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누가복음 15장을 공부하겠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은 세 개의 비유가 나옵니다.
첫 두개의 비유는 잃어버린 것을 찾는 비유입니다.
마지막, 탕자의 비유는 돌아 온 자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찾음을 당하는 지,
우리가 어떻게 잔치에 잠여 할 수 있는 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구원의 은혜, 잔치의 기쁨
1. 예수님께서 비유들로 가르치신 배경(1~2)
그때에
그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때는 어느 때인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14장 25절에 큰 무리가 예수님께 나올 때 있을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리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린 이유는 예수님이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함께 식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온 세리와 죄인들
세리는 로마를 대신에 세금을 징수하던 자들이었습니다.
로마는 세금 징수액을 경매에 부쳤습니다.
그러면 유대인들 중에서 가장 높은 금액을 써 낸 자가 세리의 자격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로마에 바쳐야 할 세금에 자신의 수고비를 더해서 동족들에게 세금을 착취했습니다.
그들은 동족들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 악하게 세금을 거두어 동족들로부터 원성을 샀습니다.
죄인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그룹을 가리키는 지 모르겠습니다.
1절에 정관사 ‘the’가 있는 것으로 봐서, 어떤 특정한 그룹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세리와 창녀들이 늘 함께 언급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아, 창녀들일 수 있습니다.
아무튼, 특정한 그룹을 가리키는 것은 분명합니다.
세리와 죄인들은 결코 예수님과 식사를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식사규정은 까다로웠습니다.
유대의 성경학자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누구와 먹을 것인지를 규정해 두었습니다.
그 규정에 의하면, 이방인이나, 세리나, 창녀들, 불구자들과 식사를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죄인들과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을 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수군거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잘 알고, 세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2. 한 마리 양을 찾는 비유: 길 잃은 양의 비참함
이 비유의 핵심은 7절입니다.
잃어버린 양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로운 아흔아홉 사람보다 회개하는 한 죄인으로 인하여 더 기쁨이 있으리라.
의로운 아흔아홉 사람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대표합니다.
스스로 의롭다 여기며 천국 프리패스 티켓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대표합니다.
행위를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람을 대표합니다.
반대로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은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자입니다.
광야에서 길을 잃은 양은 희망도 없고, 스스로를 도울 수 없는 자를 대표합니다.
오직 한 가지는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구출되는 것입니다.
오직 목자만이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자를 대표합니다.
은혜만이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대표합니다.
3. 드라크마 비유: 부지런히 찾는 자
드라큐마의 비유의 핵심은 누군가가 잃어버린 것을 너무도 열심히 찾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창문은 지금의 유리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먼지가 집 안으로 많이 유입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먼지들이 침대 밑이나 가구 밑에 쌓였을 것입니다.
잃어버린 동전을 찾는 이는 열심히 먼지도 쓸어 보기도 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찾을 때까지 찾습니다.
그리고 찾았을 때, 기쁨에 못 이겨 이웃을 초청해 잔치를 베풉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한 죄인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기쁨이 있느니라, 하시니라.(10)
드라크마의 비유는 찾는 것에 대한 기쁨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드라크마를 찾았다는 것은 회개하는 한 영혼을 찾았다는 의미입니다.
한 영혼이 회개하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죄인들을 찾으러 오셨습니다.
죄와 사망에 비참한 자들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스스로 구원할 힘이 없는 자들을 구원하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오직 긍휼만을 바라는 자들을 찾으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을 찾았을 때에 기쁨이 넘칩니다.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기쁨이 넘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세리들과 죄인들을 영접하고 식사를 함께 한 이유입니다.
4. 탕자의 비유(4~32): 은혜로 참석하는 잔치
탕자의 비유의 핵심은 잔치에 참여할 자격입니다.
아들이 그에게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을 대적하여 죄를 짓고 아버지의 눈앞에서 죄를 지었사오니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나이다, 하나 아버지가 자기 종들에게 이르되,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가 그에게 입히고 그의 손에 반지를 끼우고 그의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여기로 끌어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1~23)
둘째 아들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합니다.
이 때, 아버지는 그를 잔치로 인도합니다.
작은 아들에게 어떠한 조건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은혜로 둘째 아들을 잔치에 참여시킵니다.
작은 아들이 한 것은 오직 회개하고 아버지께 돌아온 것밖에 없습니다.
그가 노하여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그의 아버지가 나와서 그에게 간청하매(28)
첫째 아들은 잔치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합니다.
아버지가 나와서 간청해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가 응답하여 자기 아버지께 이르되, 보소서, 이 여러 해 동안 내가 아버지를 섬기며 어느 때고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적이 없었거늘 아버지께서 내가 내 친구들과 함께 즐기도록 내게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지 아니하셨나이다. (29)
첫째 아들은 자신의 행위를 언급합니다.
자신은 잔치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자신에게는 잔치를 베풀어 주지 않고, 작은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천국 잔치에 들어갈 자격은 행위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둘째 아들은 반대로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첫째 아들은 잔치에 참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유에서 첫째 아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임을 알 수 있습니다.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천국 잔치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둘째 아들은 자신이 자격이 없음을 아는 자들입니다.
오직 은혜의 구원을 믿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이런 자들을 영접하시고 함께 식사를 함께 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종교는 행위를 강조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반대로, 기독교는 은혜를 가르칩니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걸려 넘어집니다.
무언가를 해서 갖추어야 하는데, 은혜로 값없이 주어지는 구원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진리의 증인들입니다.
과거 우리는 한 마리 잃어버린 양과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스스로는 자신을 구원할 힘이 없던 자였습니다.
이런 자를 하나님이 찾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찾으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이 은혜가 오늘을 이기게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죄로 인해 고통받던 자를 싸매어 주시고, 평안과 안식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 되심을 믿고 찬양합니다.
이제는 길 잃고, 굶주린 비참한 신세가 아닌 하늘의 잔치에 은혜로 참여한 자가 되었음을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