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말씀 요약
우리는 지난 주에 스스로를 높이는 아도니야를 배웠습니다. 아도니야의 준비는 완벽했습니다. 최고 권력을 가진 제사장과 군대 장관을 자기편으로 만들었습니다. 솔로몬을 제외한 왕자들과 왕의 대부분의 신하들을 포섭하였습니다. 이제 왕이 되는 최종 단계만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완벽한 준비를 했다고 하더라도 사람을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결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상황에 낙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왕 다윗이 그를 계승할 솔로몬에게 주는 다윗의 유언입니다. 이는 결코 사적인 유언이 아닙니다. 아버지와 아들로서가 아닌 왕이 왕에게 주는 당부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왕위를 계승할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서 좋은 왕이 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이 유언의 당부는 솔로몬이 반드시 지키도록 힘써야 합니다. 다윗이 솔로몬 왕을 향한 이 유언의 당부가 오늘 저희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성도가 힘써야 할 것들
Point I 영적으로 강해져야 합니다(v1~2)
1~2절을 보십시오. “이제 다윗의 죽을 때가 가까이 이르매 그가 자기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온 땅이 가는 길로 가노니 그런즉 너는 강건하여 너 스스로 남자임을 보이고
”다윗이 죽을 때가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다윗은 온 땅이 가는 길로 갑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의 왕위를 계승할 젊은 솔로몬에게 당부합니다.
“너는 강건하여”
이 말의 의미는 도망가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왕은 자리는 결코 쉬운 자리가 아닙니다. “왕이 되려는 자는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말이 있습니다. 음모와 암투와 반란이 끊이지 않는 자리가 왕의 자리입니다. 다윗의 삶을 돌아보아도 그렀습니다. 그는 많은 전쟁을 해야 했고, 손에 많은 피를 묻혀야 했습니다.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극한 상황으로 내몰린 적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허물과 죄로 인해 울어야 했습니다. 밧세바 사건을 통해 자신의 얼마나 죄로 인해 허무하게 실패할 수 있는 자인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많은 지도자들이 지도자가 숙명처럼 가지게 되는 스트레스와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갈 때가 있습니다. 스포츠 감독들은 때로는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합니다. 때로는 바른 결정도 있지만, 스스로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해 도망치듯이 사퇴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도자의 자리는 고독한 자리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지도자를 계속 흔들어 됩니다. 그러나 도망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철회하지 않는 한, 결코 스스로가 도망가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서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강건하여”는 왕의 자리에서 도망가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스스로 남자임을 보이고”
이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운동을 열심히 해서, 육체적으로 강한 용사가 되라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이 말은 영적으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도전에 응전하여, 영적인 승리의 경험들을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강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심히 용감한 자가 되어”(여호수아 1:7a) 여호수아는 모세의 곁을 지킨 자입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로 치자면 박사 학위에, 박사 학위에, 또 다른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는 것과 자신이 직접 해보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왜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자신이 직접 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작전지시를 주셨습니다. 하십니다. 또한 수많은 전쟁에서 믿음이 없으면 결코 승리할 수 없는 전쟁으로 그를 내몹니다. 그들은 철병거, 오늘날로 말하면 전차 부대와 첨단 무기들과 요새로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이 전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이것이 두려워했습니다.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경험이 있는 백전노장의 영적 지도자는 결코 여호수아처럼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영적 승리를 경험하게 하시므로 더 큰 전쟁에서도 두려워 떨지 않는 용사로 키우셨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통치를 보았습니다. 왕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는 것과 자신이 행하는 것은 다릅니다. 경험이 없기에 두려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솔로몬은 실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수를 통해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붙들고 영적인 승리를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므로 얻어지는 승리와 축복을 그의 백성들에게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을 알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남자임을 보이고”의 의미입니다.
Point II 하나님의 말씀에 거하라(v3~4)
3절을 보십시오.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주} 네 [하나님]의 책무를 지켜 그분의 길들로 걸으며 그분의 법규와 명령과 법도와 증언을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또 네가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리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신명기 17:15~20절에는 왕이 행할 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주} 네 [하나님]께서 택하실 자를 너를 다스릴 왕으로 세울지니 곧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너를 다스릴 왕으로 세울 것이요, 네 형제가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지니라. 그러나 그는 자기를 위해 말을 많이 늘리지 말며 말을 많이 늘리려고 백성을 이집트로 돌아가게 하지 말지니라. {주}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후로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라, 하셨느니라. 또 그는 자기를 위해 아내를 많이 두어 자기 마음이 돌아서지 않게 하며 자기를 위해 은금을 많이 쌓지 말지니라. 그가 자기 왕국의 왕좌에 앉거든 그는 자기를 위해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 있는 그것에서 이 율법을 책으로 한 권 필사하여 평생토록 자기 곁에 두고 그 안의 것을 읽어서 {주} 자기 [하나님] 두려워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법규를 지켜 행할 것이니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자기 형제들 위로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가 이 명령에서 떠나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로써 이스라엘 한가운데서 그와 그의 자손들이 자기 왕국에서 자기 날들을 길게 하리라.”
이스라엘의 왕은 말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부인을 많이 두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왕의 마음이 부인들로 인해서 돌아서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신정국가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 네 [하나님]의 책무를 지켜 그분의 길들로 걸으며”
이 말은 하나님의 신성한 일을 감당하는 자들에게 주어진 관습적인 말들입니다.(민수기1:53; 민수기3:7-8)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 앞에 신성한 의무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방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증인된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왕은 이스라엘이 영적인 빛을 발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도록 다스려야 하는 신성한 의무가 있습니다.
“그분의 법규와 명령과 법도와 증언을 지키라.”
1. 법규(statues); 이는 도덕법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 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이들의 경계와 한계들을 규정한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시민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에 불을 피워서는 안 됩니다. 부정한 경우에는 할 수 없는 일들과 여인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등이 다 법규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법규는 하나님의 명령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삶에 대한 명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명령(commandment); 명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도록 준수하도록 명령하신 것을 말합니다. 하나의 예로 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을 정한 시간에 지켜야 했습니다.
3. 법도(Judgement); 이는 사법적인 성경입니다. 예를 들어 간음죄를 범했을 때, 어떻게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것들이 법도에 해당됩니다. 법도도 크게 보면 명령에 속하지만 명령이 곧 법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법도는 하나님의 명령 중에서 구체적으로 사법적인 면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4. 증언(testimonies); 증언은 특별한 행사에 대한 규정들입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제사규정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를 종합해보면 다윗은 솔로몬에게 율법의 도덕적, 사법적, 제의적 것들을 잘 지키라고 유언해 주고 있습니다.
신약과 구약의 “형통”의 차이
“그리하면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또 네가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리라.” 이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축복입니다. 이 축복에는 물질적 축복도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들 중 하나가 물질적 축복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부유할 때, 이방 백성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신약 시대입니다. 신약 시대는 교회가 세상의 빛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교회의 축복은 영적인 축복입니다. 물질적 축복이 결코 하나님의 축복이 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상하고 찢기고 헐벗고 굶주린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들의 삶은 하나님 보시기에 형통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는 물질적 축복이 “형통”이라는 단어에 들어 있지만, 신약 교회에서 “형통”은 영적인 축복에 국한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코 물질적 축복이 이 시대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가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신약과 구약을 관통하는 두 언약
신약과 구약을 관통하는 두 언약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브라함 언약이고 하나는 시내산 언약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은 창세기 15장에 있습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신 언약입니다. 아브라함을 잘 들게 하시고 자신이 쪼개진 희생물 사이를 지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 언약을 어기시면 벌을 받겠다는 언약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행위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무조건적인 언약이며, 우리의 구원과 관련된 언약이며, 천상의 언약입니다. 이 언약 하에서 우리의 구원은 결코 취소될 수 없습니다.
또 하나의 언약이 있는데 이는 시내산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24장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 언약은 땅에 속한 언약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켜야 할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조건적입니다. 잘 지지면 복을 받고, 못 지키면 하나님의 벌을 받습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르게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민족에만 국한됩니다. 잘하면 복을 받고 못 하면 벌을 받습니다.
구약의 아브라함 언약은 신약의 구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방적 공로입니다. 결코 취소될 수 없습니다. 구약의 시내산 언약은 성도의 성화의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신서의 후반부는 성도의 거룩한 삶을 강조합니다. 우리의 책임을 요구합니다. 우리 주님은 그의 자녀들을 징계하실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잘못된 삶에 대해 우리 주님의 징계를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사생자일 것입니다. 이는 땅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의 죽음 후에는 더 이상 이 언약과는 관계가 없어집니다.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에 주의를 기울이고 또 그들의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여 진리 안에서 내 앞에서 걸으면” 이는 시내산 언약입니다. 조건적인 언약입니다. 잘 지키면 복을 받고 못 지키면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 성도들에게도 이 말씀은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뜻을 따라 살 때 축복해 줄 것입니다. 영적으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을 섬길 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이르시되) 이스라엘 왕좌에 오를 사람이 네게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아브라함 언약 하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왕좌는 결코 폐하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내산 언약 하에서 이 땅에서 다윗 왕국은 결코 영원하지 못합니다. 남 유다는 바벨론의 침공으로 망했습니다.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눈이 뽑힌 채로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시내산 언약의 관점에서 조건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스럽게 거하면 하나님은 국방과 나라의 번영과 왕권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대적하는 나라들로 이스라엘을 벌하실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지킬 때의 두 가지 축복을 솔로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나는 형통이요, 또 다른 하나는 왕국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할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다윗의 부탁은 신약을 사는 성도의 삶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성도는 말씀을 가까이하여야 합니다. 신명기에서 왕의 의무 중 하나로 하나님의 말씀을 필사하여 늘 가까이 두고 읽고, 연구하고, 지켜 행한 것처럼, 신약의 성도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게 됩니다.
Point III 위험을 경계하라(5~11)
다윗은 마지막으로 솔로몬에게 왕위를 위협할 수 있는 위험을 경계하라고 조언해 주고 있습니다. 6절에서 다윗의 말은 직접적인 명령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이 말의 의미는 조언입니다. 하는 것이 좋겠다고 다윗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다윗은 군대장관 요압과 시므이를 제거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는 개인적인 복수심에 기초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왕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윗과 요압은 사촌지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요압의 조카가 됩니다. 요압은 다윗을 위해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윗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공개적으로 왕의 권위를 무시했습니다. 아도니야를 도와 그를 왕위에 앉히고자 했던 인물입니다. 시므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기회주의자였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도망갈 때, 그를 저주한 자였습니다. 또한 다윗이 복귀할 때, 용서한 구한 자였습니다. 다윗이 그를 용서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기간을 유예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자는 언제든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바뀔 수 있습니다. 다윗이 죽으면, 솔로몬에게 어떻게 나올지 모릅니다. 그는 솔로몬에게 잠재적 위협이 됩니다.
오늘 우리의 영적 삶에서 항상 위험의 요소를 경계해야 합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습니다. 우리는 모든 영을 믿지 말고, 영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세상에 거짓 선생과 거짓 성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그들을 시험하여 물리쳐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영적인 잠을 깨워야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이 땅에서 없어 것에 소망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 된 소망, 천국에 소망을 두고, 이 땅에서 기꺼이 고난과 핍박을 감당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늘 영적으로 민감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신약 시대 성도들 마땅히 행해야 할 바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마지막 유언을 통해 오늘 우리의 영적인 삶에 적용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영적으로 강해야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게으러서는 안 됩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영적인 삶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다윗의 유언이 우리 삶에 잘 적용될 수 있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