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5가지 주제로 본 하나님 (24-25절)
1) 우리를 보호하시는 분 (능히 보호하사)
- 유다서 내내 성도들은 거짓 교사들의 미혹과 영적 공격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과연 내가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 유다는 하나님을 '능력의 하나님'으로 소개합니다. 우리의 보호는 나의 의지나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그분은 어떤 이단이나 유혹보다 강하시며, 우리를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완벽하게 방어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2) 우리를 넘어지지 않게 하시는 분 (거침이 없게 하시고)
- "거침이 없게"는 '비틀거리지 않는 말(horse)'이나 '확실한 발걸음'을 묘사할 때 쓰입니다. 험한 산길에서도 발을 헛디디지 않게 잡아주신다는 뜻입니다.
- 1번이 외부의 공격을 막는 것이라면, 이것은 내부의 연약함을 붙드시는 은혜입니다.
-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서 있으려 하면 넘어질 수밖에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구원의 길에서 이탈하여 완전히 타락(배도)하지 않도록 끝까지 붙드십니다(성도의 견인).
3) 자신의 영광 앞에 우리를 제시하는 분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 "흠이 없이"는 구약 제사에서 바쳐지는 완벽한 제물을 뜻하며, '서다'는 재판장 앞에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 앞에 서는 것은 본래 '공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씻기사, 마지막 심판 날에 우리를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존귀한 자'로 변화시켜 당신의 보좌 앞에 세우십니다.
- 그렇기에 그날은 심판의 두려움이 아닌, "넘치는 기쁨"의 날이 됩니다.
4)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
- 홀로(Only), 지혜(Wise) 배경: 당시 거짓 교사들(영지주의적 경향)은 자신들만 아는 '신비한 지식'이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 유다는 선언합니다. "참된 지혜는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 인간의 얄팍한 꾀나 세상 철학이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계획만이 유일하고 완전한 지혜입니다. 이 하나님을 붙들 때 성도는 거짓 지식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5) 구원자 하나님
- 구원자(Saviour) 의미: 이 모든 보호와 양육, 그리고 영광스러운 결말의 근거는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중보자: 25절은 이 구원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짐을 명시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구원을 이루어가고 계시며, 장차 완성하실 것입니다.
II. 유다의 기도의 의도
1) 두려움이 아닌 '확신'
- 유다서 앞부분(1-23절)은 거짓 교사들의 타락, 심판, 지옥의 불 등에 대한 무시무시한 경고로 가득 차 있습니다. 편지를 읽는 성도들은 자칫 "나도 저들처럼 멸망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에 휩싸일 수 있었습니다. 유다는 마지막 순간에 구원의 주체가 '나'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임을 선포함으로써, 성도들에게 구원의 확신과 평안을 주려 했습니다.
2) 시선의 전환
- 거짓 교사들과 싸우느라 지친 성도들의 눈을 땅의 문제에서 하늘의 보좌로 돌리게 합니다.
- 거짓 교사들의 거짓 지식 ↔ 하나님의 홀로 한 분인 지혜
- 세상의 타락과 넘어짐 ↔ 하나님의 넘어지지 않게 하시는 능력
- 눈앞의 혼란 ↔ 영원한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
3) 최후 승리의 선포
- 지금은 교회가 공격받고 약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는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변함이 없음을 선포합니다.
- 이는 악한 자들이 아무리 날뛰어도 결국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으며, 성도는 반드시 승리하여 기쁨으로 그분 앞에 서게 될 것임을 확증하는 승리의 선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