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말씀
지난 시간에는 마음이 순수한 자의 삶의 자세와 모습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마음이 순수하다는 것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의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이는 이미 구원 받은 자에게도 해당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입니다. 가지는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급해 주시는 진액을 공급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가지는 시들게 됩니다. 구원 받은 자라도 세상을 사랑하고, 죄에 머물러 있으며, 성령의 음성을 듣고 회개치 않을 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세상 가운데 주의하며,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의지하는 버릇을 하여야 합니다. 오늘 날 성도들의 성화를 돕는 분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신데, 이 성령님께 맡기고,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늘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 순수한 자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이런 자들이 성령님께서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과 주님에 대해 배우고 깨닫고, 이 세상에서라도 하나님의 영광,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오늘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화평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팔복에서 말하는 ‘화평’은 무엇이고, 어떤 자가 ‘화평케 하는 자인가?’ 배우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화평케 하는 자들(1)
Part I ‘화평‘의 의미
1. 그리스어의 화평의 의미
화평 혹은 평안이라는 말은 헬라어로는 “εἰρηνοποιός;에이레노포이노포이오스”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평화 혹은 평안의 창시자란 의미입니다. 또는 평화 혹은 평안의 홍보, 증진자란 의미입니다.
1)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화평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와 사람들을 향한 선하신 뜻이로다, 하니라.(누가복음 2:14)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하는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니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터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한복음 16:33)
첫째로, 화평 또는 평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팔복에서 말하는 화평과 평안은 사람이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2) 믿음으로 의롭게 됨으로 누리는 화평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도다.(로마서 5:1)
그분의 십자가의 피를 통해 화평을 이루사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들이 즉 내가 말하노니 그분으로 말미암아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느니라.(골로새서 1:20)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화평, 또는 평안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피흘려 주신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은 자는 이 평화, 평안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3) 화평을 전하는 자
화평의 복음을 예비한 것으로 너희 발에 신을 신고(에베소서 6:15)
좋은 소식을 가져오고 화평을 선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고 구원을 선포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네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이사야 52:7)
이 평화, 또는 평안을 누리는 자만이 이 화평을 홍보하고 전할 수 있습니다.
2. 히브리어의 화평의 의미
히브리어 말에서는 가장 ‘샬롬(שָׁלוֹם)’입니다. ‘샬롬’은 은혜와 함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풀어주시는 가장 중요한 복이다. 제사장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빌어주는 축복기도(민 6:24-26)에서도 은혜와 함께 ‘샬롬’은 복의 핵심적 내용이었습니다. 은혜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근거라면, ‘샬롬’은 그런 은혜 속에서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구체적인 복입니다. 그것은 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맺어질 때 ‘샬롬’의 복이 주어졌습니다.
part II 화평케 하는 자
화평케 하는 자라는 말은 좀 더 잘 알기 위해서는 ‘화평’, ‘평안을’ 조성케 하는 자라는 말로 놓고 생각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화평, 평안을 초래하고 가져다주는 자나 하면 그 평화이라는 상태를 자기 자신이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또한 자기로부터 남에게 흘러가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잇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입으로만 화평하라고 말하고 평안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지금 질병이라는 장애가 발생해서, 질병이 그를 눌러 가지고서 고통을 주고 있을 때, 그에게 평안을 줄 수 있으려면 질병을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 ‘이거 아파서 안됐는데 너무 아파하지 말고 좀 평안히 쉬어라“ 한다면 병문안으로는 인사가 잘됐는지 모르지만 사실 아무 소용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이 슬프고 괴롭고 어려워 가지고서 통곡하는 사람한테 ”울지 말라. 너무 그렇게 슬퍼하지 말라“하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이 슬퍼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슬퍼할 만한 조건이 있어서 그것이 제거되기까지는 슬픔이 복받치니까 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보고서 너무 슬퍼하지 말라 말하는 것은 입인사에 불과한 것이지, 그렇게 하는 사람이 화평케 하는 자, 평안을 갖다 주는 사람은 아닌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마음 가운데 슬픔이 있어서 통곡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슬퍼하지 말라는 말을 하는 대신 슬퍼하는 사람에게 그 슬픔을 제거해 줄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화평케 하나다는 것은 남들이 서로 싸우는 데 중재를 해서 서로 평안 무사하게 해 준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적극적으로 평안을 요구하지만 평안이 있으려야 있을 수 없고 오히려 장애가 있고 괴로움이 있고 혹은 재앙이 있고 고통이 있을 때 그것을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의 전달자가 괼 때 그가 비로소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행복스러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남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할 것입니다.
화평, 평안에 대한 잘못된 생각
시편 74편
“{주}께서 이르시되, 사악한 자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시느니라.”(이사야 48:22)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평안도 만들고 재앙도 창조하나니 나 {주}가 이 모든 일을 행하느니라.”(이사야 45:7)
세상 사람들, 주님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분명하게 그들의 내면에 화평 또는 평안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화평하려고 하고 평안하려고 애를 씁니다. 실제로 물질이 풍부해서, 건강해서 여러 조건들로 인해 그들은 화평하다고 하고, 평안하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왜 이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까요?
“악한 일에 대한 판결이 속히 집행되지 아니하므로 사람들의 아들들의 마음이 악을 행하려고 그들의 속에서 완전히 고정되었도다.”(전도서 8:11)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결국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영혼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집행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죄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팔복이 말하는 화평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화평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화평이요 평안임을 배웠습니다. 또한 이러한 화평과 평안을 누리는 자만이 다른 사람들을 화평으로 인도할 수 있는 자임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한 자임을 알고, 이 화평을 소개하여,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