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외를 잃은 자들
들어가며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의 실체를 세 가지로 드러냅니다.
비방, 방탕, 탐욕.
이 세 가지는 각각 독립된 죄목이 아닙니다. 하나의 뿌리에서 흘러나오는 세 가지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는 것, 그것이 모든 타락의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자는 입도 제어되지 않습니다. 몸도 제어되지 않습니다. 마음도 제어되지 않습니다.
그 삶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향한 경멸로 채워집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보여주기 위해 천사장 미카엘을 등장시킵니다. 그리고 가장 강한 천사와 거짓 교사들을 나란히 세웁니다.
첫 번째 | 천사도 삼가는 비방 (10b-12절)
"더 큰 권능과 힘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대적하여 욕설로 비난하지 아니하느니라." — 베드로후서 2:11
유다서 9절을 보면 천사장 미카엘이 마귀와 모세의 시체를 놓고 다툴 때 이렇게만 말합니다.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우주에서 가장 강한 천사가 가장 강한 원수 앞에서 심판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심판의 자리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 자리를 내가 차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은 어떻습니까?
베드로는 그들을 이성이 없는 짐승 에 비유합니다. 깨닫지도 못하는 것들을 비방합니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분별하지 않습니다. 본능이 말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자는 심판의 자리를 스스로 차지합니다. 비방은 바로 그 자리에서 나오는 언어입니다.
입이 먼저 무너집니다. 그러면 몸이 따라 무너집니다.
두 번째 | 거룩한 자리를 더럽히는 방탕 (13-14절)
"대낮에 방탕하는 것을 낙으로 여기므로 불의의 대가를 받으리라. 그들이 너희와 함께 잔치를 할 때에 자기들의 속임수로 즐기니 점과 흠이요." — 베드로후서 2:13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삼갑니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외를 잃은 자는 대낮에 방탕합니다. 숨기려 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장소입니다.
"너희와 함께 잔치를 할 때에."
애찬 자리입니다. 성도들과 함께 앉은 교회의 식탁입니다.
애찬은 거룩한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방탕하는 것은 단순한 부도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향한 경멸입니다.
속임수로 즐기며 공동체의 거룩함을 안에서 무너뜨립니다.
밖에서 오는 위험이 아닙니다. 안에서 함께 먹고 있는 위험입니다.
14절은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음욕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죄를 그칠 줄 모르며 불안정한 혼들을 속이니."
눈이 이미 무너졌고, 죄가 멈추지 않으며, 연약한 자들을 표적으로 삼습니다.
몸이 무너지면 마음이 따라 굳어집니다.
세 번째 | 하나님보다 더 원하는 것 (15-17절)
몸이 무너진 자리에서 마음은 서서히 굳어갑니다. 그 다음 단계가 발람입니다.
"그들이 바른 길을 저버리고 보솔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며 길을 잃었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였으나." — 베드로후서 2:15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선지자였습니다. 바른 길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발락의 돈 앞에서 흔들렸고 알면서도 그 길을 저버렸습니다.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보다 불의의 삯이 더 달콤하게 보였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원하는 것이 생긴 순간, 하나님의 권위는 그 자리를 잃습니다. 탐욕은 권위 전복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그 결과가 16절에 나옵니다.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음성으로 말하여 그 대언자의 미친 것을 막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할 자가 나귀보다 못한 자리에 섰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긴 자의 끝입니다.
14절의 말씀이 이것을 이미 예고했습니다.
"탐내는 습관으로 마음을 단련시킨 자들."
한 번의 선택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탐욕으로 마음을 단련시킨 결과입니다.
입이 무너지고, 몸이 따라 무너지고, 마음이 완전히 굳어집니다.
탐욕으로 마음을 단련시킨 자의 끝을 베드로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이들은 물 없는 샘이요 폭풍에 밀려다니는 구름이라." — 베드로후서 2:17
약속은 있으나 속은 비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교사이지만 하나님의 거룩함을 경멸한 자리에 남는 것은 껍데기뿐입니다.
경외를 잃는 것은 한순간이 아닙니다. 습관이 만들어가는 방향입니다.
나가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옵니다.
미카엘은 알았습니다. 심판의 자리는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가장 강한 원수 앞에서도 그 자리를 차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경외입니다.
경외가 살아있는 자는 함부로 비방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자리를 더럽히지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원하는 것을 마음에 들이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이 본문에서 독자에게 주려는 것은 거짓 교사들에 대한 정죄가 아닙니다.
경외가 살아있는가, 아니면 잃어가고 있는가.
이 질문입니다.
경외를 잃는 것은 한순간이 아닙니다. 비방하는 습관, 거룩함을 가볍게 여기는 습관, 탐욕으로 마음을 단련시키는 습관 — 이것들이 쌓여 경외를 지워갑니다.
그리고 그 반대도 사실입니다.
경외는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한순간이 아니라, 습관이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