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예수님께서 제자도에 대해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만찬의 비유에 대해 배웠습니다.
먼저 초청을 받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초청에 핑계를 대고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만찬을 준비한 주인은 골목과 거리에 나가 이전에 초청받지 못한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럼에도 자리가 비자 이번에는 산울타리로 나가 사람들을 초청하였습니다.
이 비유는 유대인들이 먼저 초청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거부하자, 유대의 남은 자들과 이방인들이 먼저 구원을 받는다는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될 한 가지는 이 초청이 값없이,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초청을 할 때, 그 어떤 조건이 없었습니다.
구원은 은혜입니다. 우리의 그 어떤 행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오늘 말씀은 우리의 행위를 요구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제자가 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스스로 선택하는 제자의 삶
1. 제자도를 가르치신 배경(25)
큰 무리가 그분과 함께 갈 때에 그분께서 돌아서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25)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 중에는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통해 어떤 개인의 이익을 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공리주의를 쥐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호기심을 가진 자, 예수님을 적대시하는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큰 무리를 향해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제자도를 가르치셨습니다.
2. 제자가 되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26~27)
1) 주의 일을 최우선해서 감당하는 자세
어떤 사람이 내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녀나 형제나 자매나 참으로 자기 생명도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26)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족들을 미워해야 합니다.
“미워하다”의 그리스어 ‘μισέω’, ‘미세오’는 ‘어떤 것에 덜 사랑하다’의 의미입니다. 선택을 받지 못했다’의 의미입니다.
로마서 9:13
이것은 기록된바, 야곱은 내가 사랑하되 에서는 미워하였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은 태 중에서 이미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태 중에서 있는 아이를 미워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미워하다’의 의미는 에서를 택하지 않으시고 야곱을 택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족을 미워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어떤 임무를 주셨을 때, 가족보다 먼저 주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족을 미워한다는 의미입니다.
군인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군인은 적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전투를 합니다.
그 순간에는 가족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해야 합니다.
모든 전투가 끝난 후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쟁기를 잡았을 때는 밭을 일구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누 9:62)
그 후에 가정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주의 제자는 자신이 맡은 임무에 최우선해서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제자에게 필요한 첫 번째 덕목입니다.
2)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자세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아니하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26)
주의 제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갈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사람마다 십자가는 다 다릅니다.
요한복음 21:21~22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님께 이르되, [주]여, 이 사람은 무엇을 하리이까?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가 머물 것을 내가 원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베드로는 세 번이나 사랑 고백을 한 이후에 다시 제지로 삶을 살고자 결단했습니다.
베드로는 이제 주의 종이 되어, 주님을 위해 순교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요 21:18)
베드로는 요한의 삶이 궁금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는 베드로의 사명이 있고, 요한에게는 요한의 사명이 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9
나 요한은 또한 너희 형제요 환난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과 인내에 동참하는 자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으로 인해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노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요한을 제외하고 다 순교하였습니다.
요한은 환란과 인내에 동참하며 밧모라는 섬에 유배되었습니다.
거기에서 계시를 받아 요한계시록을 완성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다 각자 다른 십자가가 있습니다.
평신도는 평신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평신도도 각자 다른 십자가가 있습니다.
풀타임 사역자는 사역자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3. 제자의 삶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28~33)
예수님은 이제 두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 비유는 건축을 할 때, 건축 예산을 미리 생각해보는 비유입니다.
만일 미리 충분한 건축 예산을 확보하지 않고, 건축을 시작하다가 기초만 놓고, 공사를 더 이상 진행시키지 못하게 됩니다.
이는 건축주에게 크나큰 손실입니다.
또한 사람들로부터 어리석음으로 인해 웃음거리가 됩니다.
두 번째 비유는 적과의 전쟁입니다.
만일 적군이 쳐들어왔을 때, 적들의 수가 많아 전쟁에서 질 것이 자명하다면 사실을 보내어 화친을 청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화친을 청할 지, 전쟁을 할 지, 미리 따져보아야 합니다.
전쟁을 벌려 자신뿐만 아니라 국민들을 재앙으로 몰아넣을 수는 없습니다.
구원은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입니다.
그러나 제자의 삶은 선택하는 것입니다.
선택하기 위해 곰곰히 따져봐야 합니다.
그리고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이것을 하라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도 제자의 삶의 어려움을 미리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비유를 통해 생각할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
제자의 삶을 사는데 따르는 자신의 희생을 생각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제자의 삶을 살겠다고 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며,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폐를 끼치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돌아보며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는 제자의 삶은 때로는 가족보다 주님의 사명을 더 우선시해야 하는 삶이다.
나를 따르는 제자의 삶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고난의 삶이다.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지 생각하고 따져보라
그래도 제자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너의 가지 ‘소유’, 즉 너의 꿈, 너의 희망, 너의 재산, 네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버리고, 그 다음에 나를 따라오라고 가르치십니다.
4. 제자의 삶의 독특함 (34~35)
제자의 삶을 사는 것은 어떤 독특함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소금의 맛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소금을 얻는 방법은 암염에서 얻는 것이었습니다.
암염을 물에 담궈 놓으면 소금이 흙에서 빠졌습니다.
충분히 소금이 빠지면, 흙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 흙은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의 삶은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을 쫓는 삶입니다.
그럼 삶의 독특함이 없다면, 제자로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기꺼이 감당하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제자가 가지는 독특함, 소금의 맛입니다.
예수님은 큰 무리를 원치 않음
예수님은 큰 무리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큰 무리를 원하셨다면, 결코 제자도를 가르치실 이유가 없습니다.
무리가 원하는 것을 주신다면, 아마 더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통해 세를 형성하고, 로마의 집권 세력에 도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소수의 제자들을 원하셨습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사명을 우선시 감당할 소수의 제자들을 원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날마다 제자의 삶을 선택하여 제자의 삶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