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목적 — 베드로전서 4장 1-6절 묵상
고난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베드로가 이 본문에서 말하는 고난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죄에서 떠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원형이라면, 그 원형은 우리의 삶의 방향 자체를 바꾸어야 합니다.
같은 생각으로 무장하라
1절은 강한 군사적 언어로 시작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하셨은즉 그와 같이 너희도 같은 생각으로 무장하라." 여기서 "무장하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호플리사스테(ὁπλίσασθε)입니다. 병사가 전투에 앞서 완전 무장하는 것을 가리키는 명령형입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닥치는 불행이 아니라 우리가 준비해야 할 전투입니다.
무장의 내용은 "같은 생각"입니다. 그리스어로 엔노이아(ἔννοια), 즉 마음의 방향, 내면의 지향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자세로 — 그 마음을 우리의 것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고난은 방향을 바꿉니다
1절 후반부가 핵심입니다.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한 자는 이미 죄를 그쳤나니." 고난이 죄와의 단절을 가져온다는 선언입니다. 이것은 고난 자체가 죄를 씻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원형 안에서 고난을 받아들이는 자는 더 이상 죄의 정욕을 따라 살지 않겠다는 결단에 이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2절이 이것을 확인합니다. "자기 육체의 남은 때를 더 이상 사람들의 정욕대로 살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리라." 고난은 삶의 방향을 바꿉니다. 정욕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의 전환입니다. 이것이 고난의 목적입니다.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3절은 과거를 직시합니다. "색욕과 정욕과 과음과 환락과 연회와 가증한 우상 숭배 속에서 걸어 이방인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행한 것이 우리 삶의 지나간 때로 우리에게 족하도다." 이것은 과거에 대한 자기 고발이자 단호한 결별 선언입니다. 그 삶이 "족하다"는 것은 더 이상 그 길로 돌아갈 이유가 없다는 선언입니다. 고난을 통해 방향이 바뀐 사람은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비방하는 자들과 심판자
4-5절은 현실적인 긴장을 보여줍니다. 방향이 바뀐 사람에게 세상은 이상하게 여기며 비방합니다. 함께 달리던 사람이 멈추면 나머지는 불편해집니다. 그 불편함이 비방으로 표출됩니다.
그러나 5절은 분명히 말합니다. "그들은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할 준비가 되신 분에게 회계 보고를 하리라." 여기서 "회계 보고"로 번역된 로곤 아포도소우신(λόγον ἀποδώσουσιν)은 자신의 모든 행위에 대해 낱낱이 답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비방하는 자들도 결국 심판자 앞에 서게 됩니다. 세상의 비방은 최종적인 말이 아닙니다.
죽어간 자들도 헛되지 않습니다
5절에서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언급하자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고난을 감수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이미 죽어간 신자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의 고난은 헛된 것이었습니까?
6절이 바로 이 질문에 답합니다. "이런 까닭에 죽어 있는 자들에게도 복음이 선포되었나니 이것은 그들이 육신으로는 사람들을 따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살게 하려"로 번역된 조신(ζῷσιν)은 현재 가정법입니다. 가정법은 목적과 의도를 담습니다. 복음이 선포된 것은 그들이 영으로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는 선언입니다.
육신으로는 죽음의 심판을 받았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삽니다. 고난을 감수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 죽어간 자들의 삶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죽음보다 강하고, 심판이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살아서 고난받고 있는 우리가 담대하게 선을 행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에게 묻는 질문
나는 지금 호플리사스테, 완전 무장한 상태입니까? 그리스도의 엔노이아, 그분의 마음으로 고난을 대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나의 삶의 방향은 정욕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입니까? 고난을 감수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 죽어간 자들이 헛되지 않았다면, 지금 나의 고난은 어떻게 보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