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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마태복음 5:4
성경본문내용 애통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요,
강설날짜 2018-07-15

지난 말씀

지난 시간에는 산상 수훈의 맨 처음 서론에 해당되는 팔복에 대해 배웠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은 무엇이고, 그들이 받은 복은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달은 자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위해 분투하는 자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이루고자 할 때, 자신의 무능력함을 철저히 깨달은 자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아는 자입니다. 이런 자가 마음이 가난한 자입니다.

 

그러면 이런 자가 받을 축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왕국이 그들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니라.”(로마서 14:17)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지 않는 자입니다. 성령님의 다스림과 인도를 받는 자입니다. 주님께 받은 사명을 결코 자신의 경험과 능력으로 감당하지 않고 매순간 성령님을 의지하는 자입니다. 성령님께서 이런 자에게 의와 화평과 기쁨을 주십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미 소유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오늘 말씀은 팔복의 두 번째 시간으로 애통하는 자에 대해 배워보겠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애통하는 자가 받을 복은무엇인지에 대해 배우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저의 말씀의 제목은

 

애통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애통이라는 단어의 의미

애통이라는 단어는 내면의 마음의 슬픈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애통의 그리스어 단어 어떤 사람이 극심한 슬픔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 슬픔이 숨겨져 있지 않고 분명하게 드러난 상태입니다. 마음의 극심한 슬픔으로 인해 한숨 짓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마음이 가난한 자를 배웠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주님의 사명을 감당할 때 자신의 무능력을 철저히 느끼는 것을 말한다면, 그 다른 한 편에는 자신의 무능력으로 인해 애통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첫째,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들입니다.

인간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죄에 대해 면책을 받았습니다. 이는 사면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게는 아담의 죄로 인한 죄성이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성화의 삶을 살면서 우리 안에 있는 이 죄성을 극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긴장을 풀고, 한눈을 파는 순간에 우리는 길을 잃고 죄에 빠져 들게 됩니다. 이러한 예를 우리는 다윗의 밧세바 간음 사건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충신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하였습니다.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최전선에 서게 하여 죽였습니다. 이 일로 인해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나단 대언자의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 때에 그는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죄를 범하였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시편 51편에서 자신의 죄를 애통해하며 회개합니다. 내 불법에서 나를 철저히 씻기시며 내 죄에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내 범죄들을 시인하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편 51:2-3)

 

두 번째로, 세상의 죄와 사람의 죄로 인해 애통해 하는 자들입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대언자란 별명을 가진 대언자입니다. 그는 그 조국 남 유다의 죄와 그 결과로 바벨론의 의한 멸망을 예언한 대언자입니다. 예레미야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외쳐도 그 백성은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를 배척하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음에 깊은 슬픔으로 애통하며 남유다에 향해 하나님의 예언하였습니다. 내 눈이 눈물로 쇠약해지며 내 애가 타고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내 백성의 딸이 멸망하여 아이들과 젖먹이들이 도시의 거리들에서 기절하였기 때문이로다.”(예레미야애가 2:11) 우리 주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메시아 되신 예수님을 죽이려는 백성들의 죄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시며 우셨습니다. 그분께서 가까이 오사 그 도시를 보시고 그 도시로 인해 슬피 우시며(19:41)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죄악과 그것을 회개치 않는 사실로 인해 애통하고 근심과 눈물로써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를 읽은 고린도 성도들 중 많은 이들이 마음 가운데 괴로움을 느끼고 회개하였다고 디도는 바울에게 고린도 교회의 사정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그중에 적은 무리가 사도 바울 선생이 전에 예루살렘을 위해서 연보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마치 바울 선생이 돈을 탐하는 사기꾼인 것같이 말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를 써야했습니다. 비록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하노니 그 서신이 잠시 동안만 너희를 근심하게 한 줄을 내가 아노라. 이제 내가 기뻐함은 너희가 근심하였기 때문이 아니요, 오히려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에 이르렀기 때문이라. 너희가 하나님께 속한 방법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어떤 일에서도 너희가 우리로 인하여 상처를 받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고후 7:8-10) 사도 바울은 자기가 사랑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법도를 모르고 그릇된 데로 자꾸 가고 헛된 사람의 이상한 소리를 듣고 찾아가는 것을 볼 때 마음이 통분하고 괴로워서 애통하며 눈물로 편지를 썼습니다. 죄를 보고 하나님 앞에 반역하는 사실을 볼 때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이 있어서 슬픔을 느끼는 그것이 다 거룩한 나나님 나라의 애통입니다.

 

예수님도 그 백성의 죄로 인해 그 마음에 슬픔이 가득하셨습니다. 앞으로 겪게 될 그 민족의 수난을 보시고 마음에 애통해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가까이 오사 그 도시를 보시고 그 도시로 인해 슬피 우시며 이르시되, 적어도 이 날 즉 네 날에만이라도 너 곧 네가 네 화평에 속한 일들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리요! 그러나 지금 그 일들이 네 눈에 숨겨졌도다. 날들이 네게 이르리니 그때에 네 원수들이 네 주위에 도랑을 파고 너를 둘러싸서 사면으로 가두며 또 너와 네 안에 있는 네 자녀들을 땅에 쓰러뜨리고 네 안에서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를 돌아보는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9:41-44)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자는 종말의 때에 심판을 받고 불타는 유황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이 세상은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이를 배워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슬픔이 있습니다. 구원 받지 못한 친척들과 동족들을 볼 때 마음에 슬픔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애통해 하는 자들입니다.

 

셋째, 주님의 사명으로 애통해 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이 주신 사명을 확실히 깨달은 자는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서 세상에서 자신이 이때껏 가치 있다고 생각하고 이룬 성취들을 다 버립니다. 이 세상에서 편하게 살 수 있는 것들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편하게 살 수 있지만, 결코 타협하지 않고 사명의 길을 걸어갑니다. 이를 잘 기록하고 있는 책이 히브리서 11장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해, 혹은 자신의 정든 고향과 가족을 떠나야 했습니다. 혹은 그리스도의 치욕을 이집트에서의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어떤 이들은 조롱을 받고 채찍을 받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돌로 맞기도 하고 톱으로 잘리기도 하며 시험을 받기도 하고 칼로 죽임을 당하기도 하며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아다니며 궁핍과 고난과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사막과 산과 동굴과 땅굴에서 떠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이런 자들의 내면에 슬픔이 있습니다. 주님의 사명이 아니라면 받지 않아도 될 어려움과 환란으로 인해 슬픔을 느끼며 한숨 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타협하거나 멈추거나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애통해하면서도 앞으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며 전진해 나갔습니다. 이런 자가 바로 애통해 하는 자입니다.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요

애통해 하는 자들은 위로를 받습니다. 이 위로는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천국에서의 위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리라. 다시는 사망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으며 또 아픔도 다시는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라, 하더라.”(요한계시록 21:4)

 

둘째는 이 땅에서의 위로입니다.

 

1. 보살핌을 받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내 손이 만들었으므로 그 모든 것들이 존재해 왔느니라. {}가 말하노라. 오직 나는 가난하고 통회하는 영을 가진 자, 내 말에 떠는 자를 보살피느니라.”(이사야 66:2)

하나님은 애통하는 자를 보살펴 주십니다. 이 위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느끼는 애통한 마음에 동참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저 말로 하는 위로가 아닌 우리가 느끼는 애통한 감정을 동일하게 느끼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살펴 주십니다.

 

2. 기쁨으로 거두게 하십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들은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귀중한 씨를 가지고 나가서 우는 자는 반드시 기뻐하며 자기의 곡식 단들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편 126:5-6)

하나님께서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들에게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하십니다. 슬픔을 바뀌어 기쁨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붙들고 나갈 때, 눈물을 흘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치 않고 부지런히 복음의 씨, 말씀의 씨, 기도의 씨를 뿌릴 때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 말씀의 열매, 사역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의 슬픔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누리고 슬픔이 있지만, 계속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부지런히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또한 성령의 열매를 맺고자 씨를 뿌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자를 위로할 것입니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할 것입니다. 우리의 슬픔을 바꾸어 기쁨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할 때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작은 몇 사람이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할 지라도 우리가 하나님 말씀의 본의를 바로 배우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청하며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의 바른 태도를 가지며 우리의 삶에서 바른 자태를 가지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 각자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알고 이를 힘쓰고 있습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 때로는 쉽지가 않습니다. 때로는 어리석게 보이고 때로는 낙심이 됩니다. 그러나 애통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처럼 애통하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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