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
지난 시간에 마음이 순수한 자들에 대해서 공부를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배운 내용을 잠시 복습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첫째, ‘마음’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 ‘마음’이 육체적인 기관뿐만 아니라 성경에서 ‘마음’이라고 할 때는 우리의 정신적 활동의 근원임을 의미한다고 배웠습니다. 우리의 모든 정신적인, 정서적인 활동이 ‘마음’에서 나옵니다. 둘째는, ‘순수하다’의 의미를 배웠습니다. 이 의미는 하나님에 대해 마음이 갈라지지 않는 것,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셋째로, ‘볼 것이다“란 말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보다‘는 말의 의미를 우리가 욥기에서 살펴보았는데, 욥은 그의 부활 때에 자신의 육체적인 눈으로 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하나님께 교정해 주신 후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귀로 듣는 것을 통해 주께 대하여 들었사오나 이제는 내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기 42:5) 우리가 부활 후에 변화된 모습으로 우리 주님을 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도 우리는 주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매 순간 주님만을 의지하고 살아갈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신령한 사실들을 깨닫게 하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를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마음이 순수한 자들이 되어서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는 성령님을 의지해서 살아가야 함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거듭난 후에, 날마다 성령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의가 얼마나 누더기 같은 지를 발견하고,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결코 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 ‘마음이 순수한 자들’에 배우겠습니다. 오늘은 마음이 순수한 자들의 삶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마음이 순수한 자들(3)
깨끗함의 표준
‘마음이 순수하다‘ 의미는 마음이 “깨끗하다’의 의미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깨끗하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표준해서 해서 말하는 것입니까? 흔히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인 표준을 가지고 그 표준에 더 좀 더 가까우면 ‘그 사람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다’ 말합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도덕적인 표준이라는 것은 상대적입니다.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사랑’이 무엇이냐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면 이것을 사랑이라고 할지, 저것을 사랑이라고 할지 결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의’가 무엇인가 할 때에도 그것을 분명하게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막연하고 추상적이라고 할지라도 불의와 의를 판단해서 가급적 의로운 것을 지향하는 마음의 요구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 ‘이미지’로 지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죄로 말미암아 오염되고 부패되었다 할지라도 희미한 자태가 우리의 의식 가운데에 어떤 표준을 세워 주고, 그 표준에 근거해서 옳지 않은 것에 굴복하게 될 때 마음에 괴로움이 있습니다. 이런 심리적 상태를 우리는 보통 양심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양심의 가책을 받는 경우도 사람마다 이런 ‘ 다 다릅니다.
그러면 무엇이 참으로 “깨끗함‘의 표준이냐고 할 때 그 표준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깨끗한 존재로 만들어내셨지만, 사람이 타락한 이후에는 죄가 사람을 지배하여 사람의 생각이 죄의 오염 된 생각을 통해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깨끗하다 생각하지만 실상은 깨끗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참으로 깨끗한 것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인생을 본래 만드신 거룩한 목적을 이루는 것이 ’깨끗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창조 목적대로, 각자의 사명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마음이 깨끗하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생명의 연결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그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나 없이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15:5)
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우리의 사명의 길을 바르게 걸어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에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도 때로는 옛사람을 따라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구원 받았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구원 받은 자가 다 ‘깨끗하다‘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가지가 되어 계속해서 영적인 생명력을 공급받고 있는 상태를 깨끗하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두말할 것 없이 이미 정죄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자들 중에서도 죄를 범할 때에 일어나는 무서운 현실은
“보라, {주}의 손이 짧아져서 구원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요, 그분의 귀가 둔하여서 듣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 오직 너희 불법들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들이 그분의 얼굴을 너희에게 숨겼으므로 그분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이사야서 59:1-2)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나뉠 수 있습니다. 이때는 깨끗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그 영광의 거룩한 자태와 그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투사되는 생명의 연결에서 끊어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만 죄로 인해 그 생명의 거룩한 진액이 제대로 통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삶은 실질 하나님과 나뉘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아무리 성자라고 일컬음을 받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죄 가운데 빠져서, 마귀의 시험 가운데 잠시라도 들어가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건져서 원상의 위치에 놓아 주시지 않으면 결국 그의 생활은 거룩하신 생명이 끊어진 것과 같은 상태를 나태내고 마는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하다“라고 할 때에는 생명이 끊임없이 연결되어서 이 상태가 그의 생활의 자태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순일한 심정
마음이 청결하다는 말은 그 사람이 하나님께 향하여 어떠한 심정을 늘 가지고 있느냐 하는 면에서 다른 말로 바꾸어 보면 순일하다는 상태입니다. 마음이 순일하다, 오롯하다는 것은 하나에만 모든 마음을 쏟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마음의 상태를 이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마태복음 22:37)
예수님은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가르침의 대강령으로 가장 큰 계명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마음이 이리저리 나누지 말고 한데 모아서, 목숨도 이리저리 사방에다 벌여 놓지 말고 하나로 모아서, 자기 생명이 다하기까지 하나님을 섬기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바라보고 의지하고 전부를 거기다 바치고 사는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참된 신앙과 신령한 세계에 있어서의 정절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신부인 교회
에베소서 5:31-32
“이런 까닭에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그들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이것은 큰 신비라.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정절에 대해서 성경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정절을 늘 가지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2-4
“내가 하나님께 속한 질투로 너희에 대하여 질투하노니 이는 내가 너희를 순결한 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리기 위해 한 남편에게 너희를 정혼시켰기 때문이라. 그러나 뱀이 자기의 간교함으로 이브를 속인 것 같이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함에서 떠나 부패될까 내가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선포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선포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이나 너희가 수용하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 너희가 그를 잘 용납하는도다.”
내가 복음을 전해서 너희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해서 네가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 그리스도만을 섬기고 그에게만 붙어서 살도록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사람이 갖고 지킬 참된 정절을 비유한 것입니다. 자기의 남편 아담에게 정절을 다하고 그 아담이 가르치는 그대로 자기가 일생 살아야 할 터인데 엉뚱한 뱀이 와서 가장 꾈 때에 귀를 기울여서 미혹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집중해서 그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고 꾐에 빠져 세상을 사랑하여, 헛된 것을 구하는 삶은 결코 순일한 삶,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주님을 기다리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
교회가 하나님의 거룩한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에 속해 있는 개개인이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 개개인이 이런 신앙을 가질 때, 교회는 거룩한 신부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교인들이 삶이 교회 생활 따로, 세상에서의 삶이 다르다면 그 교회는 결코 순순해 질 수 없습니다. 온갖 오물이 개인의 신앙생활을 방해해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령한 은혜를 공급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삶을 구약 교회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17:33
“그들이 {주}를 두려워하고 또 어디서부터 민족들을 사로잡아 왔든지 그 민족들의 관습대로 자기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열왕기상 18:21
“엘리야가 온 백성에게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의견 사이에서 머뭇거리려느냐?”
우리의 생활 가운데 무슨 일이 생겨서 자기의 돈이나 자기의 지혜나 자기의 사회 세력이나 자기의 친구를 의지할 마음인 난다면 그때가 가장 무서운 시험의 때입니다. 실지로 우리 생활 가운데에는 때때로 그런 시험이 오는 것입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나 문제가 나에게 닥쳤을 때에 얼른 누구를 생각하느냐 하면 그 문제를 풀어 줄 수 있을 만한 다른 능력을 가진 자를 찾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먼저 묻지를 않습니다. ‘친구 아무개가 이것을 잘 아고 연락이 되니 이 친구한테 가서 도움을 청해보자’ 생각이 당장에 들어서 전화를 합니다. 어딘가 아프기라도 하면 여기저기 용한 의원이나 병원을 수소문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친구를 찾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우선순위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하고, 의지하며, 그 가운데서 친구를 찾고, 의원을 찾고 병원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진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 차서가 바뀌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도 의지하면서 생활에 필요한 것은 스스로 찾아보고 해결해보고자 했던 심보가 과거 이스라엘이 하나님도 섬기면서 바알도 섬기는 신앙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기도
주님 우리의 삶을 볼 때, 죄와 불신앙으로 인해 포도나무 가지로서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진액을 온전히 받지 못하고 있음을 회개합니다. 늘 주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때때로 내 생각과 내 경험을 더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들을 볼 때 회개의 심정이 듭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만 의지하며 순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것을 인정하고 회개하니 받아 주옵소서.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오늘날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임을 알고, 날마다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 묻고 지혜를 구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부디, 도와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