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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요한일서:2:28~3:3
성경본문내용 2:28. 어린 자녀들아, 이제 그분 안에 거하라. 이것은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지게 하려 함이요, 또 그분께서 오실 때에 우리가 그분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29. 그분께서 의로우신 줄을 너희가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분에게서 난 줄을 아느니라.
3:1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게 하셨는가. 그런즉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2.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되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을 지금 계시는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라.
3. 그분 안에서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분께서 순결하신 것 같이 자기를 순결하게 하느니라.
강설날짜 2026-04-16

그분을 볼 자는 지금 닮아간다

 

들어가며

재림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런데 재림이 오늘 내 삶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얼마나 됩니까? 요한은 그 연결을 끊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2:28부터 3:3까지, 이 짧은 본문이 그 연결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1. 그분 안에 거하라

본문: 2:28–29

"어린 자녀들아, 이제 그분 안에 거하라. 이것은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지게 하려 함이요, 또 그분께서 오실 때에 우리가 그분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2:28)

담대함과 부끄러움

재림의 날, 그분 앞에 서는 방식은 두 가지입니다. 담대함과 부끄러움.

담대함은 법정에서 얼굴을 들고 설 수 있는 상태입니다. 드러남 앞에서 숨길 것이 없는 자의 자세입니다. 부끄러움은 그 반대입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그분과 함께한 삶이 없었던 자가 그분 앞에 섰을 때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분과 함께 살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그날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만들어집니다.

의로운 삶은 자녀 됨의 흔적이다

"그분께서 의로우신 줄을 너희가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분에게서 난 줄을 아느니라." (2:29)

순서가 중요합니다. 의롭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의롭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에게서 났기 때문에 의를 행합니다. 원인과 결과의 방향이 거꾸로 가면 율법주의가 됩니다.

의로운 삶은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자녀 됨의 흔적입니다. 그분 안에 거하는 자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이미 자녀다

본문: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게 하셨는가. 그런즉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3:1)

입양이 아니라 출생

지금, 이미, 자녀입니다. 미래의 약속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통 구원을 입양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가족 밖에 있던 우리가 그분의 자녀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 언어를 씁니다. "너희는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롬 8:15). 법적 신분의 변화입니다. 밖에 있던 자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다른 단어를 고릅니다.

바울이 쓰는 단어는 υἱοθεσία(휘오테시아) — 아들로 삼음, 입양입니다. 요한이 쓰는 단어는 τέκνον(테크논) — 태어난 자녀입니다. 두 단어가 가리키는 것이 다릅니다.

입양은 신분을 바꾸지만 본성은 바꾸지 않습니다. 그런데 출생은 본성을 공유합니다. 요한이 말하는 자녀 됨은 "하나님 가족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것 이상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을 나눠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를 읽을 때 이 눈으로 읽으면 달라집니다. "의를 행하라", "순결하게 하라" — 이것이 외부에서 주어지는 명령이 아니라 자녀의 본성이 드러나는 방식으로 읽힙니다.

세상이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세상이 우리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출처가 이 세상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세상이 그분에게서 난 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세상의 몰이해 앞에서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말해줍니다.

3부. 소망이 삶을 바꾼다

본문: 3:2–3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되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을 지금 계시는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라." (3:2)

아직 다 드러나지 않았다

세 시간이 한 절 안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그 완전한 형태가 무엇인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직 모릅니다. 그런데 이것 하나는 압니다. 그분이 나타나실 때 우리는 그분과 같아질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그분을 있는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직접 보는 것 자체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봄이 닮음을 만듭니다.

진짜 소망은 삶을 바꾼다

"그분 안에서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분께서 순결하신 것 같이 자기를 순결하게 하느니라." (3:3)

소망이 결론이 아닙니다. 소망이 출발점입니다.

그분과 같아질 것을 아는 사람은 지금 그분을 닮아가려 합니다. 미래의 약속이 현재의 삶을 바꿉니다. 진짜 소망은 위로로 끝나지 않습니다.

순결의 기준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께서 순결하신 것 같이." 율법이 기준이 아닙니다. 그분의 순결하심이 기준입니다. 이것은 도달할 수 없는 기준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분에게서 태어난 자녀 안에 이미 그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순결하게 하는 것은 외부의 강요가 아니라 자녀의 본성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나가며

세상이 알아보지 못하는 삶. 그것이 자녀의 삶입니다.

율법이 시켜서가 아니라 본성에서 흘러나오는 의로움. 미래의 약속이 현재를 바꾸는 소망. 그분을 볼 날을 알기 때문에 지금 그분을 닮아가는 삶.

그분은 지금도 순결하십니다. 그분에게서 난 자녀는 그 순결을 향해 지금 나아갑니다.

그분을 볼 자는 지금 닮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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