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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웨스트민스터대교리문답Q1
성경본문내용 문1 사람의 첫째 되고 가장 고귀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답 사람의 첫째 되고 가장 고귀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1), 그분을 영원토록 온전히 즐거워하는 것입니다(2).
(1)롬11:36; 고전10:31 (2)시73:24-26; 요17:22,24.
강설날짜 2025-12-08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문 1. 사람의 첫째 되고 가장 고귀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답. 사람의 첫째 되고 가장 고귀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온전히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롬 11:36; 고전 10:31 / 시 73:24-26; 요 17:22, 24)


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까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 로마서 11:36

모든 것의 시작이 하나님이시고, 모든 것의 과정이 하나님 안에 있으며, 모든 것의 종착점이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의 삶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외부에서 부과된 의무가 아닙니다. 만물의 근원이신 분께 마땅히 드려야 할 당연한 응답입니다.

악기가 연주자의 손에서 울려 퍼질 때 비로소 그 목적을 다하듯, 인간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때 비로소 존재의 목적을 다합니다. 하나님이 그 목적을 우리 안에 심어두셨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을 벗어날 때 찾아오는 공허함은 우리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까

이 영광은 예배당 안에서만 드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 고린도전서 10:31

먹는 것, 일하는 것, 쉬는 것 — 평범한 하루 전체가 하나님을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특별한 순간만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의 작은 결정들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직장에서 정직하게 일하는 것, 가정에서 온유하게 말하는 것, 지치고 힘든 날에도 감사를 선택하는 것 —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이렇게 그분의 목적대로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삶

이 즐거움은 순간의 감정이 아닙니다. 방향이 하나님께 고정된 상태입니다.

세상의 즐거움에는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성취의 기쁨은 식고, 관계의 행복은 흔들리고, 건강의 즐거움은 쇠약해집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붙잡는 것들은 예외 없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의 즐거움은 시간이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이 즐거움은 이 땅에서 시작되어 죽음 이후에도 끊기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 요한복음 17:24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보고 누리는 것 — 이것이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상태입니다. 감정적 흥분이 아닙니다. 영혼의 궁극적 갈망이 완전히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 즐거움은 이 땅의 끝에서 멈추지 않고 영원 속으로 이어집니다.


온전히 즐거워하는 삶

하나님을 온전히 즐거워하는 삶은 하나님이 충분하다는 것을 아는 삶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것을 먼저 살아낸 사람이었습니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 시편 73:26

그는 몸도 무너지고 마음도 흔들리는 자리에서 이 고백을 했습니다. 즐거움의 근거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흔들릴 때에도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그분 안에 뿌리내린 즐거움은 폭풍 속에서도 꺾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즐거워하는 삶은 더 많은 것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이미 충분하다는 깊은 만족을 가진 삶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했습니다. "주님, 우리는 주님 안에서 쉬기까지 우리의 마음이 쉬지 못합니다." 이 고백은 단순한 종교적 감상이 아닙니다. 오랜 방황 끝에 참된 안식을 발견한 사람의 진술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즐거워하는 삶은 일상이 예배가 되는 삶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 일하고 쉬는 것, 관계를 맺고 사랑하는 것 —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방식이 될 때, 삶 전체가 예배로 변합니다.


두 목적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의무처럼 들립니다.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은 복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 둘은 결코 분리되지 않습니다.

억지로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쁨으로 그분을 향할 때 — 그 기쁨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을 가장 크게 즐거워할 때, 우리는 그분을 가장 크게 영화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율법주의적 삶의 방식도, 자기중심적 행복 추구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쁨의 원천이심을 발견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방향입니다. 꽃이 태양을 향해 돌아서듯, 하나님을 알게 된 영혼은 그분께로 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무와 즐거움이 하나가 되는 그 자리 — 그것이 인간이 창조된 목적입니다.

대교리문답은 이 질문을 첫 번째로 놓았습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이 답을 모르고서는 나머지 모든 것이 방향을 잃기 때문입니다. 삶의 첫 번째 질문에 바른 답을 가진 사람은, 어떤 자리에서도 길을 잃지 않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지금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성공, 행복, 인정 — 이것들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삶의 제일 목적이 될 때, 반드시 공허함이 따라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어떤 자리에 있든지 — 일터에서, 가정에서, 홀로 있는 방에서 — 하나님을 드러내고 그분 안에서 만족하십시오. 거창한 결단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지금 이 순간, 그분께로 방향을 돌리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사람의 첫째 되고 가장 고귀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온전히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 목적 안에서 사는 삶이 가장 충만한 삶입니다. 그리고 그 삶은, 오늘 이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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