에서는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이냐?’ 대요리문답에는 사람의 가장 높고 가장 첫째 되는 목적이 무엇이냐?’ 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두 가지 큰 것을 이야기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로우시게 한다는 것과 하나님을 언제든지 영원토록 늘 즐기고 산다는 것이다하고 답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의 목표라고 하면 죄라는 말은 그 생의 목표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말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할지언정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죄라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바로 맞히지 못해서 그만 흑암한 데로 떨어진 한 거대한 타락이요 참상이라는 말씀입니다.

 

(2) 율법을 범한 것이 죄

둘째로 율법이라는 관점에서 또한 이자연계에 분명히 나타난 하나님의 법칙이라는 관점에서 죄를 다룰 때에는 죄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죄를 범하는 자는 율법도 범하나니 죄는 율법을 범하는 것이니라”(요일 3:4) 하고 말했습니다. 어떠한 지극히 작은 죄도 하나님의 거룩한 법칙을 범했거나 그것을 벗어난 것이다. 즉 그 지경에서 벗어나서 제멋대로 간 것입니다.

 

(3) 어리석음이 죄

셋째로 사람의 총명이나 지혜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성경은 죄를 어리석음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아주 잠깐의 자기의 향락과 쾌락과 흥분을 위해서 자기의 영혼까지 때때로 팔아먹는 짓을 하는 것이 죄인입니다. 잠시의 향락과 잠시 인간적 쾌락을 추구하는 그 생활 행동이나 방향으로 인해 영원한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 어리석음인데 성경은 이 어리석음을 또한 죄라고 합니다. 어리석은 자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였도다. 그들은 부패하여 가증한 일들을 행하였으니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14:1)고 말한다고 했습니다.

 

(4)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죄

넷째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땅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죄라는 것을 볼 때에는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되고 혹은 여기 마태복음 6:12 말씀대로 하나님께 부채를 지고 있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 죄를 표시하는 말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라는 관점에서 죄

누가복음 11:4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또한 용서하오니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옵시며에 있는 라는 말은 하마르티아스μαρτίας라고 했고, 또한 우리의 부채이라는 의미는 아페카멘;ἀφήκαμεν라고 다르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부채라는 의미로 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마르티아스의 죄는 우리가 해서는 아니 될 짓을 한 것을 의미합니다. 위범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부채‘,’이라고 할 때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은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을 생략하는 죄입니다. 해야 할 것을 아니했다는 죄입니다. 우리는 해야 할 것을 아니 한 일에 대해서 얼른 민감하게 느끼지도 않고 얼른 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아니 해야 할 것을 해서 직접 위범을 했다고 할 때는 , 죄를 지어구나하는 생각을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해야 할 당위를 하지 않고 그냥 유예하고 있을지라도 절감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주 광범위하게 짓고 있는 중요한 한 종류의 죄인데, 여기 이 부채라는 말은 이렇게 적용이 됩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할 일이 있고 하나님께 직접 대해서 할 일들이 모두 다 있는데 그것을 내가 하지 않고 지낸 일이 다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빚에 대해서 하나님께 탕감을 구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채들

(1) 시간과 기회를 선용하지 않음

그러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부채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시간이라든지 기회든지 이런 것들을 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그것을 선용해서 매일 장성해야 하고 그 장성한다는 것은 우리의 의무요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정당하게 바른 방향을 취하여 행진하는 그러한 장성을 하지 않고 자기의 이상에 현혹되고 자기의 망상과 자기의 허구의 사상과 혹은 가지가 그릇되게 받은 영향에 유혹되고 현혹되어서 그릇된 길로 움직이고 나아가면서도 나는 발전이 있다고 스스로 속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됩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당연히 써야 할 곳에 쓰지 못하고 그 대신 쓰지 않아야 할 여러 다른 방면에 남용해서 우리의 시간이나 정령이나 인생을 허비했을 때에는 항상 자기 자시에게 먼저 부채를 지고 있는 것이고 자기 자신에게 부채를 짐과 동시에 그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시간을 주시고 정력을 주시고 생명의 존재를 주신 하나님께 대해서 항상 빚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생의 낭비라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대한 부채요 동시에 하나님께 대한 부채입니다.

 

(2) 타인에 대한 바른 심정을 품지 못함

둘째로 다른 사람에게 빚을 지는 경우가 있는데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든지 어떤 것도 빚지지 말라.‘(13:8)는 말씀으로 사랑의 빚 이외에는 어떤 것도 짓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마음 가운데 항상 남에 대한 사랑을 품는 것보다는 그 반대로 시기나 증오 혹은 복수하려는 심정이나 혹은 불친절이나 거짓을 품기가 쉬운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남에게 당연히 품고 주어야 할 나의 심정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나 자신이 항상 타인에 대해 가져야 할 친절이라는 심정, 자비라는 심정으로 대해야 할 터인데 그런 것으로 대하지 않고 자기의 마음에 무관심, 냉정, 더 적극적으로 증오, 불친절,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을 때 이것은 한 개의 부채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엄격히 이야기하면 참으로 부채를 많이 지는 것입니다.

 

(3)하나님께 돌려야 할 것을 돌리지 않는 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규정한 죄에 대한 항목이 나중에 간추려져서 요리문답에 쓰여 있는데, 소요리문답 제14문에 죄가 무엇이뇨하고 묻고 죄에 대해서 규정하기를 하나님이 명백하게 계시하신 표준을 자기가 고의로 위배했든지 힘이 없어서 도달하지 못한 것 그것을 둘 다 죄라고 가르쳤습니다. 도달하지 못하는 것도 죄요, 적극적으로 위배한 것도 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직접적으로 부채를 지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뢰라는 것, 전적으로 전부를 맡겨서 의지해 버리는 것, 생명을 거기다 덜고 의지한다는 것도 오직 하나님께만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어떤 누구에게든지 전적으로 자기 생명을 부탁해서 맡기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어야 할 하나님은 안 믿고 그 대신 믿지 못할 세상이나 세상의 세력을 믿을 때에는 하나님 앞에 큰 부채를 지는 것입니다.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께만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받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연히 드려야 할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예배보다는 예배 의식에만 참가하고 갔을 때에는 항상 부채를 지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그런 예배를 드려야 할 필요를 느꼈고 드려야 할 것으로 안 까닭에 예배하러 간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 가운데 하나님 앞에 경배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다만 예배 의식에 자기가 참가하고 앉아 있으면 저절로 예배가 되는 줄로 알아서는 안 됩니다. 예배라는 것도 자기 영혼의 한 상태입니다. 영혼의 적극적인 작위인 까닭에 공동으로 공중이 다 함께 하는 그것에 끌려가서 버스 타면 자기도 가듯이 가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르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고 분명히 그렇게 했다는 의식도 없고 그냥 갔다 왔다는 정도로 생각했을 때에는 큰 부채를 늘 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빚이 무엇인가를 배웠습니다. 우리의 빚을 사함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긴박한 것인지를 배웠습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 우리의 빚을 민감하게 인식하게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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