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웃는 자들이 외면하는 것
들어가며
베드로는 이 서신을 쓰면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합니다.
"기억을 통해 너희의 순수한 생각을 깨우고자 함이라" (v.1)
새로운 가르침이 아닙니다.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거룩한 대언자들이 전한 말씀들, 사도들에게서 받은 명령 — 그것을 다시 기억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다시 기억하게 해야 합니까?
베드로가 보기에 독자들의 생각이 잠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2장에서 고발한 거짓 교사들의 영향 속에서 처음에 받은 것들이 흐릿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흐릿해진 틈을 타고 비웃는 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분께서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모든 것이 창조의 시작 이후에 있던 것 같이 그대로 계속되느니라" (v.4)
이것은 단순한 의심이 아닙니다. 계산된 도전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동일하게 운행되어 왔다는 논리로 주의 날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도전에 답합니다. 그런데 그 답은 새로운 논리가 아닙니다. 베드로는 먼저 이것을 못 박습니다:
"그들은 이 사실을 일부러 알려 하지 아니하느니라" (v.5)
무지가 아닙니다. 의도적 외면입니다. 베드로는 그들이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것들을 하나씩 드러냅니다.
본론 1: 그들이 외면하는 첫 번째 — 역사 (v.5–6)
그들이 외면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창조의 사실입니다. 하늘과 땅은 스스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겨났습니다. 세상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이 "그대로 계속된다"는 그들의 논리는 이 사실 앞에서 이미 무너집니다. 세상은 스스로 운행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붙들려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홍수의 사실입니다. 그 동일한 말씀으로 세상은 이미 한 번 심판받았습니다. 세상은 "그대로 계속"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역사 안에 이미 말씀으로 인한 심판의 선례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그들은 압니다. 그런데 일부러 모르려 합니다.
베드로의 고발은 이것입니다:
그들의 문제는 무지가 아닙니다. 알면서도 외면하는 의도적 무시입니다. 그리고 그 무시는 자기들의 정욕을 따라 걷기 위한 선택입니다.
본론 2: 그들이 외면하는 두 번째 — 하나님의 능력 (v.7)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은 주께서 같은 말씀으로 보관하사 불사르기 위해 예비해 두셨느니라" (v.7)
그들은 현재의 안정을 근거로 말합니다:
"아무 일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것도 의도적 무시입니다.
지금 세상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연법칙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능동적으로 보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불사르기 위해 예비해 두신 상태로.
그들은 이것을 외면합니다. 현재의 안정 뒤에서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려 하지 않습니다.
홍수 이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상은 그대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물은 이미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고발은 이것입니다:
현재의 안정을 보면서 "심판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무지가 아닙니다. 지금도 말씀으로 세상을 붙들고 심판을 향해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입니다.
본론 3: 그들이 외면하는 세 번째 — 하나님의 시간과 성품 (v.8–9)
"[주]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대해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디지 아니하시며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v.8–9)
그들은 시간의 흐름을 근거로 말합니다:
"수백 년이 지났는데 아무 일도 없습니다. 더디다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의도적 무시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무시합니다.
하나님은 시간 안에 계신 분이 아닙니다. 시간을 초월하신 분입니다. 인간의 시계로 하나님을 재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을 인간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알면서도 인간의 시간으로 하나님을 측정하고 조롱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무시합니다.
더딤의 이유는 무능이 아닙니다. 망각이 아닙니다. 오래 참으심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기다리심입니다.
그들은 바로 그 오래 참으심을 조롱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그 시간을 가지고 "오지 않는다"고 비웃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발은 이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무능으로 읽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것입니다.
결론: 그러나 그 날은 온다 (v.10)
"그러나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들이 큰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원소들이 뜨거운 열에 녹으며 땅과 그 안에 있는 일들도 불태워지리라" (v.10)
"그러나"
이 한 단어가 이 단락 전체의 무게를 받아냅니다.
v.9에서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십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모두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그러나.
오래 참으심이 영원한 기다리심은 아닙니다. 오래 참으심에는 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끝이 바로 주의 날입니다.
도둑같이
"밤의 도둑같이 오리니"
첫째, 예고 없이 옵니다.
도둑은 미리 알리지 않습니다. 주의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웃는 자들이 "아직도 오지 않았다"고 말하는 바로 그 순간에 올 수 있습니다.
둘째, 반드시 옵니다.
도둑은 오겠다고 약속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옵니다. 주의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웃는 자들의 조롱과 상관없이 반드시 옵니다.
그 날의 규모
베드로는 그 날의 규모를 선명하게 그립니다.
하늘들이 큰 소리와 함께 사라집니다. 원소들이 뜨거운 열에 녹습니다. 땅과 그 안에 있는 일들도 불태워집니다.
부분적인 변화가 아닙니다. 우주적 해체입니다. 남는 것이 없습니다. 숨겨진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나가며
베드로는 이 단락 전체에서 한 가지를 고발합니다.
그들의 문제는 무지가 아니었습니다. 의도적 외면이었습니다.
역사를 외면했습니다.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홍수로 심판하신 하나님을 일부러 잊으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외면했습니다. 지금도 말씀으로 세상을 붙들고 심판을 향해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시간과 성품을 외면했습니다. 더딤이 오래 참으심이며 그 오래 참으심 안에 모두를 향한 간절한 기다리심이 있음을 알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외면의 끝에 v.10이 있습니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은 모두가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기다리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다리심을 외면하고 조롱으로 답하는 자들에게 주의 날은 예고 없이 옵니다.
베드로가 이 본문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은혜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외면하는 자에게 주의 날은 가장 갑작스럽게 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