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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마태복음 11:28-30
성경본문내용 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을 위한 안식을 찾으리니
30.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하시니라.
강설날짜 2018-05-06

들어가면서

 

현대인들은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로 지쳐 있습니다. 사람들의 간절한 소원은 쉬는 것입니다. 요즘은 TV를 보면 먹는 것과 여행과 관련 된 프로그램들이 인기가 높습니다. 외식 사업이 매년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해외여행 상품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들의 쉼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그토록 쉼을 갈망하면서도 참 쉼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잘 모릅니다. 그 결과로 참 쉼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한 예를 누가복음12:16-21에 나오는 한 부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그의 밭에 소출이 풍성하여 그것을 쌓아 둘 곳이 부족했습니다. 기존의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야 했습니다. 거기에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고 편안히 쉬고자 했습니다.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며 여생을 보내고자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부유층은 대제사장과 그의 가족들, 헤롯 가문에 속한 자들과 그들에게 충성하는 일파, 기존의 유대귀족의 후손들이었습니다. 또한 상업과 무역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상인들이 있었습니다. 상인들을 제외한 부류의 부의 기초는 토지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땅을 넓혀 광대한 농토를 통해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들은 소작농과 노예 혹은 날품팔이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싼값에 이용하므로 쉽게 부를 축적했습니다. 본문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 역시 그의 부의 기초가 토지에 있었습니다. 이 부자는 가난한 이웃을 위해 구제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쌓아 둔 부에서 쉼을 얻고자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관계없는 삶입니다. 부자가 아무리 스스로를 즐기며 쉼을 누리려 해도 그의 양심은 쉬지 못했습니다. 가난한 이웃에 대한 무관심과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부자는 물질적으로, 육체적으로 쉼을 누렸을지 모르지만 영혼의 쉼은 얻지 못했습니다.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이 부자와 같은 방식으로 쉼을 추구합니다. 그 결과로 사람들은 부자와 같이 영혼에 참 안식을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 부자와 같은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안식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주님이 주시는 안식을 누릴 수 있어야 배워야 합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이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너희 영혼을 위한 쉼을 찾으라

 

28절을 보십시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수고하고의 의미는 기진맥진하다입니다. 예수님 당시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계를 위하여 포도원이나 노동판에서 힘써 일해야 했습니다. 날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해야 했습니다. “무거운 짐 진은 무거운 율법의 짐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강요하는 엄격한 율법의 규율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율법의 지키지 못할 때 구원 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어야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참 쉼으로 초대하십니다. 우리가 쉼을 얻기 위해서는 메시아 되신 예수님께 가야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속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아임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아임을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천로역정의 크리스천과 같이 십자가에 무거운 죄의 짐을 내려놓고 안식을 얻어야 합니다. 이 주님이 주시는 안식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29절을 보십시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을 위한 안식을 찾으리니우리 주님께서 다시 안식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안식은 예수님의 멍에를 매고, 예수님께 배워야 주어지는 안식입니다. 그러므로 29절은 이미 중생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말씀입니다. 이미 중생한 자가 이 땅을 살아갈 때 필요한 안식입니다. 이 안식은 이미 구원 받은 성도들, 저와 여러분에게 필요한 안식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첫째, 예수님의 멍에를 매야 합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사실이 바로 쉼입니다. 누가복음 15:1-5절에서 잃어버린 양의 비유가 나옵니다. 이 비유의 메시지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초점을 바꾸어 잃어버린 양의 내면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양은 무리 속에 있던 양이었습니다. 이 양은 잃어버린전에는 목자의 인도함을 받던 양이었습니다. ‘잃어버린전에는 목자를 잘 따라가던 양이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 양이 무리에서 멀어져 잃어버려졌을까요? 아마도 방심일 것입니다. 양은 풀을 뜯다 고개를 들어 목자와 다른 양 떼들을 수시로 확인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풀을 뜯는 것에 정신이 팔려 차츰 목자를 쳐다보는 횟수가 차츰 줄어들었습니다. 점점 목자와의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그럼에도 양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따라 잘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에서 원하는 풀을 뜯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두려움 마음속에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목자는 그의 시야에서 이미 사라진 후였습니다. 양은 목자를 찾아 필사적으로 울부짖었습니다. 길을 헤매다 수풀에 걸려 넘어져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언덕에서 굴러 떨어져 다리를 다쳐 더 이상 걸을 수 없었습니다. 가까이서 맹수의 울음소리에 두려워했습니다. 이 잃어버린 양에게는 영혼의 안식이 없습니다. 이 잃어버린 양이 영혼의 안식을 찾을 수 유일한 길은 목자에게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목자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 크나큰 안도감을 줄 것입니다. 시편 23편에서는 목자의 인도를 받는 양의 안식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23:1) 나의 목자가 나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안식을 줍니다.

 

내 멍에는 문법적으로 나에 의해 공급되어진 멍에‘,’나에 의해서 주어진 멍에라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멍에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이 멍에는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우리는 사명을 감당하는 자로 창조되었습니다. 창세기 1:28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첫 람 아담과 이브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의 구원은 재창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사명을 주십니다. 우리들 각자에게 은사를 따라 사명을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멍에, 사명을 적극적으로 매야 합니다. “매라의 그리스어는 에이로;αρω입니다. 이는 들어 올린다는 의미입니다. 단순하게 잡는다는 의미의 λαμβάνω;lambanō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적극적인 의사를 가지고 멍에를 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멍에를 분명히 알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명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사에 따라 직업을 주셨습니다. 혹은 병을 고치는 은사를 따라 의사로, 혹은 잘 가르치는 은사를 따라 학교의 선생으로 부르셨습니다. 혹은 은사를 따라 기술자로, 농부로 부르셨습니다. 또한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그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귀하지 않는 사명은 없습니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멍에,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깨닫고, 사명인의 인생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각자의 삶의 현장에 우리를 두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고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사명을 주십니다. 그리고 교회에게 주신 사명에 개인으로 동참합니다. 각자 각자의 은사를 따라 교회를 섬깁니다. 은사를 따라 목사로, 장로로, 집사로 사명을 감당케 하십니다. 각양 은사를 따라 교회를 섬기게 하십니다. 교회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사명을 알고 그 일을 충성되게 감당하는 것은 주님이 내게 주신 멍에를 매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멍에를 맬 때 우리는 주님이 우리와 동행하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는 우리 영혼에 주어지는 안식입니다. 구원의 확신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께 배워야 합니다.

29절을 다시 보십시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을 위한 안식을 찾으리니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안식을 얻기 위해서는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주시는 영적인 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멍에를 이용한 이스라엘의 농사법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멍에를 이용한 농사법이 발달하였습니다. 당시 농부들은 가축에게 멍에를 매어 쟁기를 끌게 하였습니다. 두 마리가 멍에를 매고 쟁기를 끌 때 가장 효율이 좋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때 농부가 중요하게 고려 사항은 힘의 차이와 경험의 차이였습니다. 농부는 수컷과 암컷, 소와 나귀와 함께 멍에를 매지 않았습니다. 끄는 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빗대어 너희는 믿지 않는 자들과 더불어 공평하지 않게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고린도후서 6:14) 또한 경험의 차이가 중요합니다. 농부는 멍에를 매고 농부의 지시를 잘 알아듣는 한 마리와 길들여지지 않는 다른 한 마리에게 멍에를 매게 합니다. 경험이 많지 않는 소나 나귀는 멍에를 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힘만 믿고 나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 경험 많은 편이 이를 제어합니다. 농부의 지시대로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합니다. 그러면 다른 한 편이 배우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도 다시 다른 한 편을 리드하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배우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온유를 배우라고 하십니다. 약함이 아닙니다.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권위 아래 자신을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힘과 통제 아래 자신을 두는 것이 바로 온유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에 자신을 두는 것이 바로 온유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겸손을 배우라고 하십니다. 겸손은 우리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힘을 의지하지 않고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울 때,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29절에 그 이유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하시니라.” 영어 성경에는 “for”이라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For my yoke is easy, and my burden is light.” 이는 주님의 멍에가 쉽고 가볍기 때문에 안식이 주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쉽다란 의미는 사용하기 쉽다”, “일하기 쉽다란 의미입니다. 마치 축구 선수의 축구화가 작지도 크지도 않고 적당하다 의미입니다. 기술자의 연장이 손에 꼭 맞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은 쉽습니다. 우리가 사용하기에 적당합니다. 결코 불편함이 없습니다. “가볍다의 의미는 무게가 가볍다란 의미입니다. 왜 주님이 주시는 멍에는 가벼운 것입니까? 이는 주님께서 멍에를 매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멍에를 매고 전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멍에를 매고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가벼운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멍에를 매고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운다는 의미는 주님께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멍에를 맨 경험이 많은 소는 주도적으로 쟁기를 끕니다. 다른 편의 소는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멍에를 매기가 쉽습니다. 멍에가 가볍습니다. 이와 동일한 원리가 우리 신앙생활에도 적용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우리 힘과 경험으로 감당하고자 하면 너무 무겁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맡기고 주님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 가볍습니다. 그러면 안식이 주어집니다. 날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주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 때, 안식이 있습니다.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하기

우리는 쉼, 안식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일이나 활동, 부담에서 벗어나는 것이 쉼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런 생각이 전혀 틀린 생각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전도 여행에서 돌아온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외딴 곳에 가서 잠시 쉬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그들에게 먹을 겨를도 없었기 때문이더라.”(마가복음 6:31) 우리는 이 땅에서 육신의 장막을 벗고 천국에 있을 때, 우리 주님이 주시는 종말적인 안식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주님이 주시는 안식을 얻기 위해서는 일해야 합니다.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영혼에 안식이 주어집니다. 멍에를 매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은데 저절로 우리 영혼에 안식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매다”, “배우라는 그리스어 시제는 Aorist Imperative입니다. 이 시제 용례는 Present Imperative(현재 명령) 보다 훨씬 강한 명령입니다. 이 시제는 긴급한 상황 속에서 최우선 순위를 두고 행해야 할 상황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오늘 모두에게 명령하십니다. “내 멍에를 매라”, “내게 배우라고 강력한 어투로 우리에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이 주시는 안식을 누리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면서

우리는 이 시간 본문을 통해 예수님이 주시는 안식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안식은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안식입니다. 또한 우리 주님에게 우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맡길 때 오는 안식입니다. 이 안식은 육체적인 쉼이 아니며, 우리가 천국에 누리는 안식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 마땅히 누려야 할 영혼의 안식입니다. 이 안식은 주님이 주시는 멍에를 매고 예수님께 온유와 겸손을 배울 때 우리 영혼에 주어지는 안식입니다. 이 영혼의 안식을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이 끝날 때까지 누릴 수 있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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