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누가복음 14장을 하겠습니다.
먼저, 1~24절까지를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다음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부활 때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부활할 때에 일어나는 일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전통의 모순을 드러내심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우두머리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초대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수종이 든 어떤 남자가 있었습니다.
수종은 몸이 붓는 병입니다.
예수님 앞에 그런 사람을 둔 것은 특별한 의도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일 하는 것에 대한 꼬투리를 잡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의도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수종 든 남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이 남자에게 어떤 믿음이 있어 고쳐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메시아로서 표적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나귀나 소가 있는데 그것이 구덩이에 빠지면 안식일에 그것을 곧 끌어내지 아니하겠느냐?”(5)
나귀나 소는 그들에게 귀한 재산이었습니다.
그들이 위험에 빠질 때 구해주는 것은 그들에게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나귀나 소보다 더 귀한 존재를 구원해 주는 것은 결코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예수님은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전통의 모순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교만을 드러내심
예수님께서 초대받은 자들이 으뜸가는 자리를 택하는 것을 눈여겨보셨습니다.
으뜸가는 자리에 앉는 것은 사람의 서열을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경건한 자들입니다.
또한 이 바리새인들은 지도자 그룹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에는 서로 상석에 앉고자 하는 인간적인 열망으로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교만을 지적하셨습니다.
“오직 네가 초대를 받거든 가서 가장 낮은 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자가 와서 네게 이르기를, 친구여, 더 높은 데로 올라가라, 하리니 그때에 네가 너와 함께 음식 앞에 앉은 자들 앞에서 영예를 얻으리라.”(10)
참 된 겸손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예수님의 낮아지신 겸손입니다.
또한, 이 땅에 오셔서 냄새나는 죄인들을 섬겨 주신 것은 크나큰 낮아지신 겸손입니다.
우리가 이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생각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자신을 높일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의 인간적인 육신의 정욕을 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이 우리를 참 된 겸손으로 인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배타성을 드러내심
예수님은 계속해서 주인을 책망하셨습니다.
“그 뒤에 그분께서 또 자기를 초대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을 만들거든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말라. 그들이 또한 너를 다시 초대하여 네게 되갚을까 염려하노라.”(12)
주인은 자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자신에게 무언가 보답해 줄 수 있는 자들을 선별해서 초대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만일 가난하고 병든 자를 초청했다면 부활 후에 그에게 하나님의 보상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 땅에서 그가 행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의 보상과는 무관합니다.
바리새인들은 경건한 종교인들이지만 그들에게는 가난한 자, 병든 자의 친구는 되지 못했습니다.
이방인들을 개라고 부르며, 지옥의 불쏘시기라고 저주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배타성을 드러내셨습니다.
잔치에 초대를 거절한 자들
그분과 함께 음식 앞에 앉은 자들 가운데 하나가 이것들을 듣고 그분께 이르되, [하나님]의 왕국에서 빵을 먹을 자가 복이 있나이다, 하매(15)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어떤 바리새인이 천국에서 빵을 먹을 자가 복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은 천국에 당연히 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대한 만찬을 준비하고 사람들을 초대하였습니다.
변명1 : 물질 때문에
이미 초대받은 자들에게 초청을 하였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자신이 땅을 샀고 그것을 둘러보아야 한다는 핑계로 초청을 거절하였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자신의 산 소를 시험해 보아야 하기 때문에 만찬에 참석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대었습니다.
변명2 : 가족 때문에
세 번째 사람은 결혼을 하였기 때문에 가지 못한다는 핑계를 대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이미 만찬의 초대가 있었습니다.
초대가 먼저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지 않겠다는 핑계를 대며 만찬의 초대에 거절을 하였습니다.
전에 초대 받지 못한 사람들이 초대 받음
이에 주인은 종을 시켜 도시의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을 초청하게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자리가 차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종에게 큰 길과 산울타리를 나가서 사람들을 데려오게 하였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전에 초대한 그 사람들 중에서는 아무도 내 만찬을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24)
전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입니다.
나중에 초대받은 자들은 유대인들 중의 남은 자들과 이방인들입니다.
이렇게 1~24절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였습니다.
어려운 내용이 없으니 찬찬히 읽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어떻게 이 말씀들을 우리 삶에 적용할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고민하는 중에, 말씀을 요약해서 설명하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교리를 함께 살펴보는 것도 은혜가 되겠다 싶어 잠시 부활 이후에 이루어질 일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리하면 그들이 네게 보답하지 못하므로 네게 복이 있으리니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의인들이"
요한계시록 19:7~9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그분께 존귀를 돌릴지니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이르렀고 그분의 아내가 자신을 예비하였도다.
또 그녀가 깨끗하고 희고 고운 아마포 옷을 차려입도록 허락하셨는데 그 고운 아마포는 성도들의 의니라, 하더라.
그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만찬에 부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이르되, 이것들은 [하나님]의 참된 말씀들이라, 하기에
혼인 잔치는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있을 것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초대받습니다.
그들이 입은 고운 아마포는 성도의 의입니다.
이 의는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곧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를 값없이 받은 자들입니다.
이 그리스도 의를 통해 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 의를 가진 자들이 그리스도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부활할 때에
고린도전서 15:51~53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알리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부활도 분명한 진리입니다.
이 부활은 신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우리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분명히 일어날 일임을 가르치고 잇습니다.
죽은 자들은 잠자는 자들입니다.
일시적으로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 자들입니다.
영혼은 일시적으로 천국, 파라다이스에 있습니다.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 몸과 영혼이 다시 결합합니다.
이전의 몸이 아닌, 썩어지지 않는 곳에 살아갈 수 있는 몸으로 변화됩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썩지 않는 몸, 지금의 몸과는 완전히 다른 변화를 경험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 상태로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네가 보답을 받으리라
부활의 때에 상이 주어집니다.
로마서 14:10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무시하느냐?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리라.
구원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5:10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
이 땅에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이 다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상을 받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공평과 정의의 하나님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수고와 눈물을 잘 알고 계십니다.
이 공평과 정의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한 일들에 따라 상을 주실 것입니다.
이 상은 우리의 구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행한 것들에 대한 상주심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은 결코 허무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상을 받기 때문입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해서 기쁨을 누릴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복된 소망이 오늘 우리를 일으켜 세워 줍니다.
결코 이 땅에서 허무함을 느끼지 않게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