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말씀
지난 시간에 온유한 자가 누가인지를 배웠습니다. 온유한 자는 억울한 일을 당할지라도 보복하지 않는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억울함과 고통을 하소연하여 자신의 억울함을 신원하는 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인도와 방향에 마음이 부드러운 자입니다. 결코 마음이 굳어 있어서 반항하거나 거부하는 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가는 길에서 만나는 환란과 핍박을 피하지 않고 기쁨과 소망 가운데 참고 인내하며 자신의 길을 가는 자입니다.
오늘 말씀
오늘 말씀은 온유한 자가 땅을 상속 받는다는 말씀에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온유한 자는 왜 땅을 상속 받는가? 언제 상속 받는가? 어떻게 온유한 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배워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땅을 상속 받을 것이요
왜 온유한 자가 땅을 받는가?
사회적 통념
온유한 자는 왜 땅을 상속 받습니까? 사람들은 일반적인 생각은 돈이 많은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믿습니다. 땅을 사려면 돈이 많아야 하고 그러려면 많은 돈을 벌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사회의 법칙입니다. 또 다른 생각은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역사를 돌아볼 때, 대제국을 건설한 자들은 힘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월등한 무력을 바탕으로 강제로 땅을 빼앗습니다. 그리고 이를 반대하는 자들을 가차 없이 죽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징기스칸, 알렉산더 대왕, 로마가 걸어간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칙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온유한 자가 땅을 상속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나라의 법칙으로는 누가 땅을 차지해야 하느냐 하면 온유한 자입니다. 포악하고 강퍅한 사람, 정복자가 아니라 그 반대로 온유한 사람이 결국을 땅을 차지하고야 말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창조하신 목적
창세기 1:26-31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가축과 온 땅과 땅에서 기는 모든 기는 것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보라, 내가 온 지면 위에 있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속에 씨 맺는 나무의 열매를 가진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었노니 그것이 너희에게 먹을 것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날짐승과 속에 생명이 있어 땅에서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채소를 먹을 것으로 주었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보시니, 보라, 매우 좋았더라. 그 저녁과 아침이 여섯째 날이더라.”
하나님은 사람이 살기 위해 온 우주와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거기에 수목이 자라게 하고 동물들이 거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이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개가 아무리 지능이 좋아도 비행기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비행기를 만들 수 있는 지능을 가진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서로의 감정과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복잡한 언어 체계는 감히 동물들이 따라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인간은 신을 믿는 종교심이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는 것의 증거입니다. 인간은 창조주를 찾고 경배하기를 원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돕는 자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결혼이라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신성한 제도 하에서 땅에서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고 영광을 돌릴 줄 아는 자들이 충만하게 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문화 사역을 하는 것이 인간의 사명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받은 사람들이 땅에서 하나님을 높이는 사역을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자들을 위해 땅은 창조되었고 존재하였습니다.
땅의 진통
창세기 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평생토록 고통 중에 땅의 소산을 먹으리라. 또한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 네가 들의 채소를 먹으며 땅으로 돌아가기까지 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으리니 이는 네가 땅에서 취하여졌기 때문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인간은 타락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하므로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었습니다. 인간이 땀을 흘리지 않으면 결코 땅의 소산을 먹을 수가 없는 존재로 떨어졌습니다. 인간은 이제 먹고 사는 문제에 매이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동물들은 약육강식 하에서 먹이고 먹이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원래 이렇게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피차의 피를 먹고 피차 잡아먹게 된 것이 하나님의 처음의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서 살벌하고 포학한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죄로 말미암아서 살벌하고 포학한 일이 발생할 때에 포학한 자 즉 상대편의 생명을 단절시키는 자들이 땅 위에서 세력을 얻어서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짐승의 사회나 자연계에 이런 현상이 나나났고 이것이 인간 사회에까지 뻗어 들어가서 사람을 많이 죽이고 노예로 삼고 사람을 고역 가운데 빠뜨리는 사람이 대정복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래 땅을 내신 거룩하신 목적과 계획에서는 멀리 떠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그러기 위해서 땅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남의 피를 흘리고 남의 희생을 대가로 자기를 살지게 하기 위해서 땅을 만들어 내신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본다면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경영에서는 너무나 위배된 대척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초의 목적과 최초의 법칙 그대로, 결국 땅은 온유한 자의 것이다. 그 온유의 반대의길을 걸어가는 자들이 것이 결코 될 수가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법칙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이런 자들이 땅을 상속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땅을 원래 온유하고 겸허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도구로 존재하는 그 사람들을 위해서 존재했고 결국 그 사람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거룩하신 공평과 공의가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공의의 원칙에 따라서 경영하시고 계획하신, 땅을 창조하신 본래의 목적은 이루시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온유한 자가 땅을 상속받는 이유입니다.
언제 온유한 자가 땅을 상속 받는가?
창세기 3:22-24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보라, 남자가 우리 가운데 하나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었도다. 이제 그가 자기 손을 들어 생명나무에서 나는 것도 따서 먹고 영원히 살까 염려하노라, 하시고 그런 까닭에 {주} [하나님]께서 에덴의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사 그를 땅에서 취하였으므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께서 그 남자를 쫓아내시고 에덴의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사방으로 도는 불타는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이 영생을 얻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인간을 에덴 동상에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불타는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자가 땅을 상속받게 하시기 위해서 타락한 채로 이 세상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고통과 신음이 있는 세상입니다.
로마서 8:18-22
“내가 생각하건대 이 현 시대의 고난들은 앞으로 우리 안에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될 수 없도다. 창조물이 간절히 기대하며 기다리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라. 창조물이 헛된 것에 복종하게 된 것은 자진해서 된 것이 아니요, 소망 중에 그것을 복종하게 하신 분으로 인한 것이니 이는 창조물 자신도 썩음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런 자유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라. 또 전체 창조물이 지금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 중에 산고를 치르는 줄을 우리가 아나니“
우리는 자연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도시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자연은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자연은 신음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저주로 인해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상태가 결코 정상적이 아닙니다. 비정상적인 이 상태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스런 자유에 이를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광의 자유란 우리가 완전한 구속을 받을 때입니다. 우리는 ‘칭의’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늘 법정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았습니다. 또한 우리는 ‘성화’의 구원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오염을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의 완전한 구원은 미래에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재림 시에 완전한 몸을 소유하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때가 영광스런 자유가 주어질 때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우리가 중생을 경험한 때가 아닙니다. 우리가 완전히 변화된 몸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때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은 결코 성도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땅입니다. 온유한 자,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이곳에 우리는 들어 갈 것입니다. 이곳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 목적대로 살며, 하나님의 높이고 영광 돌리는 삶을 살을 살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온유한 자가 될 수 있는가?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대적할 법이 없느니라."
‘온유’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지나 결심으로 결코 온유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성령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불을 꺼서도 안 됩니다. 성령의 인도와 뜻을 의도적으로 거부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마주치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육신의 생각을 쫒아 행하기보다는 무릎을 꿇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당장에 내 생각을 쫓아 분노하며 복수하고 혈기를 부르기 보다는 하나님께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을 따라 사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불평하거나 거부하기보다 겸손히 나의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단수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라는 그리스도의 품성 안에 다양한 특징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온유입니다. 그러므로 온유하려고 하기 보다는 성령을 따라 살아갈 때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적인 품성의 열매가 맺히고 온유라는 특징적인 모습이 우리 안에서 나타나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두신 이유
하나님께서 이 땅을 그런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현재 이 땅에는 마귀가 임금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땅을 자기의 품안에 놓고 이러고저러고 하는 동안에는 참으로 땅의 주인이 되어야 할 온유하고 겸비한 자들은 억울하게 울고 슬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에 있는 동안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자태가 어떠한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가 자신의 억울함을 신원하데 결코 자신의 힘으로 복수하지 않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겸손히 그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이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우리를 재창조하시고 온유한 자로 훈련하시고 성장케 하시는 목적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온유한 자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