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말씀
오늘도 긍휼에 대해서 계속해서 배우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의 긍휼이 어떻게 동물에게 임하였는지를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해 수고하는 동물을 먹일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 홍수 이후로 동물의 고기를 먹게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육신의 건강을 위한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동물의 고기를 우리가 먹도록 허락해 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미와 새끼의 관계를 통해서 긍휼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자비, 불쌍히 여기는 마음, 긍휼은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동물에게까지 긍휼함을 보이셨다면, 인간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땅에 하나님의 긍휼함을 보여야겠습니다. 물질적으로, 영적으로 어려움에 있는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겠습니다.
오늘 말씀
오늘 말씀은 긍휼을 베풀 수 있는 것이 은혜이며, 긍휼을 베풀 수 있을 때 베푸는 것이 지혜로운 삶임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긍휼을 베푸는 자의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긍휼을 베푸는 자들(3)
네 빵을 물들 위에 던지라
이 구절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첫 번째 해석은 이를 무역투자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고대 해상무역에서 이익을 보는 것은 긴 기다림과 인내를 요구합니다. 또한 실패할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들을 극복했을 때, 큰 이익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솔로몬은 해상 무역에 많은 투자를 했고, 이를 통해 막대한 이득을 거두어들였습니다.
이 구절에 대한 다른 해석은 이 구절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긍휼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구절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농사에 대해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 위에 씨를 뿌리는 이스라엘의 농사법
이사야서 32:20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의 발을 그리로 보내는 너희에게 복이 있느니라.”
나일강이나 유프라테스 강에서는 우기에 강이 범람해서 물이 빠지지 않고 어느 정도 차 있는 상태에서 씨를 뿌리면, 물이 빠지면서 씨가 땅에 안착해서 싹을 내고 줄기들이 자라 열매를 맺는 농사법이 발달하였습니다. 이는 비단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있었던 농사법이 아닙니다. 이스라엘도 이런 농사법을 사용하였습니다. 강변에 물이 범람하여 물이 사람의 무릎 정도로 차 있으면 소나 나귀를 몰고 가서 그 곳의 땅을 부드럽게 한 후에 물 위에 씨를 뿌려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씨를 빵이라고 언급함
그런데 이 씨를 여러 곳에서 빵이라고 대체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히브리인들은 씨가 자라서 추수해서 빵으로 되는 모든 과정을 엄두해 두고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욥기 28:5
“땅으로 말하건대 거기서 빵이 나오며 그것은 밑에서 불같이 솟구치는도다.”
이사야 28:28
“빵을 만드는 곡식은 빻나니 이는 그분께서 늘 타작만 하거나 자신의 수레바퀴로 그것을 빻기만 하거나 자신의 기병들로 그것을 빻기만 하지는 아니하실 것이기 때문이라.”
물 위에 씨를 던질 때의 불확실성
그러나 물 위에다 씨를 뿌릴 때에는 거기에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홍수가 난 다음에 물이 빠지면서 홍수로 인해 비옥한 땅으로 변한 땅에 씨가 내려앉아 쉽게 농사를 짓을 수 있는 반면에 씨를 잃어버릴 확률도 높았습니다. 갑자기 큰 비가 내려 다시 홍수가 나면 기왕에 뿌려 둔 씨들이 다 떠내려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뿌려 둔 씨들이 정확하게 던져 둔 곳에 있지 않고 저 멀리 떠내려가서 원하지 않는 곳에 싹을 띄울 경우도 있었습니다.
긍휼을 베풀 때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마라
성경에서 물의 해석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물이 이 세상이라는 말로도 상징적으로 사용됩니다.(요한계시록 17:15) 그러므로 “네 빵을 물들 위에 던지라.” 정리하면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긍휼을 행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긍휼을 베풀 때, 우리의 머리로 계산하면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해타산을 하면 절대 긍휼을 베풀지 못합니다. 손해가 뻔히 보입니다. 자신이 긍휼을 행한다고 해도 상황이 호전될 것 같지 않습니다. 긍휼을 받는 이들의 자세도 겸손하지 않습니다. 대개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주저해지고, 꺼려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럴지라도 씨를 뿌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유일한 기회
“일곱에게 또 여덟에게 몫을 주라. 무슨 재앙이 땅 위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v2)
일곱에게 또 여덟에게 몫을 주는 것은 고대의 잔치를 베푼 사람의 관습이었습니다. 이 관습에 따르면 잔치를 베푼 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떼어 초대한 손님들에게 기꺼이 주었습니다. 다른 것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떼어 주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몫을 주는 것이지 내 힘에 부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해야 할까요? 우리 인간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오늘까지 부자로 살았지만, 언제 가난하게 될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를 욥의 삶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부자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언제 우리의 목숨을 찾으실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를 누가복음 12:16-20절에서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긍휼을 베풀 자리에 있을 때 베풀어야 합니다. 긍휼을 베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베풀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긍휼을 베풀 기회를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아무리 베풀고 싶어도 베풀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계절의 변화무쌍함과 같이 앞날을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떼어 나누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하나님을 믿어라
구름들이 비로 가득하면 땅 위에 쏟아져 스스로를 비우며 나무가 남쪽으로나 북쪽으로나 쓰러지면 그 나무가 쓰러지는 곳에, 거기에 그것이 있으리로다.(v3)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날씨에 대단히 민감합니다. 구름들이 비를 가득 머금고 있으면 이는 필시 큰 비가 올 징조입니다. 나무들이 쓰러질 정도로 큰 바람이 불 때는 씨를 뿌려서는 안 됩니다.
바람을 살피는 자는 씨를 뿌리지 못할 것이요, 구름들을 주목하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로다.(v4)
농부들이 바람을 살펴서 씨를 뿌리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구름들을 보고 씨를 거두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는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이를 탓할 수 없습니다.
영의 길이 무엇인지 또 아이 밴 여자의 태 속에서 뼈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네가 알지 못하는 것 같이 모든 것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일들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v5)
그러나 거기에 빠진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신앙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계산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몇 수, 몇 십수, 몇 백수 앞을 내다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좁은 머리로는 하나님의 섭리를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면 우리의 모든 계획과 계산은 틀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실패라고 생각해도 하나님은 그 실패를 열매로 바꾸시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아 보여도 거기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물에 씨를 던지는 자는 바로 이 믿음으로 던지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긍휼을 베풀 때에 바로 이런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어려움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볼 때 얼마나 우리들의 마음이 너무나 계산적일 때가 맞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에 오염되어 이해타산을 따질 때가 많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긍휼을 베풀 때에 우리가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베풀어야 하는 지를 가르쳐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비록 어리석게 보이고, 손해가 뻔히 보이는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게 주신 몫을 적극적으로 줄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