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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4 15:30

[창세기 12장] 신자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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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창세기 12:1-8
성경본문내용 1.그런데 전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 집에서 나와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부터 큰 민족을 만들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하리니 네가 복이 되리라.
3.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는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리니 네 안에서 땅의 모든 가족들이 복을 받으리라, 하셨더라.
4.이처럼 아브람이 {주}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떠나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아브람이 자기 아내 사래와 자기 조카 롯과 하란에서 그들이 모은 그들의 모든 소유와 또 그들이 얻은 혼들을 데리고 가니라. 그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고 떠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니라.
6.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이라는 곳에 들어가 모레의 평야에 이르렀는데 그때에 가나안 족속이 그 땅에 있더라.
7.{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므로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께 거기서 제단을 쌓고
8.거기서 떠나 벧엘의 동쪽에 있는 산으로 이동하여 장막을 쳤는데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더라. 그가 거기서 {주}께 제단을 쌓고 {주}의 이름을 부르니라
강설날짜 2019-09-22
항목분류 하나님의 백성

오늘은 창세기 12장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가나안으로 인도함을 받아 가는 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신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신자란?

 

1. 신자는 세상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너는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 집에서 나와”

 

아브라함이 살던 우르는 어떤 곳이었을까요?

 

발전된 도시 문화를 향유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갈대아 ‘우르’는 지금의 이라크 남부 지방입니다. 우르는 메소포타미아 남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메소’란 의미는 ‘가운데’란 의미이고, ‘포타미아’란 ‘강들’이란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르’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만든 비옥한 땅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바다에 가까워 상업이 발달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인류의 첫 문화인 수메르 문명이 꽃을 피운 곳이었습니다. 수메르인들은 자신들의 문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문자는 학문적, 종교적 용도로 이후에도 사용되었습니다.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우르는 상당히 정교한 건축물들로 구성된 도시국가였다고 합니다. 발굴된 무덤에서는 악기와 금은 세공품들이 발굴되었습니다.

 

다신교를 섬기는 곳이었습니다.

농업이 중요한 산업이었기에 농사와 관련된 다신교를 섬기던 사회였습니다. 특별히 풍요의 여신을 섬겼는데, 이 여신을 섬기던 신전이 거의 완벽한 모습으로 우르에 보전되어 있습니다. 당신 신전에서는 풍요를 빌기 위해 성적으로 부도한 일들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우상 숭배자였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24:2

“여호수아가 온 백성에게 이르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날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이자 나홀의 아버지인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여호수아 24:2)

 

홍수 심판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수메르 점판판에서 해석된 ‘갈그메쉬’ 서사시에 따르면, 홍수의 이야기와, 홍수에서 살아남은 사람에 대한 언급, 그리고 불로초와 이 불로초를 가져간 뱀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홍수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을 말해 줍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노아의 아들 셈의 9대손입니다. 셈은 아브라함보다 단지 25년 앞서 죽었습니다. 아브라함이 175세까지 살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셈은 아브라함의 나이 150세까지 동시대에 살았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상의 고고학적 발견과 성경에서 발견되는 사람들의 나이들을 분석해 볼 때, 아브라함이 살던 우르는 대단히 발전된 도시 문화를 향유하던 곳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문제에서는 하나님보다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셈의 8대손인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조차도 우상을 숭배자였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 말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 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환경에서 아브라함과 같이 우리를 영적 무지로 인한 어둠에서 우리를 불러내셨습니다.

에베소서 4:17-18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다른 이방인들이 헛된 생각 속에서 걷는 것 같이 걷지 말라. 그들은 지각이 어두워졌으며 자기들 속에 있는 무지함과 자기들 마음의 눈먼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떨어져 있도다.”

 

하나님은 우리를 우상숭배에서 불러내셨습니다.

로마서 1:23-25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다른 이방인들이 헛된 생각 속에서 걷는 것 같이 걷지 말라. 그들은 지각이 어두워졌으며 자기들 속에 있는 무지함과 자기들 마음의 눈먼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떨어져 있도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정한 삶에서 불러내셨습니다.

에베소서 4:19

“그들이 감각을 지나쳐 자기를 색욕에 내주고 탐욕을 내어 모든 부정한 것을 행하였으되”

 

신자란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세상의 타락한 문화로부터, 우상을 섬기는 삶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만을 섬기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기꺼이 세상의 불편한 삶을 포기합니다. 세상에 있었을 때에는 하지 않아도 되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삶은 복된 삶입니다. 하나님만을 섬기고 알고 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2. 신자는 천국을 향해 전진하는 자입니다.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은 창세기 12장 1절에서 볼 때, ‘우르’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계시에 반응해 길을 떠났습니다. 아마도 비옥한 ‘초생달 지역‘이라고 불리는 강들을 따라 북상했을 것입니다. 그가 먼저 도착한 곳은 ’우르‘에서 북쪽으로 900km 떨어진 ’하란‘이라는 곳입니다. 그 곳에서 그의 아버지 ’데라‘가 죽기까지 머물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버지가 죽자, 다시 ’하란‘에서 남하하여 ’가나안‘ 지역으로 도착하였는데, 그 길이가 600km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총 1500km을 여행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울과 부산의 길이가 388.2km, 대략 400km라고 할 때, 서울과 부산을 두 번 왕복하기에 조금 모자라는 거리를 여행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대로 ‘우르’는 발달된 도시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런 곳을 떠나 불편한 삶으로 들어가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 가족들만이 여행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충실한 종 ‘엘리에셀’이 있었습니다. 또한 조카 롯을 구출하기 위해서 집에서 태어나 훈련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14:14

“아브람이 자기 형제가 포로가 되었다는 것을 듣고 자기 집에서 태어나 훈련을 받은 종 삼백십팔 명을 무장시켜 단까지 그들을 쫓아가서”

 

이를 종합해 볼 때, 아브라함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을 섬기던 종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을 위한 식량, 즉 가축들도 함께 여행을 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단순히 한 가정의 가장이 아닌, 한 부족의 부족장이었다는 것을 쉽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족의 대소사를 처리해야 했습니다. 그가 만일 ‘우르’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러한 불편함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우르’를 떠날 때도, 그의 아버지 ‘데라’가 죽었을 때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곳을 향해 전진했습니다. 히브리서는 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돌아갈 수 있었지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11:15

“참으로 그들이 자기가 떠나온 본향을 깊이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그들에게 있었으려니와”

 

아브라함에게는 이 땅이 아닌, 천국에 소망을 두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아 훗날 상속 재산으로 받게 될 곳으로 나가면서 순종하고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나갔으며”

 

아브라함은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11:10

“이는 그가 기초들이 있는 한 도시를 바랐기 때문이라. 그것의 건축자와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아브라함은 이 땅에서 나그네와 순례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히브리서 11:13-14

“이 사람들은 다 믿음 안에서 죽었으며 약속하신 것들을 받지 못하였으되 멀리서 그것들을 보고 확신하며 받아들였고 또 땅에서는 자기들이 나그네요 순례자라고 고백하였으니 그런 것들을 말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나타내느니라”

 

신자란 천국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 나그네와 순례자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그 일을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세상의 관점으로 불 때, 불편함과 손해의 삶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전진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원한 본향은 이 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자란 아브라함과 같이 우리의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며 전진하는 삶이지, 결코 뒤돌아보는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3. 신자란 예배하는 자입니다.

 

“{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므로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께 거기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떠나 벧엘의 동쪽에 있는 산으로 이동하여 장막을 쳤는데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더라. 그가 거기서 {주}께 제단을 쌓고 {주}의 이름을 부르니라.”

 

신자란 이 땅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입니다. 예배에는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2:1-3절에서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축복은 첫째,

 

1) 땅과 민족에 대한 축복이었습니다.

2) 이름을 크게 해 주겠다는 축복이었습니다.

3) 보호에 대한 축복이었습니다.

4) 메시아에 대한 축복이었습니다.

 

1)~3)은 이 땅에서 이루어진 축복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후손인 히브리인들에 의해 이 축복은 이루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은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의 조상이 됩니다. 그의 이름은 크게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크게 되었습니다. 4)번은 “네 안에서 땅의 모든 가족들이 복을 받으리라” 말씀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3;8

“또 [하나님]께서 믿음을 통해 이교도들을 의롭게 하려 하심을 성경 기록이 미리 보고 아브라함에게 미리 복음을 선포하여 이르되, 네 안에서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의 세겜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땅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세겜’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어깨, 혹은 등’을 의미하는데, 이 의미는 ‘짐을 지다 혹은 멍에를 메다’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브라함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에 감사의 예배를 올렸습니다.

창세기 12:6 

“그때에 가나안 족속이 그 땅에 있더라“

 

아브라함은 이방이었고, 가나안 족속들은 그 수가 많았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아브라함은 믿음을 잃지 않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자신을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에는 감사가 찬양이 있습니다. 또한 예배에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가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 안에서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메시아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은 2천년 뒤에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또한 신자는 이 땅의 어려움과 위험 속에서 늘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신뢰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예배 속에서 늘 이를 고백하고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신자란 어떤 삶을 사는 자인지를 배웠습니다. 신자란 영적인 어둠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곳에서 부르심을 받아 이제는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입니다. 또한 신자란 영원한 천국, 본향을 향해 전진하는 자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세상을 되돌아보지 않습니다. 어떠한 희생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쁨으로 이 땅에서 나그네와 순례자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또한 신자란 예배하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도와 보호하심을 늘 감사하며 기뻐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삶에서 이런 신자의 삶을 살펴보았는데, 이런 삶이 우리의 삶 속에서 분명하게 나타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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