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에는 돈, 물질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1~13절은 불의한 청지기에 대한 비유입니다.
14~18절은 돈을 사랑하는 바리새인들의 이중성을 드러냅니다.
19~31절은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16장에서 물질에 대한 바른 태도와 진정으로 부유한 자는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불의한 청지기 비유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8a 예수님께서 불의한 청지기 비유로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8b~13절은 비유에 대한 예수님의 적용입니다.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해, 이 세상의 물질에 대한 성경적인 가치관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돈에 대한 바른 가치관
예수님께서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드신 배경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죄인들을 영접하고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을 불평하였습니다 (15:2)
유대 백성들에게 세리는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진정으로 돈을 사랑하는 자는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14절의 “탐욕”이라는 단어는 ‘돈을 사랑하는 자’란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죄를 드러내시며, 그들의 위선을 폭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바리새인들과 다른 물질에 대한 바른 가치관을 가질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비유의 요악
어떤 부자가 있었습니다.
이 부자에게는 한 청지기가 있었습니다.
“청지기”란 ‘집’이라는 단어와 ‘할당, 배당’이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을 대신해서 집 안을 돌보는 자입니다.
영어로는 ‘manager’입니다. 집 안의 대소사를 관리하는 자입니다.
이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허비”했습니다.
“허비”라는 단어는 ‘도처에’와 ‘뿌리다’란 의미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물쓰듯이 사방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주인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주인은 이 종을 불러 “회계 보고”을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회계 보고”는 ‘로고스’, 말입니다.
주인 앞에서 논리 정연하게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준 것입니다.
그러나, 청지기는 자신을 변호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불의하게 주인의 재산을 허비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곧 청지기의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청지기는 노동을 할 수 있을 만큼 체력이 있지도 않았고, 구걸도 부끄러워서 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청지기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렀습니다.
첫 번째 빚진 자는 주인에게 기름 백 말, 800 gallon, 약 3030리터의 기름을 빚지고 있었습니다.
불의한 청지기는 “증서”를 가져와 “오십”, 400 gallon, 약 1515리터로 변경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반을 탕감해 준 것입니다.
두 번째 빚진 자는 밀 백 석, 1000bushel, 35340kg의 밀을 빚지고 있었습니다.
불의한 청기지는 이 자에게도 증서를 가져와 800 bushel, 28192kg의 빚으로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이에 주인이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를 칭찬하였습니다.
“지혜”의 의미는 내적인 생각이 삶의 형태로 드러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평소에 품고 있던 가치관이 삶의 모습으로 드러난 것을 의미합니다.
청지기의 가치관이 빚을 탕강하여 사람을 얻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적용해 주심
1. 돈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을 배워라
이는 이 세상의 자녀들이 자기 세대에서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지혜롭기 때문이니라.(8b)
예수님은 청지기의 불의함을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비유에서 오히려 청지기의 불의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의한 자들로부터 배울 것이 있음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자녀들”은 불신자들입니다.
“빛의 자녀들”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 특별히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은 빛의 자녀들이 이 세상의 자녀들에게서 배울 것이 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특별히, 물질에 있어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입니다.
물질을 지속될 수 있는 것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친구를 만드는 것은 이 땅에서 지속가능한 것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물질을 통해 이 세상에서 자신을 받아 줄 친구를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제자들에게 배워야 할 “지혜”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19절에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둘 것을 가르쳤습니다.
“너희 자신을 위해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서는 좀이 먹고 녹이 슬며 거기서는 도둑이 뚫고 훔치느니라.”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것을 영원한 것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물질을 필요한 자들을 돕는 일에 사용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이는 영원한 것에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돈을 통해 신앙을 훈련하라
1) 작은 것
가장 적은 것에 신실한 자는 또한 많은 것에 신실하고 가장 적은 것에 불의한 자는 또한 많은 것에 불의하니라.(10)
“가장 적은 것”은 돈 관리, 물질의 관리입니다.
“돈”은 우리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이 돈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이 작은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이 작은 것입니다.
이 돈, 물질을 하나님 앞에 지혜롭게 사용할 때, 우리에게 더 큰 일이 맡겨집니다.
그것은 아마 영혼을 구원하는 일일 것입니다.
물질의 사용을 절제하고, 축적된 물질을 지혜롭게 사용할 줄 아는 자에게 더 큰 일, 영적인 일들을 맡겨 주실 것입니다.
2) 신실하라
“신실하다”의 의미는 믿음을 가지고 행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대상에 대해 충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대상에 믿음을 가지고 충성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내보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돈, 물질 문제에 있어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남이 보던, 보지 않던 하나님 앞에서 물질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너희 자신을 의롭게 만드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들 가운데서 높게 평가받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니라.(15)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돈을 “지혜롭게”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내면을 다 보고 계신다는 진리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신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물질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3. 돈을 통해 신앙을 테스트 받으라
종이 결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이는 그가 이 주인을 미워하고 저 주인을 사랑하거나 혹은 이 주인을 떠받들고 저 주인을 업신여길 것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13)
“섬기다”는 현재형입니다.
“미워하고”, “사랑하거나”, “떠받들고”, “업신여길”는 다 미래형입니다.
“섬기다”는 것은 누군가의 종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다”, “미워하다”는 의미는 선택하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선택하면 선택된 것을 더 사랑하고, 선택하지 않는 것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만일 돈을 섬기게 되면 차츰 하나님보다 돈을 선택하게 되고, 돈을 떠받들게 됩니다. 다른 말로 돈을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돈을 우상숭배하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종이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게 됩니다.
돈은 그 자체가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여 하늘에 보물을 쌓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돈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혹은 세상을 선택하는 것을 훈련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돈을 하나님 앞에서 사용하는 것은 우리 신앙의 바로미터입니다.
우리는 선택에 대한 결과를 압니다. .
처음부터 하나님을 버리는 자는 없습니다.
처음은 돈을 선택하는 작은 것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결구에 돈을 우상시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돈에 대한 유혹을 받습니다.
매 순간, 날마다 돈을 통해 우리의 신앙이 훈련받고, 연단 받습니다.
오늘 우리는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돈에 대한 바른 가치관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돈을 자신을 위해 축적하지 않고, 구제하는 일에 사용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돈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사용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돈을 통해 날마다 하나님을 선택하는 훈련을 받을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런 가치관이 우리의 삶을 결정합니다.
이런 가치관이 우리의 삶의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돈을 사랑하는 바리새인들의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돈에 대한 바른 가치관을 가지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혜”는 내적인 가치관이 외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는 것에 따라 내 삶의 결국은 엄청납니다.
돈에 대해 바른 “지혜”, ‘가치관’을 가지는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기도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