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가까이 왔으니
베드로는 선언합니다. "모든 것의 끝이 가까이 왔으니." 이 한 문장이 7-11절 전체의 출발점입니다. 종말이 가까웠다는 것은 공포의 선언이 아닙니다. 고난 중에 있는 공동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기준점입니다. 끝이 가까이 왔을 때, 신자의 의무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공동체를 향합니다. 고난은 공동체를 무너뜨리려 합니다. 베드로는 그 고난 한가운데서 공동체를 지키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공동체를 향한 세 가지 의무
7-9절은 고난 중에 공동체를 지키는 세 가지 실천을 제시합니다.
첫째,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라입니다. "정신을 차리고"로 번역된 소프로네사테(σωφρονήσατε)는 절제와 균형 잡힌 정신 상태를, "깨어"로 번역된 넵사테(νήψατε)는 영적으로 깨어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고난 중에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나 공동체를 향한 모든 의무는 하나님 앞에 맑은 정신으로 서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기도 없이 공동체를 향한 의무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둘째, 뜨겁게 사랑하라입니다. "뜨겁게"로 번역된 에크테네(ἐκτενῆ)는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진 상태, 즉 최대한 뻗어있는 긴장감 있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으리라"는 잠언 10장 12절의 인용으로, 사랑이 관계 안에서 허물을 용납하고 공동체를 유지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고난 중에 공동체가 가장 쉽게 무너지는 것은 서로의 허물을 용납하지 못할 때입니다. 에크테네한 사랑이 고난 중에도 공동체를 붙들어 줍니다.
셋째, 불평 없이 서로 대접하라입니다. "대접하라"로 번역된 필록세노이(φιλόξενοι)는 필로스(φίλος, 사랑)와 크세노스(ξένος, 낯선 자)의 합성어로, 나그네를 사랑하는 환대입니다. 당시 박해를 피해 이동하는 신자들과 순회 사역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 환대의 직접적인 정황입니다. 고난 중에 자기 것을 내어주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어려운 상황에서 불평 없이 문을 여는 것이 공동체를 향한 의무입니다.
받은 대로 섬기라 — 은사의 두 범주
10-11절은 은사의 사용을 다룹니다. "각 사람이 선물을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서로 그 선물을 써서 섬기라." 여기서 "선물"로 번역된 카리스마(χάρισμα)는 은혜로 주어진 선물이고, "청지기"로 번역된 오이코노모이(οἰκονόμοι)는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자입니다. 은사는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맡아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모든 은사를 두 범주로 묶습니다. 말하는 은사와 섬기는 은사입니다. 직접적인 정황으로는 9절의 환대와 연결됩니다. 순회 사역자가 말씀을 전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처럼 하고, 그를 받아들이고 섬기는 공동체 구성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것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원칙으로 확장합니다. 교회 안의 모든 은사는 결국 말씀으로 세우는 것과 섬김으로 돌보는 것, 이 두 범주 중 하나에 속합니다. 바울도 로마서 12장에서 같은 방식으로 은사를 분류합니다. 네가 어떤 은사를 받았든, 그것이 말씀 사역이든 섬김 사역이든,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11절은 이 모든 것의 목적을 하나로 수렴합니다. "이것은 모든 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니." 기도도, 사랑도, 환대도, 은사의 사용도 —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향합니다.
끝이 가까이 왔을 때 신자의 의무는 공동체를 향합니다. 고난은 공동체를 흩으려 하지만, 맑은 정신으로 기도하고, 에크테네하게 사랑하고, 불평 없이 문을 열고, 받은 카리스마를 오이코노모이로서 사용하는 자들이 있는 한 공동체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향할 때, 고난 중의 공동체는 세상이 설명할 수 없는 빛이 됩니다.
나에게 묻는 질문
나는 지금 소프로네사테, 고난에 압도되지 않고 맑은 정신으로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나의 사랑은 에크테네, 공동체의 허물을 끝까지 감당하는 사랑입니까? 나는 받은 카리스마를 오이코노모이로서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것처럼 쌓아두고 있습니까? 지금 나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