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
지난 시간에는 긍휼에 대해 배웠습니다. 특별히 전도서 12:1-8절 말씀을 통해 이 세상 가운데 어떻게 긍휼의 삶을 실천할 수 있는 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집트의 나일 강이 범람하면 상류에서 쓸려 내려온 퇴적물이 땅을 비옥하게 합니다. 이집트인들은 물이 다 빠지기 전에 씨를 물에 던져둡니다. 그러면 물이 빠지면서 씨가 땅에 접촉하여 발화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이는 비단 이집트뿐만 아니라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끼고 농사를 지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의 발을 그리로 보내는 너희에게 복이 있느니라.”(이사야서 32:20) 이스라엘 사람들도 동일한 방법으로 농사를 지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강변이나 물이 다리의 중간정도 차 있는 곳에 가축들을 데리고 가서 여러 번 밟고 다니면서 땅을 부드럽게 한 후, 그 물 위에 씨를 뿌렸습니다. 그러나 이런 농사법의 약점은 불확실성이 강하다는 사실입니다. 언제 큰 비가 와서 물이 불어나면 애써 뿌려놓은 씨가 다 떠내려가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를 뿌리라고 말합니다. 구름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씨를 뿌리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가 긍휼을 베풀 때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긍휼이 얼마나 유효할까? 내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까? 우리가 이런 생각들에 사로잡히게 되면 긍휼을 실천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불확실할지언정 그 열매를 거두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생각에 머물러있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불확실하게 보이지라도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영적으로나 실제적인 문제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볼 때, 우리가 적극적으로 이런 긍휼의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계산하고 따지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 열매를 거두실 것을 믿고 긍휼의 씨를 뿌리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어야겠습니다.
오늘 말씀
오늘 말씀은 “마음이 순수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요,”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마음의 의미는 무엇이며, 순수하다의 의미는 무엇이며, 하나님을 본다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 후에, 우리 삶에서 하나님을 보고 사는 것은 어떤 삶인지를 적용해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마음이 순수한 자들 (1)
“마음”의 의미
‘마음’이라는 말은 영어로 하트(heart), 그리스말은 카르디아(καρδία), 히브리말로는 레브(לֵב)입니다. 다 같이 일차적으로는 신체 기관인 심장을 표시하는 말입니다. 이 말의 의미가 확장되어서 우리 마음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을 표시하는 말로 쓰였습니다. “열심을 다하여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거기에서 나오느니라.”(잠언 4:23) 성경에는 우리 마음의 여러 가지 작용, 즉 지적이고 감정적이고 의지적인 모든 활동을 마음이라고 합니다. 내 마음이 아프다든지 내 마음이 이렇게 생각했다든지 내 마음이 이것을 하고자 했다든지, 이것을 하고자 결심했다든지 내 마음이 악하다든지 이런 모든 정서적인 것, 의지적인 것 혹은 이지적인 심리의 기능 활동이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늘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라고 할 때에는 무엇을 생각하는 회고의 기능만을 표시하거나 무엇을 느끼는 정서의 활동만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활동의 근원을 마음이라는 말로 표시해서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 ‘내 심정이 이렇다’라고 표현을 합니다.
“순수하다”의 의미
‘순수하다’ 의미는 ‘깨끗하다’의 의미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깨끗함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부에 있음을 가르칩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는 하나님
“{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나 키의 크기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주}는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아니하나니 사람은 겉모습을 보나 {주}는 마음을 보느니라.”(사무엘상 16:7)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께서 우리의 마음의 상태를 다 알고 계십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은 자기의 모든 길에서 안정이 없느니라”(야고보서 1:8) 그런데 우리 마음이 갈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마음이 아니라 내 생각으로 내 경험으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내 인생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 되어 인생을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두 마음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것 같으나 사실은 자신이 그 마음의 주인입니다.
순순한 마음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는 마음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나의 신뢰를 두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에는 불순물, 자신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자신의 인생을 경영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상태입니다. 자신이 이 땅에 왜 왔는지를 알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 목적과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마음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 중심적인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볼 것이요”의 의미
히브리어에서 ‘보다’의 의미는 훨씬 더 구체적으로 가까이 접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보다’의 의미를 욥기를 통해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내 살갗의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할지라도 내가 여전히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 콩팥이 내 속에서 소멸될지라도 내가 직접 그분을 보리니 다른 것이 아니요, 내 눈이 바라보리로다.”(욥기 19:26-27) 욥은 자신이 부활한 후에 하나님을 직접 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육체적인 눈으로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틀린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부활한 몸으로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그때에 {주}께서 회오리바람 속에서 욥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욥기 38:1) 하나님은 38장부터 41장까지 욥의 잘못을 책망하십니다.
“그때에 욥이 {주}께 응답하여 이르되, 주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사오며 어떤 생각도 주께 숨길 수 없음을 내가 아오니 지식도 없이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그런즉 내가 깨닫지 못한 것을 말하였으며 내게는 너무 놀라운 일들 곧 내가 알지 못한 일들을 말하였나이다.”(욥기 42:1-3) 그리고 42장에서 욥이 회개를 합니다.
““내가 귀로 듣는 것을 통해 주께 대하여 들었사오나 이제는 내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기 42:5) 욥은 하나님을 눈으로 본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도로서 거룩한 깨달음의 상태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다 알 수 없었던 신령한 일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더 알게 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더 알게 되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대해 더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계획과 목적을 깨닫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잘못된 생각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삶에서 배우는 자들은 하나님을 보는 자들입니다. 이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성령 안에서 걸어가는 대체할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자들에게는 풍성한 하나님의 계시가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걸어가는 자들에게는 풍성한 영적인 깨달음이 있습니다. 더욱더 하나님을 알게 되고, 성령님만을 의지하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을 현재적으로 보는 자들입니다.
어떻게 마음이 순수하게 되는가?
이제 우리는 마음이 순수한 것은 무엇이며, 그런 사람이 받는 복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순수해질 수 있느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저절로 순수해지지는 않습니다.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된 것이라고 예레미야 17:9절에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제 스스로 순수하게 할 수가 없을뿐더러 되지도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큰 공효는 첫째로 죄에 대한 책임을 우리 대신 짊어지신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깨끗하다’는 의미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교정해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사상으로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기대 같은 것을 거룩한 하나님의 심정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자기 사상을 고쳐 보려고 해도 되지 않습니다. 성령님께서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바른 사상을 넣어 주시고 우리의 그릇된 것을 비춰 주셔야만 합니다. 이는 성령 하나님의 적극적인 역사 위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구원 얻는 자들은 깨끗함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화의 구원입니다. 이 성화의 구원에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깨끗케 하십니다. 거룩하게 하십니다. 구별되게 하십니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나가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거룩하신 속죄의 공효가 그에게 역사해서 구원 얻은 자들에게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거룩히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던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의 의가 얼마나 더러운 옷과 같은 것인지를 보게 하십니다. 그 때에 ‘주여, 나를 깨끗하게 하소서’ 한탄하며 기도할 때에 우리의 삶은 조금씩 깨끗하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태에 조금씩 접촉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다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 성삼위의 충만한 영광을 볼게 될 날이 있습니다. 그 때를 기다리며 날마다 조금씩 땅에서 그 영광을 맛보아야 합니다. 경험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우리의 더러움을 벗고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전진해 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보는 특권을 누리는 자입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마음이 순수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음이 순수하다는 것은 두 마음을 품지 않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갈라지지 않는 마음입니다. 하나님만을 응시하는 마음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이는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얼마나 더럽고 우리의 가치관이 얼마나 하나님의 기준에서 벗어나 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순종할 때, 이 사람은 마음이 순수하며, 하나님을 보는 축복을 누리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삶에 충만하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