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하신 배경
탐욕스런 바리새인들도 이 모든 것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거늘(14)
“탐욕”이라는 단어는 ‘돈을 사랑하는’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너희 자신을 의롭게 만드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들 가운데서 높게 평가받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니라.(15)
바리새인들은 사람들 앞에서 신앙 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앙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중심을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외형적인 신앙 생활을 추구하는 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외형적인 신앙 생활을 싫어하십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외형적인 신앙 생활을 추구하는 것의 재앙적인 결말을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죽은 후에 잠시 머무는 장소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그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안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결코 바뀌지 않는 두 운명
1. 어떤 부자는 누구인가?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지내더라.
어떤 부자는 실명이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힌트는 그가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지냈다는 사실입니다.
1) 자주색 옷
- 자주색 염료
자주색 염료는 '뿔고둥'으로 불리는 달팽이의 하부기관지선에서 극히 소량 얻을 수 있었는데 그나마 두로가 위치한 지중해 해변에서만 잡을 수 있었다. 50제곱센티미터의 천을 자주색으로 염색하려면 1만 마리의 뿔고둥을 잡아야 했던 만큼 자색 옷감은 귀했다.... 성서시대에 전체를 자주색으로 염색한 겉옷은 오늘날 화폐 단위로 1억 원가량의 가치가 있었다] 출처: 열린다 성경. 류모세
- 아마포 옷
제사장은 아마포 속옷 위에 소매 없는 푸른색 겉옷을 입고, 그 위에 에봇을 입었습니다(출 29:5)
- 아버지 아브라함이여,(24)
- 아브라함이 이르되, 아들아,(25)
자주색 옷은 아주 비싼 옷입니다.
부와 권위를 상징합니다.
로마의 점령자들이나 로마 세력에 결탁해 부를 축적한 유대인들일 것입니다.
이 부자가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부른 것과 아브라함이 “아들아” 부른 것을 볼 때 유대인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대제사장은 아마포 속옷 위에 자색의 겉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부자는 대제사장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2) 실명을 거명하지 않는 이유
우리는 ‘푸른 기와 집의 그 분’이라고 하면, 어떤 분을 특정하는지 잘 압니다.
‘하얀 집의 그 분’이라고 하면, 어떤 나라의 누구를 지칭하는지 잘 압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자주색 옷과 아마포 옷을 입고 화려하게 사는 부자라고 하면 어떤 사람을 특정하는 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편할 수 있습니다.
2. 다른 믿음, 다른 처지
1) 어떤 부자의 믿음
우리는 앞서 어떤 부자는 누구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여러 단서들을 종합해 볼 때, 그는 유대인의 대제자사장 혹은 제사장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이라는 것을 추측해 보았습니다.
예수님 당신의 대제사장직은 주로 사두개파가 담당하였습니다.
그들은 부활을 부정하였습니다(막 12:18).
당연히 그들의 삶은 현세적이었습니다.
이들은 친그리스, 친로마 노선을 추구하면서, 그들의 기득권을 지켜 나갔습니다.
또한, 이들은 모세오경만을 인정했습니다.
부자는 죽어 지옥에 갔습니다(23)
성경에는 ‘지옥’을 표현하는 다양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리스어 ‘게엔나’는 영원한 심판, 불타는 유황에 던져져 심판을 받는 장소입니다.
‘타르타르스’(베후 2:4)는 중대 범죄를 저지른 천사들이 가는 곳입니다.
‘하데스’는 일반적으로 불신자들의 가는 곳입니다.
부자가 간 곳은 ‘하데스’입니다.
이 곳은 영원한 불못, ‘게엔나’로 가기 전 임시 거처입니다.
이 곳은 불꽃으로 고통을 받는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24)
‘고통’은 고문입니다.
불의 열기로 인해 고문과 같은 고통을 당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 후, 영원한 심판으로 인해 ‘게엔나’로 옮겨집니다.
2) 거지 나사로의 믿음
요한복음 8:56
너희 아버지 아브라함은 나의 날 보기를 기뻐하다가 그 날을 보고 즐거워하였느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1:1
아브라함의 자손이시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에 대한 책이라.
거지 나사로는 죽어 천사들에 의해 아브라함의 품으로 옮겨졌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오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오실 예수님을 즐거워하였습니다.
거지 나사로가 아브라함에 품에 있다는 의미는 그 또한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들이 거하는 곳은 그리스어로 ‘파라다이스’입니다.
천국입니다. 믿는 자들이 머무는 곳입니다.
예수님의 최후 심판 후, 영화롭게 변한 몸으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갑니다.
파라다이스는 영원한 거처가 아닙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천국의 삶이 있습니다.
3. 천국과 지옥에서 불가능한 것
1) 고통의 경감이 불가능함
소리를 지르며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내게 긍휼을 베푸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가 그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도록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나이다, 하거늘
천국과 지옥에서도 이 땅에서 기억들이 잊히지 않습니다.
부자는 분명하게 나사로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심부름을 시킵니다.
자신의 고통을 나사로를 통해 경감시키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각자의 죄의 대가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입니다.
부자는 부활을 부정하고, 메시아를 부정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입니다.
반대로, 거지 나사로는 그의 믿음을 통해 천국에서의 복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나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얻는 영원한 생명이니라(로6:23)
2) 왕래가 불가능함
천국과 지옥에서는 왕래가 불가능합니다.
우리들의 삶에는 죽은 이들을 위해 정성을 드리면 그들의 사후의 운명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차이는 사후에 다른 운명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결코 이는 바뀔 수가 없습니다.
3) 전도가 불가능함
이에 그가 이르되, 그러므로 아버지여, 간구하건대 아버지께서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으로 보내소서(27).
죽은 부자는 다시 현세로 가서 자신의 다섯 형제에게 전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합니다.
전도는 살아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죽어서는 더 이상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4. 바리새인들에게 주는 경고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대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이 저들의 말을 들을 것이니라, 하매(29)
사두개파들은 모세오경만을 인정했습니다.
바리새파들은 모세오경과 대언자들의 글을 다 인정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여전히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부정한다면 부자와 같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모세와 대언자들이 말한 것을 믿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24:44
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여전히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말들 곧 모세의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과 시편에 나에 관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반드시 성취되어야 하리라 한 말들이 이것들이라, 하시고
모세와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과 시편은 모두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록입니다.
이 땅에서 그들이 아무리 애써 경건한 삶을 살고자 하더라도 그들 또한 부자의 운명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그들이 모세와 대언자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비록 어떤 사람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날지라도 그들이 설득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이 땅에서 수많은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표적을 요구했지만,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지옥행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겸손히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모세 오경과 대언자들의 글과 시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읽어 내는 것입니다.
이 글은 모두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임을 깨닫아야 합니다.
그 때에 성령에게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리새인들이 취해야 할 바른 자세입니다.
그렇지 않고, 계속해서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고, 예수님을 대적하면 그들의 운명은 부자와 같을 것임을 예수님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부자와 나사로를 통해 우리가 갈 천국, 지옥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천국과 지옥에서의 삶을 묵상하면서, 우리 주위의 사랑하는 이들을 기도하며 전도하는데 더욱 힘쓰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며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