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받은 자에서 복이 되는 자로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베드로전서 3:9)
베드로는 네 가지 표지를 말한 직후 이 급진적인 명령을 내립니다. 마음이 상할 때, 악한 대우를 받을 때, 욕을 들을 때 — 갚지 말고 오히려 복을 빌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를 창세기 12장에서 발견합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창세기 12:2~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복을 주리라"가 아닙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복은 아브라함 안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 자신이 복이 되었습니다. 복의 수령자가 복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복의 저수지가 아니라 복의 강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브라함의 자녀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라디아서 3:29)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복의 언약은 우리에게까지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복의 통로가 되라는 부르심도 우리에게 이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죄 용서, 하나님과의 화해, 영생 — 이것이 우리가 받은 복입니다. 그런데 이 복은 우리 안에 머물도록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처럼, 우리를 통해 세상으로 흘러가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마음이 상할 때 축복하는 것은 단순한 도덕적 관용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처럼 복의 통로로 부름받은 사람이 그 부르심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상하게 한 사람에게도 복을 비는 것은, 내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 내가 누구로 부름받았는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복을 받았기 때문에 복을 빕니다. 용서받았기 때문에 용서합니다. 자비를 입었기 때문에 자비를 베풉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