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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크리스마스를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이사야서에서 예수님에 관한 대언의 말씀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이사야 9장의 대언의 말씀을 배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온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가 한 아기로 이 땅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한 아기는 왕으로서 세상을 영원히 다스릴 것입니다. 이사야 9장은 왕의 사역에 대해 우리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특별히, 왕의 앞에 붙는 수식어 표현들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우리에게 어떤 유익과 소망이 되는 지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한 아기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1. 어둠 속에 다니던 백성 그러할지라도 그 흑암은 그 땅이 괴로움을 당하던 때의 흑암과 같지 아니하리니 그때에는 그분께서 처음에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을 가볍게 괴롭히시고 나중에 요르단 건너편 바닷길 옆 민족들이 거하는 갈릴리에 있는 그 땅을 더욱 심하게 괴롭히셨느니라(1)
이사야 8:19~22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부리는 영들을 지닌 자들과 슬쩍 엿보고 중얼거리는 마술사들에게 구하라, 할 때에 백성이 마땅히 자기들의 [하나님]께 구하여야 하지 아니하겠느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그들이 율법과 증언에게 구할지니 만일 그들이 이 말씀에 따라 말하지 아니하면 그 까닭은 그들 안에 빛이 없기 때문이니라. 그들이 심히 괴로운 처지에 놓여 굶주린 채로 이 땅을 지나가리라. 그들이 굶주릴 때에 스스로 초조해하며 자기들의 왕과 자기들의 [하나님]을 저주하고 또 위를 쳐다보며 땅을 바라볼 것이로되, 보라, 근심과 어둠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라. 그들이 어둠으로 쫓겨나리라.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의 백성만이 하나님을 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스불론과 납달리 땅은 이스라엘 전체의 죄, 유대 백성의 전체의 죄를 대표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영을 부리는 자들과 마술사를 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굶주림의 징계가 임하였음에도 오히려 하나님을 저주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 어둠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백성의 삶이 사망의 그늘진 곳에 거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고통과 절망이 있습니다. 그 어떤 희망도 없습니다. 스스로 그들의 운명을 바꿀 그 어떤 능력도 없습니다. 이들은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는 자들 이들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도울 힘도 없습니다. 이들은 살아 있지만 죽은 자들입니다.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2. 큰 빛을 보게 될 백성 고통과 절망 속에 살던 이들이 큰 빛이 임할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미 보았다고 말합니다. 예언적 과거시제입니다. 미래의 일이지만, 분명하게 일어날 사실이기에 과거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큰 빛으로 인해 그들의 삶은 변화될 것입니다.
주께서 민족을 번성하게 하시되 기쁨을 더하지는 아니하셨으나 그들이 수확 때에 기뻐하며 사람들이 노략한 물건을 나눌 때에 기뻐하는 것 같이 주 앞에서 기뻐하오니(3) 번영이 큰 기쁨과 함께 옵니다. 수확물을 거두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노략한 물건을 나누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그들에게 먹고 입을 것이 풍족하기 때문입니다. 이 번영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줍니다.
주께서 미디안의 날에 행하신 것 같이 그의 짐을 멘 멍에와 그의 어깨의 지팡이와 그를 학대하는 자의 막대기를 꺾으셨나이다.(4) 이스라엘 역사에서 기드온 300 용사가 미디안을 격퇴한 것만큼 드라마틱한 전쟁은 없습니다. 미디안은 이스라엘 압제의 상징입니다. 이들의 삶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집니다.
용사의 모든 싸움에는 어지러운 소리와 피에 젖은 옷이 있으나 이 싸움에는 불을 지피는 땔감과 불사르는 일이 있으리라. (5) 번영과 자유에 함께 평화가 주어집니다. 더 이상 전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전쟁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무기가 필요가 없어서 무기들을 태워 땔감으로 쓰게 됩니다.
3.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할 한 아기의 탄생과 그의 사역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번영과 자유와 평화는 한 아기의 탄생으로 가능합니다. 모든 굶주림과 억압과 전쟁의 공포에서 건져 줄 유일한 소망은 한 아기의 탄생입니다. 메시아,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탄생만이 유일한 구원의 소망입니다. 이 아이는 다윗의 계통을 따라오셔서 당신의 백성을 다스릴 왕이십니다. 그의 어깨에는 정권이 놓이고 (6a) 그의 정권과 화평이 번창하여 끝이 없으며 그가 다윗의 왕좌와 그의 왕국 위에 군림하여(7a)
왕 앞에 붙는 수식어들 고대 중동 지역의 왕들은 자신의 통치 철학을 표현하기 여러 수식어들을 왕이란 단어 앞에 두었습니다. 이 수식어는 지명이나, 사물, 혹은 도덕적인 단어였습니다. 왕으로 오실 한 아기에게도 수식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이], [조언자], 강하신 [하나님], 영존하는 [아버지], [평화의 통치자]라 할 것이기 때문이라. (6b)
“놀라운 이”, “조언자”: 주권적 통치 “놀라운” 영어로 ‘wonderful’입니다. 이는 우리가 아는 상식적인 수준의 단어가 아닙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상식을 뛰어넘는’, ‘초월한’, ‘경이로운’입니다. 창세기 18:14 {주}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느냐? 생명의 때를 따라 내가 정한 때에 네게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한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시편 139:1~6 (악장에게 준 다윗의 시) 오 {주}여, 주께서 나를 살피시고 나를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서는 것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이해하시오며 나의 행로와 나의 눕는 것을 둘러싸시므로 나의 모든 길을 익히 아시오니 보소서, 오 {주}여, 내 혀의 말 중에 주께서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나이다. 주께서 나를 앞뒤로 에워싸시고 주의 손을 내 위에 얹으셨나이다. 이런 지식이 내게 너무 놀라우며 높아서 내가 능히 그것에 미치지 못하나이다. "놀라운"이라는 단어는 인간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적과 관련된 일에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고백에 사용되었습니다.
“조언자”는 지혜로 다스리는 자입니다. 왕으로 오실 한 아기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분이십니다.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이 왕께서 지혜로 다스리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께서 우리를 지혜와 능력으로 통치하십니다. 당신의 주권으로 이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에베소서 1:5 곧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 전에 그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며
한 아기로 오시는 이는 왕이십니다. 이 왕의 수식어가 강하신 하나님, “the mighty God”입니다. 정관사 ‘the’가 붙어있는 ‘God’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이 땅에 오신 한 아기는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1~3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그분께서 처음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만들어진 것 중에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더라.
예수님의 이름은 Son입니다.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이 Son이 아니라 Father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Father의 이미지를 나타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본 자는 이 땅에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행하심을 통해 추측해 알 수가 있습니다. 더욱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을 통해, 성부 하나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8 어느 때나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으되 [아버지] 품속에 계신 독생자께서 그분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
통치자는 다스리는 자입니다. 평화로 다스리는 자입니다. 이 땅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나라마다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기들을 만듭니다.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분쟁과 전쟁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시에는 세계의 모든 백성들에게 평화가 임합니다. 이 평화는 예수님의 재림 시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심지어 이 땅의 모든 양육강식의 동물의 세계에도 평화가 임합니다. 아담의 범죄로 저주 받은 땅들이 구속을 얻게 됩니다.
그의 정권과 화평이 번창하여 끝이 없으며 그가 다윗의 왕좌와 그의 왕국 위에 군림하여 그것을 정비하고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공의와 정의로 그것을 굳게 세우리라. 만군의 {주}의 열심이 이것을 이루리라.(7)
이 단어는 공식적인 수식어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치의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세상의 영원한 왕국은 없었습니다. 저마다 흥망성쇠를 거듭할 뿐입니다. 그러나 한 아기로 오신 왕께서 통치할 왕국은 영원한 왕국입니다. 초림의 예수님은 겸손한 왕이었습니다. 재림의 예수님은 능력의 왕이십니다. 이 왕께서 영원히 공의와 정의로 그 백성을 다스려 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한 아기의 탄생에 대해 배웠습니다. 왕으로 그 백성을 다스려 주실 한 아기의 탄생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 분은 놀라운 능력과 지혜를 가진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한 아기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자유와 평안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영원히 공의와 정의로 다스려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한 아기의 탄생이 오늘 우리에게 큰 기쁨이요, 소망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