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시간에 주기도문을 전체적으로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주기도문은 내용적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하나님의 왕국, 하나님의 왕국에서의 뜻으로 내려간다고 배웠습니다. 반대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기도는 먼저 먹고 살아야 할 사람이라는 사실로부터 출발하여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죄를 용서 받아야 함을 배웠습니다. 또한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후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위에 이루기 위해서 시험에 들지 말고 악에서 건짐을 받아야 함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6장 9b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배울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세 가지를 생각해 볼 것인데, 첫째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하여 둘째는 하나님의 자녀 대해서 셋째는 교회의 보편성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1. 하늘에 계신 하나님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세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다는 의미는 ‘전능(Omnipotence)’입니다.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사오며 하늘들은 주의 손이 이루신 작품이니이다.”(시편 102:25) 또한 하나님은 창조한 하늘을 보존하고 계십니다. “주 곧 주는 홀로 {주}시니 주께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그것들의 모든 군대와 땅과 그 안의 모든 것과 바다들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지으시고 그것들을 다 보존하시오매 하늘의 군대가 주께 경배하나이다.”(느헤미야 9:6) 하나님께서 그 창조한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방치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자신이 창조한 것을 돌보는 분이십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신이 하늘을 창조하시고 돌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하늘을 창조하시고 하늘에 거하시고 계신 전능(Omnipotence)한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다는 의미는 ‘편재(Omnipresence)’입니다.
하나님은 어디 곳이든지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하늘은 ‘땅을 덮고 있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라는 것은 공간적 의미의 하늘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결코 그분을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늘들이 그분의 의를 밝히 드러내리니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자가 되시는도다. 셀라.”(시편 50:6)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바로 ‘전지(Omniscience)’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기도하는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다 알고 계십니다. “오직 아버지께서 너희 머리털까지도 다 세셨나니.”(마태복음 10:30) “그때에 주께서는 하늘 곧 주의 거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사정을 돌아보사”(열왕기상 8:49)
우리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 기도할 때, 전능하시고, 온 땅을 다스리시며, 전지하신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 앞에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을 먼저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경외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생각할 때, 하나님은 아주 먼 곳에 계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히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아주 먼 곳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를 때에는 하나님이 가장 가까운 곳에 계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그 분의 자녀로서 기도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자녀‘란 가지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세 가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로마서 8장 12-16절을 먼저 읽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미는
첫째, 구속함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을 따라 살도록 육신에게 빚지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로되 /성령]을 통해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로마서 8:12-13) 앞 구절에서 사도 바울은 “육신을 따라 걷는 자”는 “죽은 자이며 하나님과 원수가 된 자”(8:6, 7)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비그리스도입니다. 구원 받지 못한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영혼이 구원 받은 자들입니다. 영혼은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몸은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구원 받지 못한 자의 몸에는 아직 죄가 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을 통해 날마다 성화의 삶을 사는 자입니다.
둘째,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 받는 자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롬 8:14)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자입니다. 성령님은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여기서 ‘인도’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ἄγω;agō’인데, 이는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와서, 우리를 부축하여서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게 도와주십니다. 또 다른 성령의 인도는 가르치고 깨닫게 하는 인도입니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분은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든지 자기가 들을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요한복음 16:13) 여기서 ‘인도’는 그리스어로 ‘ὁδηγέω;hodēgeo’인데 이는 가르치는 인도를 의미합니다. 성령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시고 우리를 자라게 하십니다. 말씀을 읽을 때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생각나게 해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입니다.
“너희는 다시 두려움에 이르는 속박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 삼으시는 [영]을 받았느니라. 그분을 힘입어 우리가, 아바, [아버지], 하고 부르짖느니라.”(롬 8:15)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아바’라는 뜻은 ‘아빠’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가장 친근한 사이가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빠 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뢸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다른 사람을 의식하며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교도들처럼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아빠 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은밀하게 듣고 계십니다. ‘은밀하게 듣다’의 의미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동시에 기도할지라도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그 어떤 때 기도하더라도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드러나게 보상’을 해 주십니다. 반드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채워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특별히 기도를 통해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은 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가 아버지를 부르며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오직 거듭 난 그리스도인만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주기도문의 간구를 전에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자녀로서 누리는 특권과 축복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주기도문으로 기도할 때, 우리 자신에게 이 사실을 상기시킨다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가슴으로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도 되시지만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그분은 오직 유대인들의 [하나님]이시냐? 그분은 또한 이방인들의 [하나님]이 아니시냐? 참으로 또한 이방인들의 [하나님]이시니”(로 3:29) 유대인들은 깊은 유다이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만이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라는 뿌리 깊은 사상에 젖어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복음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데 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방인 고넬료가 복음을 영접하는 것을 목격해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인도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주장하였습니다. “많은 논쟁이 있은 뒤에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에게 이르되, 사람들아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이방인들이 내 입을 통해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매우 오래 전에 우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사도행전 15:7)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 없이 믿음으로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천하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교회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성도들이 있습니다. 나라가 다릅니다. 피부색이 다릅니다. 경제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문화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교육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가 결코 구원을 받아 하나님을 섬기는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우리’ 하나님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이런 비전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우리’ 하나님으로 기도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 또한 하나님께 ‘우리’로써 기도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문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싱가폴에서 한 가정이 오셔서 우리와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비록 나라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살아 온 삶이 다를지라도 예수님 안에서 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함께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송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오늘 우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에 대해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편재하시며, 전지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자녀로서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구원 받은 자만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 없이 함께 ‘우리’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가 이 부분을 깊이 생각하며 기도할 수 있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