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교회 안에서 우리는 종종 이렇게 묻습니다.
“거룩해지는 것은 누구의 책임입니까?”
어떤 때에는
“우리가 더 결단하고 더 순종해야 합니다”라는 말이 들리고,
또 어떤 때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살아갑니다”라는 말이 들립니다.
이 두 말은 모두 성경적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만일 거룩함이 전적으로 우리의 책임이라면,
신앙은 결국 부담과 실패의 반복이 됩니다.
반대로 거룩함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책임이라면,
순종은 쉽게 뒤로 밀려나게 됩니다.
바울은 이 긴장을 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같은 편지 안에서
성화를 ‘부르심’으로 말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사역’으로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를 통해
성화가 명령인지 선물인지,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지 하나님께 있는지라는 질문을 피해 가지 않고,
바울이 의도한 깊이 안으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그 안에서 바울이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지,
그리고 이 긴장이 어떻게 신앙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을 성숙하게 하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본론
1. 바울은 성화를 분명히 “부르심”으로 말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또한 4장 7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성화는 선택 가능한 이상이 아니라,
분명한 부르심이며 삶으로 살아내야 할 방향입니다.
바울은 매우 구체적으로 요구합니다.
음란을 멀리하라고 말합니다.
각 사람이 자기 몸을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다루라고 말합니다.
형제를 해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 모든 명령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이 실제적인 순종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에게서 성화는
분명히 우리의 책임을 포함합니다.
2. 바울은 성화를 “하나님의 사역”으로 기도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24절)
그런데 바울은 편지의 끝에서
명령을 더하지 않고 기도로 나아갑니다.
“평강의 바로 그 하나님께서
너희를 온전하게 거룩히 구별하시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분은 신실하시니
그분께서 또한 그것을 행하시리라.”
여기서 성화는 더 이상 요구의 형태가 아닙니다.
축도이며 약속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해 선포됩니다.
바울은 말하지 않습니다.
“너희가 충분히 잘하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는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행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성화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이기도 합니다.
3.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 바울이 의도한 구조입니다
바울은 성화를
인간의 책임과 하나님의 사역 중 하나로 선택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는 두 진술을 긴장 속에 함께 둡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함으로 부르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부르심을 끝까지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동시에 우리는
그 거룩함 안에서 합당하게 살아갈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화를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화를 외면하며 살도록 부름받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성화를 이루시는 분이시고,
우리는 그 성화 안에서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4. 그래서 책임은 이렇게 나뉩니다
거룩함을 시작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거룩함을 완성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거룩함 안에서 살아갈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불순종의 책임 또한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렇기에
성화의 실패를 하나님께 돌릴 수 없고,
성화의 열매를 우리가 자랑할 수도 없습니다.
이 균형이 무너지면
신앙은 율법주의나 방종 중 하나로 기울게 됩니다.
5. 왜 바울은 명령이 아니라 기도로 끝내는가
바울은 앞부분에서 분명히 명령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서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명령만으로는 사람이 거룩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만 말하면 사람은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명령으로 우리의 책임을 깨우고,
기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확정합니다.
이것이 바울의 목회적 지혜이며,
성화를 다루는 방식입니다.
결론
데살로니가전서를 통해 우리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 앞에 서게 됩니다.
성화는 단순한 교리도 아니고, 이상적인 목표도 아닙니다.
성화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삶의 방식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 가시는 사역입니다.
바울은 성화를
우리의 책임으로만 말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사역으로만 축소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우리에게는 분명히 순종을 요구하면서도,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맡깁니다.
그러므로 성화의 길에서
우리는 두 가지 극단을 모두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는 스스로 거룩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하시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방관입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길은 이 둘 사이가 아닙니다.
이 둘을 동시에 붙드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거룩함에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누가 더 책임지는가?”가 아니라,
“이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입니다.
성령을 억누르지 말고,
말씀 앞에서 자신을 열며,
분별된 만큼 즉시 순종할 때,
평강의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와 교회를 온전하게 거룩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우리를 데려가고자 했던 자리이며,
데살로니가전서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복음의 요청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